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장례식장이다.
온통 회색빛이다.
엄마는 꽃을 좋아하신다.
엄마가 나한테 부탁을 했다.
난 꽃 속에 묻히고 싶어.
그건 항상 내 마음에 새겨 있었다.
온갖 화환으로 꽉 채우고
엄마의 관도 꽃으로 다 덮을 거야.
근데 엄마의 장례식장도 너무 초라하고
엄마의 관도 한없이 초라하다.
나는 울 기력도 없다.
그저... 죄책감에 짓눌릴 뿐.
살아 생전 유일하게 엄마가 나한테 바랐던 거였는데
그것도 못 해드렸구나.
너무 가슴이 아파서 와르르 무너진다.
왜 이런 꿈을 꾼건지 모르겠다.
너무 불길해서
일어나자마자 집에 전화를 건다.
이 시간에 어쩐 일이니?
엄마의 목소리에 피곤이 묻어 있다.
정말 어이 없는 일인데
지금 조카 셋을 엄마가 보고 계신다.
동생은 항상 그런 식이다.
엄마의 건강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아빠도 연말이라 여기저기 다니실 데가 많으니깐
애 셋을 엄마가 다 보시는 거다.
그건... 건강한 사람이라도, 20대라도 하기 힘든 일이다.
이번 엄마 수술을 앞두고
유일하게 남았던 아빠 명의의 재산을 팔려고 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며 남긴 땅이다.
그동안 아빠를 '형'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30년 넘게 농사를 짓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 땅에서 나는 소출을 받은 적도 한 번도 없고
땅을 빌려준 대가로 돈을 받아본 적도 없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사람이 아빠 몰래 그 땅을 자기 명의로 바꾼 거다.
뭐라나? 법조계 관련된 사람한테 물어보니
이장이나 이런 사람이랑 짜고 농지를 그런 식으로 명의변경하는 사례가 있단다.
재판하면 무조건 이길 수 있다는데
(합법적으로 그런 '짓'을 할 수는 없고
결국은 편법내지는 불법을 사용한 것이므로)
아빠는 그 사람한테 실망이라는 말만 할 뿐
재판할 생각은 안 하신다.
그런 걸로 법정에 서고 싶지 않다는 게 이유라는데,
지금 상황에서 달리 수술비를 마련할 방법도 없구...
법정에 서서 깎이는 체면이나 위신보다
아내의 목숨이 더 중요해야 하지 않을까?
나같으면 체면이나 위신 백만 번이라도
깎일 것 같은데...
체면이 대수야?
그게 사람 목숨보다 중해?
말로 해보겠다고 한 지가
몇 달 째인데
여전히 감감 무소식이다.
그 사람한테 말도 안 꺼냈을 거다.
아니, '못' 꺼낸 건가?
두 남자들을 보면 무섭다.
솔직히...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엄마만 아니었으면
나는 아직까지도 아빠랑 정말 사이가 좋을텐데.
내가 가장 좋아했던 사람이고
정말 닮고 싶었던 사람이니깐.
모든 유전인자를 정확하게 물려준 사람이기도 하고.
엄마만 아니었다면,
엄마만 아니었다면.
근데 정말... 나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다.
아빠를 보면서
사람이 착하기만 한 것도 죄가 될 수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
적어도... 자기 가족을 지킬 만큼은 되야 한다.
욕을 먹더라도...
세상에서 존경받고 칭찬을 받으면
뭐하나?
자기 가족 하나 지키지 못하는데...
내 인생관이 바뀐 결정적 계기다.
이를 악물고 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착한 게 죄가 되지 않도록,
내 사람들은 내가 지킬 수 있도록.
동생은 정말...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가 안 간다.
항상... 엄마, 아빠 사이에서 중재자 노릇을 하고 있지만,
항상... 이해하시라고, 이해하시라고
저도 나름의 이유가 있을 거라고 말하지만...
나도 잘 모르겠다.
뭐 저런 녀석이 다 있나.
가끔은... 멍석에 둘둘 말아서
몽둥이질이라도 하고 싶다.
정신 번쩍 차리게.
엄마, 수술도 체력이 있어야 받아요.
돈 부칠테니깐 쇠고기 사다가 국도 끓여먹고
구워도 먹고 그러세요.
그걸 사서 지금 누구 코에 붙이니?
엄마가 씁쓸하게 웃는다.
서울에 집 한 채만 있으면 좋겠다.
아무도 모르는 데다 집 한 채 얻어서
엄마가 거기서 좀 쉬시게 해드리고 싶다.
올해 한국 나갔다 와서 계속 고민하고 생각하는 부분이다.
지금으로서는
그 방법이 최선인 거 같다.
엄마를 숨겨 놓는 거.
그게 유일하게... 엄마가 쉴 수 있는 방법같다.
이모네라도 가 계시라고 그러는데
엄마가 그러신다.
내가 이 상황에서 어떻게 가니?
내년에 이사해서
집 구하면
당장 모시고 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근데... 그것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엄마는 거의 매주 병원에 가셔야 하는데,
엄마같은 사람을 받아줄 보험이 있을리도 만무하고...
이 ㄴ ㅓ ㅁ의 나라, 정말 맘에 안 든다.
한국만큼만 의보가 되어도
당장 모셔왔을텐데.
건강 관리 잘 하자.
내가 미친듯이 운동하는 이유다.
가끔 오빠한테 다짐도 받는다.
나 아프면 무슨 상황에서도, 어떤 상황에서도
꼭 병원에 데려가. 알았지?
어떤 상황에서건
내가 오빠한테 1순위면 좋겠다.
안 그러면 너무 비참하잖아.
안 그래?
* 솔직히 말하자면... 난 그냥... 다 불쌍하다.
아빠도 불쌍하고
엄마도 불쌍하고
동생도 불쌍하고
동생댁도 불쌍하고
조카들도 불쌍하다.
가장 불쌍한 건 엄마랑 조카들.
엄마만 생각하면
조카들만 생각하면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
내가 빨리 부자가 돼서
내가 빨리 강해져서
내 식구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주고 싶다.
이제 곧 돈도 벌게 될텐데,
그 때까지만 기다려주면 좋겠다.
결국... 항상 드는 건
죄책감과 자괴감이다.
내가 힘만 좀만 있었어도.
내가 돈만 벌었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