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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X문화일보 국민서평프로젝트
달까지 가자

[도서] 달까지 가자

장류진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2021년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단연 ‘오징어 게임’일 것이다.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가 열광한 이 드라마를 통해서 우리는 ‘공정’에 대한 인간의 열망과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시스템 안에서 인간의 노력이 갖는 허망함과 무기력함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것이 우리가 사는 현실이라고 할 때 현재 우리가 발딛고 사는 ‘지구’의 모습을 가장 적나라하고 사실적으로 보여준 것이 바로 <오징어 게임>이고, 그것이 이 드라마가 국가와 인종을 막론하고 전세계인의 호응을 이끌어낸 이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워야 한다.”는 것은 현재 한국 사회의 가장 크고 중요한 화두이다. 그러나 모든 것들이 극단적으로 양극화되어 가는 만성화된 저성장 사회에서는 기회의 평등도 과정의 공정도 찾기 힘들다. 따라서 결과의 정의는 더더욱 지난한 문제가 되어버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보통의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오징어 게임’밖에 없다. 목숨을 담보로 한 게임, 남이 죽어야 내가 사는 게임.

 

장류진 작가의 등단작인 「일의 기쁨과 슬픔」부터 그의 모든 단편들을 다 읽어왔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이 작가의 작품들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았다. 젊은 세대, 직장인들이 좋아할 만한 소재들을 잘 포착해서 그걸로 이야기를 잘 만들어내는, 좀 박하게 표현하자면 소비자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것을 충족시키는 작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문학 혹은 소설의 독자를 단순히 소비자와 동일시할 수 있느냐는 점에서 일정 정도 작가와 작품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장류진의 첫 장편 소설인 『달까지 가자』를 읽고나서야 나는 비로소 이 작가를 정확히 이해한 기분이다. 좀더 나아가, 기성세대가 되어버린 내게 언제나 난해했던 MZ세대들의 속마음을 들여다 본 것 같다.

 

한 회사에서 일하는 여자 동기 세 명이 등장하는 이 소설은 표면적으로 칙릿(Chick Lit)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쩌면 내가 그동안 장류진의 소설들을 오해했던 이유도 그의 소설들이 가지는 칙릿적 성향이나 분위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소설에 이르러 장류진의 색깔은 좀더 명료하고 또렷해지는데, 나는 그러한 특징이 이 소설의 후반부에 잘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최종적으로,

지송이는 2억 4,000만원을 벌었다.

나는 3억 2,000만원을 벌었다.

은상 언니는 33억을 벌었다.

내겐 이 모든 게 2017년 5월부터, 2018년 1월까지, 단 여덟 달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pp.298-299)

 

그러나 내 생각에 이것은 이 소설의 핵심이 아니다. 이 소설은 결코 ‘세 여성의 이더리움 투자 성공기’로 요약될 수 없다. 왜냐하면 장류진이 숨겨둔 진짜 이야기는 이 다음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은상과 지송이 회사를 떠나 각자의 새로운 미래를 선택한 것과는 달리 ‘나’(정다해)는 회사에 계속 남기로 한다. 그리고 아주 무더웠던 어느 휴일에 회사에 나간다. 아무도 없는 회사는 평일처럼 지옥은 아닐 뿐더러, 일반 사원들이 사용하는 커피머신보다 훨씬 고급 커피머신에 원두커피가 있는 대표와 임원들이 사용하는 층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고급 커피’를 마시러 갔던 그곳에서 ‘나’는 제빙기를 발견한다.

유난히 무더웠던 그 여름 탕비실 냉동실은 만원이었다. 모두가 자기 얼음을 만들기에는 냉동실이 지나치게 비좁았기에 크고 작은 신경전도 있었다. 그런데 그 층에서 발견한 제빙기에는 단단한 큐브 얼음들이 넘쳐나고 있었고, ‘치사하게도’ 혹시나 올라오는 사원들이 못 보도록 커튼으로 가려져 있었다.

 

세상에. 단단한 큐브 얼음이 한가득이었다. 나는 얼마간 아연한 심정이 되어 그 많고 많은 얼음 더미를 내려다봤다. 제빙기는 말 그대로 거대했고,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얼음이 들어 있는 것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한쪽 구석에는 은색 스쿱까지 비스듬히 꽂혀 있었다. 고급 원두, 제빙기까지는 그래, 그렇다 쳐도 커튼은 정말이지 치사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pp.341-342)

 

나는 이것이 장류진이 정말로 하고자 했던 말이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일반 사원들이 작은 냉동실을 쓸 때 소수의 사람들은 제빙기를 독점하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장류진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자, 여기 어디에 기회의 평등과 과정의 공정과 결과의 정의가 있나요? 우리가 사는 사회가 이렇다는 게 부끄럽지 않나요? 제빙기의 단단한 큐브 얼음을 원하는 게 그렇게 철없고 모난 건가요? 작은 제빙기라도 모두가 나눠가질 수는 없는 건가요? 그러면 모두가 무더운 여름을 좀더 잘 날 수 있지 않을까요?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무엇이라 대답할 수 있을까?

 

사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나’가 원한 건 매우 소박한 것이었다.

 

현관문 열자마자 침대가 보이지 않고, 자는 공간에서 부엌이 보이지 않고, 밥 먹을 때 화장실이 보이지 않는 게 더 중요했다. 휴식과 식사와 수면과 배설의 경계. 생활에 따른 공간의 분리. (p.70)

 

대학 진학을 위해 서울에 상경한 이후 한 번도 네모 반듯한 ‘방’에서 살아보지 못한 ‘나’, 작은 원룸을 벗어나지 못했던 내가 원하는 것은 네모 반듯하고, 화장실과 침실과 주방의 경계가 있는 방이다. 실제로 3억의 돈이 생긴 후 ‘나’가 제일 먼저 선택한 것도 ‘전셋집’이었는데, 이 결정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나’는 ‘전세’라는 단어 위에 여러 겹의 동그라미를 치고 옆에 별표까지 하나 더 한다. ‘더는 월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나 흥분되고 기뻤’(p.344)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것이 진짜 현실에서는 실현가능성이 거의 없는 ’판타지’에 가까운 일이라는 걸 우리 모두가 안다. 연봉 3-4천의 직장인이 언제 돈을 모아 학자금 대출을 갚고, 전셋집을 얻을 수 있겠는가?

 

이 소설에서 ‘To the moon’, 즉 ‘달까지 가자’는 이더리움에 투자했던 세 여성들이 자신이 매수한 가상화폐의 가격 폭등을 바라는 욕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달’처럼 눈에 보이기는 하지만 결코 다다를 수 없는 소망들, 그러니까 현실에서 그들이 느끼는 의식주의 기본 충족에 대한 열망을 집약한 것이라고도 할 수도 있다.

핫도그에 설탕을 잔뜩 굴려 건네주듯, 그것을 소설에서나마 실현시켜주고 싶었던 것이 장류진의 소망이었다면, 나는 이 소설가를 적극 지지하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보자면, 한 소설가의 바람이 소망으로 끝나지 않도록, MZ세대들이 그들의 ‘방’을 갖고 그 ‘방’에서 자신들의 꿈을 이뤄나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그제야 비로소 알아차렸다. 내가 깊이 바라왔던 게 있었다는 것을. J. 이거였다. 내게 절실히 필요한 것. 그래서 내가 기다려왔던 것은 다른 게 아니라 바로 이런 모양, 이런 곡선이었다는 진실을 그 순간 섬광처럼 깨달았다. (p.95)

 

모든 MZ 세대 젊은이들의 인생이 J 커브 곡선을 그릴 수 있기를, 기회의 평등과 과정의 공정과 결과의 정의가 이루어지는 사회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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