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진 리스의 단편 「환상」에 등장하는 브루스 양은 파리에 7년째 살고 있는 초상화가이다.* 거리나 식당에서 예쁜 여자를 보아도 무심한 그녀는 계절에 맞춰 여름에는 나시 원피스는 겨울에는 트위드 의상을 단정하게 입고 굽이 낮은 신발과 면 스타킹 정도를 신었다. 파티에 갈 때조차도 최대한 절제된 검은색 실크 드레스를 입을 정도였다. 그러니까 옷에 까다롭지 않은, 절제된, 자존심 강한 여자인 셈이다. 그런 그녀가 갑자기 병에 걸려 병원에 이송되고, 이야기 속의 '나'는 그녀의 집에 방문했다가 옷장을 발견한다. 다소 고지식한 그녀를 닮아 있는 견고하고 오래된 가구였다. 옷장 문을 열었을 때 '나'는 크게 놀라 의자에 털썩 주저앉게 된다.

그녀의 장롱이 열렸을 때 그 안에는 색색의 온갖 부드러운 실크들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평소의 '견고한' 그녀와는 먼, 온갖 색깔과 재질의 옷들로 빽빽했다. 화장품과 향수까지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것을 보고 '나'는 크게 놀라고 당황한다. 걸치지 않고 걸어두는 것으로서도 옷은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완벽하고 아름답고 매혹적인 것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누구에게나 있기 때문이다. 진 리스는 그녀의 허영심을 꼬집이 위해 쓴 것처럼 보이지만 난 그냥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옷은 종종 입을 때보다 걸어놓을 때 안심이 되기도 한다. 입는 것이든, 소유하는 것이든 옷은 '나'를 짓는 환상같은 것이 아닐까. 내가 생각하는 나는 실제의 나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우아하고, 화려하고, 멋질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날마다 입고 벗는 환상으로서 옷은 나보다 더 나 같은 것일 수도 있다. (pp.35-36)

 

* 『진 리스』, 정소영 옮김(현대문학, 2018), 9~15쪽 참조

 

 

 

아주 작은 인간들이 말할 때

이근화 저
마음산책 | 2020년 08월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0

댓글쓰기
첫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