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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친구를 처음 만날 날이 정확히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작년 말 아니면 올 초였던 것 같다.

암튼 봄은 오기 전, 겨울. 물론 캘리포니아의 겨울은 딱히 겨울이라고 하기 그렇지만.

 

어떤 옷을 입었었는지, 헤어스타일은 어땠는지 같은 건 전혀 기억이 나지 않고

전혀 웃지 않고

아이 컨택을 하지 않았던 건 기억난다.

 

미국 와서 그런 사람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 만난 날의 인상은 기억에 남아 있다.

 

어떻게 그 친구와 친해지게 되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한 달 넘게 못 본 적도 있었고, 일주일 내내 만난 적도 있었다.

 

며칠 전이었다.

 

친구가 쾌활하게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농담이라는 건 알았지만 농담을 할 친구가 아니라 반응을 못 하고

몇 초의 정적이 흐르는 사이

친구가 "농담이야."하며 웃었다.

 

"너 이제 농담도 할 줄 알아?"

했더니

"내가 많이 명랑해졌지?"한다.

"응. 너 처음 만난 날 너 내 눈도 안 쳐다봤거든. 그건 기억나."

"그땐 그랬어. 세상이 온통 우울했으니깐."

 

그러면서 뜻하지 않게도 자기 이야기를 했다.

 

"너, 내가 알래스카에서 온 거 알았어?"

"너한테 직접 듣지는 않았지만, 네가 알래스카에서 온 건 알고 있었어. 근데 누구한테 들었는지는 잘 모르겠어."

"그럼 내가 거기 있을 때 자살 시도를 두 번이나 했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

"아니."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자살'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거움, 더군다나 생각지도 못한 장소와 시간에서 듣게 되는 이야기도 조금 긴장도 됐다.

 

"실은 나... 의사가 캘리포니아로 가라고 해서 온거야. 아무래도 알래스카보다는 나을 것 같다고. 거기 계속 있으면 또 자살 시도할 거 같다고 해서."

"그랬구나."

 

뭔가 크게 액션을 하기엔 그 친구의 이야기가 담담하기도 했거니와,

호들갑을 떨만한 상황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냥 그 친구의 한 손을 꼬옥 잡았다.

 

알래스카에서의 생활, 두 번의 자살 시도, 눈을 떴을 때 병원이었던 것, 병원에서의 이야기, 그 이후의 가족들과의 관계 등등......

길지도 짧지도 않게, 높지도 낮지도 않게 그 친구는 그렇게 자기가 살아온 이야기를 해갔다.

 

"캘리포니아는 어때?"

"네가 보다시피. 많이 좋아졌어. 이젠 웃기도 하잖아."

"역시 캘리포니아의 햇살이 좋은 건가?" 내가 웃었다.

"그럴지도."

 

친구는 실제로 알래스카의 자살률이 높다는 이야기도 해줬다.

 

"요즘도 가끔 잠이 안 오는 날이 있어. 다시 우울해지기도 하고. 그래도 좋아."

"요즘도 약 먹어?"

"아니, 안 먹어."

"그래도 괜찮아?"

"그런 것 같아."

 

사실 내 주변에도 자살한 사람들이 몇 있다.

그 사람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을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지만 다 알 수 있는 건 아니다. 그건 설령 가족들이라고 해도 어쩌면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친구가 자기 이야기를 해줄만큼 나를 신뢰하게 된 게 고마우면서도

그 친구가 힘겹게 지내왔을 '과거'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뭐가 그렇게 힘들었던 건지 모르겠어. 왜 그렇게 우울했던 건지도 모르겠어. 요즘도 힘들 때도 있고 우울할 때도 있지만 죽고 싶겠다는 생각은 안 들어. 뭐라고 해야 할까? 그냥 모든 건 다 신의 뜻이다 그런 생각이 들어. 내가 죽을 날을 신이 이미 결정해 놓은 거라면 그냥 그때까지는 살아보자, 그런 생각."

"......"

"내가 괜한 이야기를 했지?"

"아니. 나... 너 안아주고 싶은데 괜찮아?"

"응."

 

허그로 마음을 얼마나 전달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내 마음이 어느 정도는 전달되길 바라며

친구를 꼬옥 안아줬다.

 

내 나이 정도 되면... 산다는 일에...

교만하게 되지 않게 되는 것 같다.

'삶' 앞에서 겸손해질 수 있는 건

'인생'이라는 게 무언지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기 때문인 것 같고.

 

겨울이다.

겨울.

 

한동안은 알래스카과 관련된 책들을 좀 찾아 읽어봐야겠다.

친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할 테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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