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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루였다. 그 짐승을 그처럼 가까이에서, 그처럼 자세히 본 것은 처음이었다. 반듯하게 뜬 노루의 커다란 눈은 어딘가 먼 곳을 향해 있었다. 헤드라이트 불빛에 빗질한 듯 가지런한 갈색 털을 빛내며 네 다리를 늘어뜨린 자세로 노루는 움직이지 않았다.
  일어나, 거긴 위험하다고. 그렇게 말해보았자 노루가 알아들을 턱이 없건만 그는 무언가 말을 건네고 싶었다. 불빛 아래 그렇게 누워 있는 순한 눈을 보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부당한 일처럼 여겨지는 거였다.
  “어쩌죠? 세상에…… 어쩌죠?”
  여자가 간절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노루처럼 둥근 눈이었다. 어째야 좋을지 그로서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죽은 그의 개처럼 야산 후미진 곳에 파묻기도 곤란했다. 노루는 여자보다도 커 보였다.
  “우선 저쪽으로 옮길까요? 여긴 위험하니까.”
  말하고 나니 이상했다. 이미 죽은 노루에게 위험이라니. 그러나 그는 막상 노루의 몸에 손을 대기가 두려웠다. 거짓말처럼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깨끗한 노루가, 어느 순간 부스스 일어나 눈망울을 두어 번 굴리고는 길 저편 산으로 사라질 것만 같았다. 여자와 그는 물끄러미 마주 보고 서 있었다.
  “피할 수가 없었어요. 못 본 게 아니었는데……”
  곧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아 인영은 더럭 겁이 났다.
  “제 차를 봤거든요. 분명히. 불빛을 보고…… 내려오던 길이었어도 거기 설 줄 알았는데…… 빨리 건너가기라도 했으면 좋았을 텐데…… 길 한가운데서 서버렸어요. 대체 왜 그랬을까……”
  불빛을 본 짐승이 순간적으로 눈이 멀었으리라 생각하면서도 그는 여자에게 위로를 건네지 못했다. 여자의 잘못이 아니었다. 잘못이 있다 한들 이미 죽은 노루에게는 아무런 용서도, 이해를 구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야트막한 야산, 낮은 잡목들이 눈을 이고 서 있었다. 노루가 살 법한 곳이 아니었다. 그 짐승은 어디서 나타났을까. 왜 하필 그때 길을 건넜을까.
서하진의 「나나」를 배달하며

빠뜨린 물건을 챙겨 부랴부랴 나온 길, 횡단보도 건너편에 헤어진 지 이십 년도 더 된 어릴 적 친구가 서 있는 거예요. 보고 싶었지만 연락처를 알 방법이 없었죠. 그 친구 말이 이 동네는 처음이라고, 버스의 안내 방송을 잘못 알아듣고 두 정거장 먼저 내리고 말았다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처럼 기막힌 우연이 없어요. 친구가 내릴 정거장에 제대로 내렸다면, 만약 빠뜨린 물건을 가지러 집에 다녀오지 않았다면, 우리는 영영 만나지 못했을 거예요. 생각해보니 그런 일이 많네요. 그날 버스가 이 분만 늦었다면, 폭우에 비행기가 연착되지 않았다면,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 다른 골목으로 접어들지 않았다면…… 그러지 않았다면 전 그들과 만나지 못했을 거예요.

그 밤 노루는 어디에서 온 걸까요. 하필이면 왜 그 시간 그 차 앞을 지나가려 한 걸까요. 혹시 그 노루가 한 남자와 한 여자를 만나게 하려 그 시간 그곳에 나타난 건 아니었을까요. 돌아보세요, 어쩌면 우리의 인연에 이렇듯 한 생명이 온전히 바쳐졌을 수도 있다는 걸요.

문학집배원 하성란의 문장배달 - 11/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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