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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와 고요

[도서] 사치와 고요

기준영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올여름 노던 캘리포니아는 크고 작은 산불의 여파로 거의 매일 공기의 질이 나빴다. 그중 가장 큰 산불은 은퇴한 교수가 고의로 낸 방화였는데, 은퇴한 교수라던 그 남자는 정년 퇴직한 노인이 아니라 나와 나이가 같은 남자였다. 심지어 대학에서 범죄심리를 가르치던 교수였다는데, 도대체 어떤 연유로 방화범이 된 건지 여름 내내 그 남자에 대해 곱씹었다.

 

그런 것이 일상이던 한여름, 그러니깐 올 8월에 이 책을 읽었다.

그 즈음도 공기 질이 나빠서 마스크 쓰고 운동이나 산책 나가는 것도 힘들어, 텃밭의 식물들에게 간신히 물만 주는 게 가능했다.
새벽운동도 못 하고 환기도 못 하고 그래서 청소기도 못 돌리고 (창문을 열 수 없으므로) 집안에 갇혀 꼼짝을 못 하고 하루하루를 보내던 때였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날인데 더운 날씨에 기운까지 없어 자다 깨다 하며 (그러고 보니 하루 종일 잠옷을 입은 채다) 책 한 권을 읽었는데, 그게 바로 기준영의 『사치와 고요』였다.
 

작가 이름도 책 제목도 뭔가 중산층 여성들의 삶을 연상케해서 크게 기대를 안 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읽다 보니 좋다. 그냥 좋은 정도가 아니라 아주 많이 좋았다.
이런 작가를 왜 아직 몰랐던 건지.

(이름이 익숙한 걸로 봐서 'OO 문학상 수상 작품집' 류에서 읽기는 했을 텐데, 이 작가의 작품은 한 편만 읽는 것보단 이렇게 모아놓고 봐야 진가를 발휘하는가 보다. 종종 그런 작가들이 있다. 아니, 대부분의 작가들이 그렇다고 봐야 할 것이다.)

 

총 아홉 편의 단편이 실렸는데 나는 그 중에서도 「축복」이 가장 좋았다.
그 소설의 결말을 인용해서 이 소설집에 대한 내 소감을 대신한다면 다음과 같다.
"생각보다 잘 맞고, 보기보다 따뜻한걸." (p.192)

 

행운은 이렇듯 뜻밖에 찾아오곤 한다.
이 소설을 읽은 후에도 여전히 피곤하고 기운이 없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무기력하다기보다는 나른한 기분으로 바뀐 것도 다 이 소설 덕분이었을 것이다.

 

이후로 기준영의 소설들을 좀더 찾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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