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우리 삶을 기댈 수 있는 곳, 너도밤나무 숲
Beech

 

내가 좋아하는 크고 오래된 나무들이 가득한 너도밤나무 숲 중의 하나는 누터즈 넥이라는 지역에 있다. 봄이 오면 지금도 나는 그 숲으로 간다. 그곳에서 축축한 흙바닥 위에 떨어진 나뭇가지 아래 숨어 있는 붉은등도롱뇽을 찾아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중략) 이렇게 피부로 호흡을 하기 위해서는 늘 피부가 축축하게 젖어 있어야 한다. 이들에게 피부가 마른다는 사실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들은 바깥에서 활동할 만큼 습한 날씨가 되면 무리 지어 땅 위로 나온다. 이들은 땅 위를 뛰어다니며, 개미, 딱정벌레, 거미, 달팽이, 굼벵이를 찾아 잡아먹는다.
(중략)
도롱뇽들은 특히 오래된 나무가 많은 숲에서 주로 산다. 이들은 소나무 숲에서는 잘 살지 못하는데 그 이유는 솔잎이 산성이 강하기 때문이다(47, 49쪽).

 

대부분의 식물들은 식물이 처음 싹을 틔워 태양 빛을 향해 맹렬하게 자랄 수 있게 씨앗 주위에 영양이 듬뿍 담긴 녹말질의 양분을 감싸준다. 우리가 주식으로 먹는 옥수수, 콩, 밀 같은 씨앗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식물이 씨앗을 키우기 위해 만든 양분을 대신 먹는 것이다. 씨가 크면 보통 더 많은 양분이 저장되어 있다(53쪽).

 

너도밤나무는 40년 이상 자라야 비로소 씨앗을 품을 수 있다. 난과 달리 씨앗 안에 영양분을 가득 품고 있는 너도밤나무는 누구의 도움 없이도 혼자 묘목이 될 수 있다. 둥근 삼각형 모양의 너도밤나무 열매는 가시가 돋친 껍질 안에 들어 있으며 하나의 껍질 안에 보통 두세 개의 열매가 들어 있다. 가을에 껍질이 터지면 열매는 저절로 땅에 떨어진다. 사람을 비롯해 많은 동물들이 이 열매를 좋아한다. 너도밤나무의 라틴어 이름은 파거스fagus인데 이것은 그리스 어로 '먹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54쪽).

 

너도밤나무 열매는 다람쥐, 쥐, 새같은 작은 동물들만 먹는 건 아니다. 의외로 곰도 너도밤나무 열매를 무척 좋아하는데 곰에겐 아주 중요한 식량공급원이기도 하다. 곰이 살고 있는 지역을 보면 반드시 그 영역 안에 너도밤나무가 있다. 곰에게 있어서 너도밤나무 열매는 생존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슬프게도 나의 너도밤나무 숲에는 곰이 없다. 이 숲에서 곰은 1900년에 마침내 사라졌다(54-55쪽).

 

나는 사유지를 가진 사람이 그에게 숲 관리에 대해 조언을 구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그것이 자신이 하고 있는 중요한 부분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에게 아주 큰, 오래된 너도밤나무 숲을 가진 사람이 조언을 구한다면 어떻게 조언을 하겠냐고 물었다. 그는 땅에서 경제적인 이득을 얻기를 원한다면 너도밤나무를 베고 소나무를 심도록 권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곳을 떠나면서 조용히 내 신발에 묻은 먼지를 털었다(56-57쪽).

 

갓 태어난 하늘다람쥐는 초콜릿을 입힌 체리보다도 가볍다. 이 털도 없는 작은 생명들은 보지도 듣지도 못한다. 피부는 너무 투명해서 소화기관이 다 보일 정도다. 이러한 연약한 생명들은 몇 주 동안 어미 다람쥐의 헌신적인 보살핌을 받지 못하면 살 수가 없다.
하늘다람쥐는 둥지에 관한 한 놀라울 정도로 자기 영역을 주장하지 않는다. 특히 추운 날씨에는 '많을수록 즐겁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기라도 한 듯 가능한 많은 하늘다람쥐들이 한 둥지에 모여 몸을 웅크리고 부대끼며 지낸ㄴ다(60-61쪽).

 

반드시 필요한 일조차도 자신의 행위 하나하나가 다른 생명의 안식처를 파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반드시 받아들여야 할 패러독스다. 사실 모든 동물들이 자신의 집을 만들 땐 뭔가를 파괴한다. 어찌보면 지구에서 삶을 영위한다는 것 자체가 다른 생명을 담보로 시작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패러독스에 대한 유일한 도덕적 해결책은 우리가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을 최소화하고 우리가 그런 영향력을 미쳤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식하려고 노력하는 자세다. 희생자들에게 우리의 가슴을 여는 것만으로도―그들을 무시해서가 아니다―우리는 생태계에 좀더 예민해지고 관대해지며 그것과 하나가 된다. 아마도 이것은 우리에게 지구라는 커다란 울타리 안에서 서로 복잡하게 얽힌 인연에 따라 '제대로 사는 것'에 대해 많은 것을 가르쳐줄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파괴하는 유기체에 대해 우리가 느끼는 슬픔 조차도 보이지 않는 관계의 한 부분일 것이다. 나는 다시 릴케의 시로 돌아가고자 한다(62쪽).

 

나무를 안아보았나요
조안 말루프 저/주혜명 역 | 아르고스 | 2005년 11월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1

댓글쓰기
  • 누구에게나 인심 좋은 이웃, 양버즘나무Sycamore
     
    흔히 플라타너스라고 부르는 양버즘나무는 나에게 친숙한 나무다. 어린 시절 나는 양버즘나무의 나무껍질에 코를 대거나 두 팔을 벌려 부둥켜안는 걸 좋아했다. 그리고 심심할 때면 양버즘나무 위에 올라가 가지 사이를 옮겨다녔다. 나에게 양버즘나무는 가장 친한 친구였다(37쪽).
     

    2010.10.03 14:54 댓글쓰기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