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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 아이야 가라

[DVD] 가라 아이야 가라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미국의 고민 1: 어린이 학대, 알코올 중독과 마약 중독, 갱, 총기 사용문제 등등

 

"미국은 어떤가(요)?" 혹은 "미국은 어떤 곳인가(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참 난감한 질문이다. 어차피 '경험'이나 '이해'라고 하는 것은 매우 주관적인 것이고 그 사람의 환경이나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질문은, 질문 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답변하기엔 쉽지 않다.

 

얼마 전에도 비슷한 질문을 받았는데, 그때 답변으로 해준 게 바로 이 영화였다.

  

데니스 루헤인이라는 미국 작가가 있다. 이 영화는 이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보스턴을 배경으로 하는데, 약물 중독이나 알콜 중독, 갱, 어린이 학대(abuse나 neglect) 등 미국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긴 영화다.

작품의 전면에 드러나는 건 어린이 학대 문제이다. 알코올 중독과 마약 중독에 걸린 미혼모가 있다. 당연히 아이는 거의 방치된 상태이다. 그런데 어느날 이 여자의 딸이 유괴당한 것이다. 경찰과 탐정은 소아성기호증을 가진 변태성욕자(pedophile)의 짓이거나 돈이나 복수를 노린 갱단의 짓일 거라 생각하고 문제를 파헤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보여주는 것, 그러니까 그 문제를 통해 깊이 들여다보는 것은 '미국' 그 자체이다.

 

영화는 매우 사실적이다. 스펙터클하고 과장이 심한 헐리웃 영화들을 보면서 느끼는 괴리감이랄까, 비현실성은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지금까지 본 영화 중 가장 '미국적'인 영화, 미국을 가장 현실적으로 보여준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미국의 고민 2: 나는 너의 선한 'Big brother'야. 나는 선한 동기를 가졌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의 고민 중 하나는 결국 선악의 문제인 것 같다. 신이 정말 존재한다면 왜 이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가?

어쩌면 선한 사람일수록, 선에 가까워지려는 사람일수록 이런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어차피 악한 사람들이야 이런 데 관심도 없고, 자기들 스스로 악해서 문제도 느끼지 못하니깐. 여기에 삶의 딜레마와 아이러니가 있는 듯.

 

정말 선한 사람이, 악을 미워해서 악을 없애려는 의도로 시작한 행동이 결과적으로 악을 가져왔을 때, 어떻게 해야 하나? 의도가 선했기 때문에 선인가? 아니면 결과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악인가? 그렇다면 결과가 좋지 않으면 모두 악인가? 만약 나는 선한 의도로 신념을 가지고 한 행동인데, 누군가 그 행동은 악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그러니깐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이 영화는 밖에서 '세계 경찰'을 자부했던 미국의 내적, 실존적 고민이 드러난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에 등장하는 아주 모범적인 경찰서장이었던 모건 프리만과 그의 부하직원들은 미국이 상정한 미국의 자화상처럼 보인다. 그들의 의도와 동기는 선했다. 그리고 누가 보더라도 그들은 한평생 정의를 위해 살았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선한 동기로 시작했던 일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다. 거기에 따른 희생도 너무 컸다. 결국 본인들의 신념과 가치관에 의거하여 한 행동들에 의해 자승자박의 형국에 빠지게 된다. 나는 분명 선한 의도를 가지고 한 행동인데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새파란 애송이'가 "네가 잘못한 거야."라고 한다. 목숨을 걸고 지킨 신념인데, 억울하다. '알잖아, 원래 내 의도는 그런 게 아니라구. 난 당신의 선한 Big brother야. You know?'.

 

직면한 딜레마적 상황: 선은 무엇이고 악은 무엇인가?

 

사실 선과 악은 생각처럼 그렇게 확연히 구분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영화속에 보면 술집 장면이 몇 번 나오는데, 사실 그 부분이 매우 상징적이다. 살인과 마약과 섹스 등 온갖 범죄가 만연한 술집은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그 문만 열고 나오면 바로 대명천지의 환한 세상이지만, 그 문 안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밖에 있는 사람들로서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누구든, 언제든 그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불과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빛과 어둠, 선과 악이 공존하는 게 '현실'이다. 악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여기에 또 하나의 딜레마적 상황이 존재한다. 누군가의 행동을 판단하는 기준 역시 선악이라는 것, 그 판단 역시 결국은 자신의 가치관에 의거했다는 것. 단순히 자기 기준에 의거하여 타인의 행동을 판단한다면 그것은 타당한가? 그것은 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예를 들면 탐정과 경찰서장은 기실 선과 악의 대비처럼 보여지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들은 모두 선이다. 단지 입장의 차이가 있고 관점의 차이가 있을 뿐. 즉, 경찰서장이 생각하는 선과 탐정이 생각하는 선이 일치하지 않는 것뿐이지, 이 둘을 선악이라는 기준으로 나누거나 판단할 수는 없다. 우리가 쉽게 '악'이라고 치부해버리는 것들은 사실 따지고 보면 이렇듯 매우 복잡미묘하게 얽혀있는 것이다. 도대체 당신의 선이 그의 선보다 더 선하다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는가? 그 순간, 당신은 당신이 오만하다고 손가락질했던 바로 그 사람이 되어 버리는데. 여기에 인간의 숙명적 딜레마이자 아이러니가 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는 순간부터 선악을 구분해야 하는 일은 모든 인간에게, 그리고 개개인의 인간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덧붙임]

1. 벤 애플렉이 각본 및 연출을 맡았다.

2. 내가 본 영화 중 가장 욕이 많이 나오는 영화다. 평생 들은 욕보다 이 짧은 영화를 통해 듣는 욕이 훨씬 많다. 그러니깐 이 영화를 보고 난 사람들은 아마 수명이 10년은 늘어날 거다.

3.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Gone baby gone'을 어떻게 '가라, 아이야, 가라'로 번역했는지 알 수가 없다.

4. '미스틱 리버'나 '셔터 아일랜드'도 데니스 루헤인의 작품을 영화한 것이다.

5. 여담이지만, 남자 주인공 참 맘에 든다. 위에 있는 사진을 봐도 알겠지만 시종 일관 헐렁한 면티에 트레이닝복, 면바지나 청바지만 입고 나온다. 영화 주인공치고는 참 소박한. 소설 속 인물을 얼마나 잘 반영했는지 원작을 안 봐서 알 수는 없지만 개인적으로 맘에 드는 탐정 캐릭터.

6. 데니스 루헤인의 '켄지 & 제나로 시리즈'는 지금까지 다섯 편의 작품이 나왔고, 조만간 여섯 번째 작품이 출간될 계획이라고 한다. 기회가 되면 영화가 아닌 소설로도 접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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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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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책읽는낭만푸우

    데니스 루헤인 역시 koogi님을 통해 알게 된 작가. ^^
    미국의 현실적 고민을 잘 담고 있는 작가 같다.

    2010.06.27 08:25 댓글쓰기
  • jollyman

    얼마든지 선이 악이 되고 악이 선이 될 수 있겠죠. 사실 선악에 문제에 대해서는 사상사에서 볼 때 선만이 있는 것이고 악은 선이 없는 것 정도로 치부하던 시절이 있었고, 선악의 구분 자체의 상대성 또는 이런 체계의 모호함 또는 더 나아가 파괴를 말하는 시절도 있었죠. 사실 현재가 그런 상대적인 시각이 판을 치는 시절이긴 한데... 이런 문제에 대해서 바디우가 써놓은 책이 있어요. <윤리학: 악의 인식에 관하여>라는 책이죠. 언제나 이런 문제를 대하게 되면 생각을 하게 되는 책이랍니다.

    2010.06.28 00:47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읽는낭만푸우

      우리가 처음으로 바디우를 이야기한 게 재작년이었던가요? 시간 참 빨리 가네요. 이 양반 덕에 만난 친구들이 꽤 됩니다. 아무래도 이 양반을 직면할 때가 무르익은 듯 합니다.

      2010.06.28 02:21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