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1745-1820) 59세 초상
그린 이 모름(1803년 작), 비단에 채색 99.2x58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우리의 옛 그림 중에서 초상화는 특히 괄목케 되는 명품이 다수 전해 내려오고 있어 인물화에 있어 뛰어난 경지를 대변하기도 한다. 단순한 감상화나 장식화가 아닌 주인공의 정신과 인품, 학덕 등을 모두 화면에 옮겨야 하기에 화가들은 그 어느 분야보다도 열과 성의를 기울여야 했다.
이들 옛 초상화를 보노라면 사진같이 매우 사실적인 점에서 우선 묘사력이 대단함을 경탄케 된다. '나이 사십이 되면 얼굴에 책임을 지라'는 서양의 어느 철학자의 말도 겸해서 떠오른다. 나이든 모습이 주류를 이루는데 고결하고 의연한 풍채에 백발이 아름답게 묘사된다. 얼굴에 검버섯이 피거나 혹이 있으면 그대로 숨김없이 그렸다. 물론 그림의 주인공들은 어엿한 사대부들로 속된 표현을 빌리면 '성공한 사람들'로서 학자이며 정치가들이나, 이들 모두에게 공통된 느낌은 평생을 조신한 데서 비로소 가능한 맑고 투명한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부분이 소개되는 그림의 주인공은 이채 선생으로 그의 나이 59세 때인 1803년 초상이다. 병조참판, 동지중추부사를 역임한 문신으로 화면에 있는 찬문(撰文)에도 보이듯 순수한 마음, 학문에 싫증을 내지 않는, 맑고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임을 잘 보여준다. 중국이나 일본의 초상화와는 달리 전혀 과장이 보이지 않으며, 측근에서 평상시 살필 수 있는 푸근한 모습으로 생각된다. 맑고 깨끗한 삶을 영위한 노년은 화려하다. 잘 닦여진 보석과 같이 귀하고도 엄숙한 아름다움이기도 하다. 또한 우리들이 오늘날 잃어가는 진정한 아버지상의 원형이기도 하다.
아들이 아버지를 닮지 못함을 불초(不肖)라 했다. 무엇보다도 아버지의 덕망과 유업을 이어받지 못할 때 우리 선조들은 가슴을 치며 울었다. 우리는 타인에 의해 그려진 우리의 초상을 남기지 못할지라도 우리의 자화상은 어떨까? 그것은 순간마다의 마음가짐과 행동에 의해 점과 선이 새겨지며 그려져가고 있는 것이리라.
나는 공부하러 박물관 간다
이원복 저 | 효형출판 | 2003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