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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와서 거의 매년

땡스기빙 데이 연휴엔 심하게 아팠다.

심지어 사나흘 연휴 내내

침대 밖을 나오지 못한 정도로 아픈 적도 많았는데

 

 

참 감사하게도

여기로 이사와서는

크게 아팠던 기억이 없다.

심지어 대체로는 꽤 좋은 컨디션으로

상당히 많은 일들을 하기도 했다.

 

 

이번 땡스기빙 데이 연휴에도 아주 컨디션이 좋아서

꽤 많은 일들을 했는데

유일하게 안 한게 소비.

 

 

블랙 프라이데이다

사이버 먼데이다 해서

땡스기빙 데이 전후로

마구마구 소비를 조장하다보니

의례히 그래야 할 것처럼

이것저것 잔뜩 하곤 했는데

미국에서 꽤 오래 살다보니

그런 상술을 적당히 피해 갈 만큼의

안목도 생겼다고 해야 하나.

 

잘 먹고

잘 쉬고

평온했던 연휴.

 

 

그리고 땡스기빙 데이 다음날 이런 책들을 구입했다.

기온도 많이 떨어지고

하루종일 비가 내려

단풍잎들이

별처럼 떨어졌던 날이었다.

 

 

 

- Passage: Europe (Richard Copeland Miller)

 

Richard Copeland Miller는 그렇게 유명한 작가 같진 않다. 구글링을 해도 포토그래퍼라는 것 외에는 그 어떤 정보도 없다. 책도 랩핑이 되어 있어 사진들을 볼 수 없었는데 표지에 실린 사진이 감각적이고 사진집의 제목이 맘에 들어서 구입했다.

단, 이 책의 소개란에 보면 이 책의 주제가 다음과 같은 키워드라고 되어 있다. 이 책에 실린 사진들이 어떨지 대강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Europeans, Social life and customs, 21st century, 1945, Europe, Eastern, Civilization, Pictorial works.

잘 알려지지 않았고 검증이 되지 않은 작가의 책을 선택하는 건 일정 정도의 위험을 부담해야 하는 모험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가끔은 나만의 작가를 발견하는 기쁨을 누리기도 한다.


- Culture and Art: Museum Design (Emlly Luo)

 

이런 책들을 종종 보기는 했는데, 제목을 보고 반하거나 호기심이 생겨 책을 펴보면 생각보다 내용이 부실해서 실망한 적이 적지 않았다. 지금까지 한 번도 이런 류의 책을 구입하지 않았던 결정적인 이유였는데 이 책을 대충 훑어보곤 맘에 들어 구입하기로 결정.

 

'뮤지엄 디자인'만으로도 흥미로운데 그걸 '컬처'와 엮었다. 설계나 디자인도 참 흥미로운 영역이다.

한국에선 '건축학과'가 공대로 편입되어 있지만, 따져보면 이야 말로 종합예술 아닌가?


- Painting of the Renaissance: Epochs & Styles (Manfred Wundram)


- The Art of the Italian Renaissance: Architecture, Sculpture, Painting, Special Edition (Rolf Toman and Achim Bednorz)

 

희한하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르네상스나 르네상스의 예술은 잘 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정규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교육과정에서 꽤 상세히 배우기도 하고, 역사서나 문화서나 예술서나 이 시대를 다룬 것들이 워낙 많기도 하고.

이 두 책은 텍스트 중심이 아니라 그림 위주라서 눈이 즐거울 것 같아 구입했다.

한 권은 그림 위주고 나머지 하나는 건축과 조각, 그림 등 르네상스 예술을 총망라해서 아울렀다.  


- The Art of Dale Chihuly (Timothy Anglin Burgard)

 

올 초에 시애틀에서 데일 치훌리의 유리 가든에 다녀온 후, 눈에 띄면 데일 치훌리 관련 책들은 무조건 다 구입하고 있다.

데일 치훌리가 누구야,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는데 작품들을 보여주면 '아, 이거!' 할 수도 있겠다. 뮤지엄이나 호텔 등등에서 많이 볼 수 있으니깐.

그렇지만 그렇게 한 점이나 약간의 연작물을 보는 것과 유리 가든에 가서 그의 정신 세계 속에 들어갔다 오는 것과는 또 다르니, 언제고 기회가 된다면 시애틀에 다녀오길.


- Drawings (Eugene Ludins)

 

Eugene Ludins는 20세기를 관통한 화가라고 할 만하다. 1900년대 초에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났고 1990년대 말까지 뉴욕에서 활동했다. 아흔 살 넘게 살면서 그림을 그렸는데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했단다. the Whitney Museum of Art에서 꽤 많은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림 자체도 궁금하지만 20세기를 관통한 그의 삶이 궁금해져서, 그리고 그의 삶이 어떤 식으로 작품에 반영되었을까 궁금해서 그러니깐 그의 작품을 통해 한 사람의 인생사를 읽어보고 싶어 구입했다.


- New American Stories: Vintage Contemporaries (edited by Ben Marcus)

 

Ben Marcus는 컬럼비아 대학의 교수이면서 작가이다. The New Yorker, The Paris Review, The New York Times 등에 글을 게재했고, 네 편의 픽션도 출간했다. 엄마인 Jane Marcus는 페미니즘 문학운동의 선구자였고, 아내인 Heidi Julavits도 작가이자 편집자다. 이 사람의 성장 배경이나 이 사람을 둘러싼 분위기나 문화를 알 수 있다. 암튼, Ben Marcus가 선별해서 고른 작품들을 실었다. 현대의 미국 문학이 궁금한 사람이라면 읽어볼 만 할 것 같다.


- The Oxford Book of Work (Keith Thomas)

 

'work'이라고 해서 '작품'인 줄 알고 궁금해서 살펴봤는데 여기서 말하는 'work'은 '노동'이다. 그러니깐 'labor'. 맑스의 저작을 포함해서 '노동'에 관한 논문들이나 아티클들을 실었다. 대체로는 19세기에 영국에서 발표됐던 글들이란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출간했다.

 

2018년의 땡스기빙데이는 이 여덟 권의 책으로 기억되겠지.

추적거리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비가 많이 내리던 날, 그 비를 뚫고 서점에 갈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내가 책을 참 좋아한다는 걸 증명한다.

그렇게 데려온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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