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어떤 공간이어서 계속 걸으면 나오는 길이다. 나는 쉬지 않고 그 길을 걸었다. 그 길을 산책하고 때론 다람쥐를 만나며 레사와 호흡했다. 어느 날은 내가 레사에게 물었다. 레즈비언이 되는 사주팔자도 타고나는 것이냐고. 레사는 말했다. 사주로 찾으면 찾을 수도 있겠지만 굳이 그러지 않겠다고. 설명하면 할 수야 있겠지만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고. 나는 레사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 레사는 드라이어로 젖은 머리카락을 말리듯 내 마음속 빙하를 녹여주었다. 천천히, 시간을 들여, 내가 잠들 때까지 내 등을 쓰다듬어주었다. 그렇게 10년 동안 레사와 나는 변함없이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 (p.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