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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부터 잠자기 전에 조금씩 읽을 책으로 알베르토 망구엘의 <독서일기>를 꺼냈습니다.

쉰세번째 생일에 예전부터 좋아해온 몇몇 책들을 다시 읽어보기로 결심한 망구엘이 1년 동안 한 달에 한 권씩 책을 읽으면서 각 책을 읽음으로써 싹튼 생각과 성찰, 여행에서 받은 인상들, 친구들 또는 공사를 망라한 여러 가지 일의 짧은 스케치를 담아 책으로 엮었는데요... 2002년 6월에 읽은 책은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의 <모렐의 발명>입니다.

 

일기처럼 써내려간 글들을 읽다가 이 부분에서 딱 멈췄어요.

읽어볼게요.

 

너무 드러내지 않으려고 그런 것 같은데, 비오이 카사레스는 열렬한 애국자였으면서도 주인공을 베네수엘라 사람으로 설정했다. <모렐의 발명>은 주인공이 향수에 젖어 조국의 의미를 하나씩 되뇌는 장면으로 끝난다. 장소와 사람, 사물, 순간, 행동, 국가의 한 소절 등이 나열된다. 나도 똑같은 방법으로 부에노스아이레스를 기억해볼 수 있다.

 

아,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저는 '서울'이 아련히 떠오르더라구요(제가 지금 타국에 살고 있어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밖에서 들리는 신명난 사물놀이 소리, 그와 대조되는 정적인 봄날의 동아리방, 새내기, 비오는 여름에 먹던 칼국수와 맛깔난 김치, 복날 여염집에서 풍겨오는 삼계탕 냄새, 지하철 안내 방송, 난폭한 시내버스, 새벽 일찍 맞는 캠퍼스의 신선한 공기, 학교 앞 서점, 질리게 먹은 유부국수, 조용한 겨울의 눈온 밤, 그 길을 걷는 너와 나, 봄밤의 벚꽃 같은 것들이요... (그러고 보니 대부분 20대 초반의 기억이네요. 학부 시절. ^^)

 

여러분이 아려한게 떠올리는 '그곳'은 어딘가요? 그리고 당신이 기억하는 '그곳'은 어떤 이미지인가요?

문득 궁금해졌어요. 나와 동시대를 산 사람들은 어떤 기억과 이미지를 담고 살아가는지 말이죠.

 

아, 아까 문장에 이어... 알베르토 망구엘이 기억하는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다음과 같습니다. 망구엘처럼 목록을 만들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내가 기억하는 OO'이런 식으로 말이죠. ^^

 

내가 기억하는 것

  • 10페소짜리 지폐의 진홍색
  • 제과점에서 팔던 다양한 롤빵: 페베테(브리오슈 비슷한데 달착지근하다), 푸가사(납작하고 바삭하다), 미뇽(좀더 작고 더 바삭하다)
  • 해로즈 백화점의 이발소에서 머리카락을 다 자른 이발사가 아버지 얼굴에 톡톡 바라주던 향수 냄새
  • 일요일 오후에 하던 라디오 콩트, 라 레비스타 디스로카다(잃어버린 잡지)
  • 푸엔테 사베드라 아치 밑에서 팔던 세피아 색 소녀 잡지들
  • 푸티트 카페의 조그만 터키 샌드위치
  • 바란카스 데 벨그라노 구역의 커다란 고무나무 주변에서 나던 강렬한 암모니아 냄새
  • 내 창문 밖 자갈길 위를 굴러가던 음료수 수레의 바퀴 소리
  • 저녁 식탁 위의 청량 음료와 와인 병
  • 점심 식사 전에 풍기던 닭고기 수프 냄새
  • 연기를 뿜어대며 대서양으로 출범할 준비를 하던 대형 증기선들
  • 이른 봄날 아침의 자카란다 나무들

 

 

독서일기

알베르토 망구엘 저/강수정 역
생각의나무 | 2006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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