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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

[도서]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

김행숙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I

김행숙 시인의 시집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는 2020년 여름에 나온 시집인데, 참고로 2020년은 시인이 데뷔한지 21년이 되는해였단다.

90년대에 데뷔해서 2000년대를 주도한 미래파 시인인 김행숙 시인이 등단한지 벌써 22년이 되었다니, 내가 이 시인을 좋아한지도 정말 오래됐구나 하는 새삼스런 마음이 든다.

 

이 시집은 총 3부로 구성되는데, 1부의 제목은 '기억이 사람을 만들기 시작했다'이다. 

첫 시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나 「고도의 중얼거림」 등 기존의 문학작품을 연상케 하는 제목의 시들부터 마치 연작시처럼 읽히는 「커피와 우산」, 「우산과 담배」, 「담배와 콩트」를 포함해 대부분의 시들이 다 좋다. 꽤 분량이 긴 시들이 많은데, 모두 군더더기 없이 집약되어 있다.

 

개인적으로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밤의 층계」가 좋았다. '시인의 말'을 음미하면서, '밤'의 의미에 천착하며 시들을 읽게 된다.

 

II

2부의 제목은 '바보의 말을 탐구해보자'이다.

 

1부의 시들도 그랬지만 2부에 실린 시들도 어떤 시나 작품을 인용하거나, 그 작품에 기인해서 시작한 시들이 많다. 전반적으로 '리뷰' 혹은 '리라이팅'이라고 해도 무방할 성격의 시들이다.

 

2부의 시들 중엔 「변신」이 가장 좋았는데, (아마) 이 시집을 대표하는 시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좋다. 이 시집 전반의 성격이 가장 잘 드러난 시라고 생각된다.

 

1920년 7월 29일, 카프카는 55kg이었다고 한다. 눈을 감으면 어둠속에 희끗희끗 나타나는 것, 그것은 신장 182cm의 카프카가 밀레나에게 장문의 편지를 쓰려고 구부렸던 등뼈의 잔상이다. 이날 카프카는 밀레나에게 두 통의 편지를 썼는데, 그 두번째 편지에서 자신은 물리에 대해서는 그 어떤 것도 이해할 수 없었노라고 고백한다. '나는 세상의 저울을 이해 못 하겠소. 물론 그 저울도 나를 이해 못할 게 분명하오. 그렇게 거대한 저울이 55킬로그램밖에 안 되는 나를 가지고 도대체 무얼 할 수 있겠소. 아마도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도 모를 거요' (p.57)

 

카프카가 밀레나에게 쓴 이 편지를 읽고 시를 쓴다면 어떤 시가 나올 수 있을까? 이 편지를 쓰는 카프카를 떠올리며 쓴 시는 어떤 형태일까. 그게 궁금하다면 「변신」이라는 김행숙의 시를 읽어봐야 한다.

단연코 최고의 시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2부는 전체가 카프카에 대한 시들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위에서 언급한 「변신」이 그런 것처럼 2부에 실린 거의 대부분의 시들도 카프카를 호명하거나 카프카나 그의 작품들을 모티브로 한다. 아예 제목이 '「변신」 후기'인 시도 있다. 위에서 이 시집은 전체적으로 리뷰 혹은 리라이팅의 성격을 가진다고 지적했는데, 그런 이 시집의 성격이 매우 잘 드러나는 것이 바로 2부, 특히 그 중에서도 '「변신」 후기'라는 시다.

 

'각주가 있는 시'라는 게 이 시집이 가진 또 하나의 특징인데, 각주에서 언급하는 작품들이나 작가들을 보면 시인의 선호나 시인을 시로 이끈 것들이 무엇인지 유추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그 점도 좋았다.이 시집이 가진 미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III

3부 '우리가 그림자를 던지자 첨벙, 하고 커다란 소리를 냈다'에 실린 시들은 뭐랄까... 시리아 내전처럼 어떤 극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연상케 하는 시들이다. 

2부가 '김행숙=카프카=그레고리 잠자'에서(혹은 '으로') 쓰여진 시들이라면, 3부는 조금 결이 다른 셈이다.

 

3부의 첫 다섯 편의 시들이 내전을 경험한 화자에 의해 쓰여진 것 같다면, 이후의 열다섯 편의 시들은 하나의 주제나 모티브로 묶이지는 않는다. 굳이 말하자면 전작인 『에코의 초상』처럼 다양한 '에코'들의 목소리처럼 읽힌다.

 

「에코의 중얼거림」에서 그런 인상이 가장 강렬한데, 이 시는 전작인 『에코의 초상』을 연상시키면서도 이 시집의 에필로그의 역할도 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이 시집은 기본적으로 리뷰이자 리라이팅이라는 지적을 계속 하게 되는데, 3부의 시들 역시 그러하다. 배수아 등 기존에 언급했던 작가부터 심지어 양준일의 노래 가사까지 시의 일부로 이용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2부에 수록된 시들이 가장 좋긴 하지만, 시집이 전반적으로 다 좋다. 근래에 읽었던 시집들 중 압도적으로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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