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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집에 가는 길에 잠깐 들리겠다고 전화가 왔다.

"많이 아파?"

"에어컨 때문인가봐."

 

친구가 주고 간 건 참 뜬금없게도 과자 종합선물세트다.

"한국마트에 팔더라구. 웃기지 않아?"

"응."

 

"이게 뭐야?" 남편이 묻는다.

"OO이 주고 갔어."

"이거 웃긴다. 아이언맨이 한국서도 인기이긴 한가보다. 이런 과자 세트가 나오는 걸 보면."

"상술이지. 이 안에 과자가 들었으면 몇 개나 들었겠어. 마스크 때문에 애들이 혹해서 엄마한테 사달라고 조르겠지."

"암튼 웃기긴 하다. 하나 먹어 볼래?"

"나 과자 별로 안 좋아하잖아."

"나도 그렇긴 한데 심심하니깐 하나 먹어보자."

 

남편이 상자를 뜯어 주섬 주섬 과자들을 꺼낸다.

처음 보는 과자도 있고 익숙한 과자도 있다.

 

"와, 꼬깔콘이 아직도 나오네. 나 이거... 초등학교 3, 4학년 이후로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데."

"나도."

"우린 참 군것질 안 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우리 같으면 제과회사는 다 망했을 거야."

"맞아." 남편이 웃는다. "뭐 먹을래?"

"꼬깔콘."

"그래."

 

남편이 먹기 좋게 과자를 뜯는다.

하나 집어 먹었는데 생각했던 것처럼 짜지 않다. 맛이 극단적으로 자극적인 건 아니다.

"먹을 만하다. 그치?"

"응."

내가 열손가락을 쫙 편다. "오빠, 나 여기에다 꼬깔콘 끼워줘."

"맞아. 우리 때는 이렇게 먹었지."

남편이 웃으며 열손가락에 과자를 끼워준다.

"왕."

하나씩 와작 와작 와사삭 먹는다.

"재밌다. 이거. 생각보다 재밌고 생각보다 맛있어."

"응. 나는 이렇게도 먹었어."

남편이 한 손가락에 꼬깔콘을 계속 끼운다. 아슬아슬 떨어지기 직전까지, 꼬깔콘을 포개고 포개고 포갠다.

"이렇게 하면 마귀 할멈 손톱 같지 않냐? 무섭지?"

"아니, 하나도 안 무서운데. 나 줘. 내가 먹을래."

"응." 남편이 조심조심 손가락을 움직여 먹기 좋게 들어준다.

"왕. 맛있다."

또 와삭 와삭 하나씩 먹는다.

"왜 우린 과자의 즐거움을 모르고 사는 걸까?"

"너나 나나 단 거 별로 안 좋아하구... 자극적인 맛을 안 좋아하잖아. 우린 싱거운 거 좋아하구 간식도 별로 안 좋아하구."

"맞아. 맞아." 내가 웃는다.

"그래도 가끔은 과자 사먹을래? 생각보다 맛있지?"

"응, 미국 과잔 너무 달고 짜고 그래서 벌칙 같은데, 한국 과자는 고소하고 담백해서 먹을 만하다."

"그치? 앞으론 가끔 한국 과자 사다 먹자."

"그래그래."

 

그리고 며칠 후.

 

서재에 있는데 남편이 잠깐만 나와보라고 한다.

나가봤더니

.

.

.

.

.

.

.

.

.

.

 

이게 바로 그 마스크.

과자 종합선물 세트에 있던 아이언맨 마스크를 오려서 저렇게 쓰고 있는 거다.

손을 쫙 펴곤 제법 멋진 포즈로 서 있다.

"I will keep you Safe."

"Why are you speaking in English?"

"Because I'm Iron Man."

 

아, 귀여워. 이 남자는 정말... 너무너무 사랑스럽다.

그 과자세트 안에 아이언맨 마스크가 세 개 들어 있었는데 나머지 두 개는 푸우 인형들에 씌워서

한 손에 하나씩 들고 셋이서 "We will keep you Safe!"도 한다.

 

사실 나는 남자들이 결혼하며 여자한테 "내가 평생 책임질게."이런 말 하는 거 좀 이상하다.

각자 자기 인생을 사는 거고, 다 큰 성인들인데, 누가 누구의 인생을 책임진다는 거 좀 웃긴다.

각자 자기 인생을 사는 거다. 남자든 여자든.

딱히 누굴 의지하거나 의존적인 성격도 아니다.

 

남편이 내 인생을 책임져줄 거라 생각하지도 않고, 남편에게 내 인생 책임져 달라고 강요하거나 부담을 줘본 적도 없다.

그런데도 이 '퍼포먼스'는 나름 감동적이었다.

저 사람이 내 인생을 책임져주고, 험한 세상에서 나를 안전하게 지켜줄 거라고 생각해서라기보다는

그냥 그 마음이 너무 예뻐서.

 

지난 주는 내내 몸이 너무 아파서 고생을 했는데

결국 남편의 저 '퍼포먼스'를 기점으로 조금씩 건강을 회복했다.

이래서 사랑의 힘이 위대한 거다.

 

"너무 감동적이다."

"너를 기쁘게 해주고 싶었어."

"충분히 기뻐. 너무 고마워."

"응, 그러니깐 아프지 마."

"알았어. 다음 번에 한국 마트 갈 기회 있으면 이거 또 사다 먹을까?"

"그래."

"그럼 나를 지켜줄 아이언맨이 여섯으로 늘겠네. 하핫."

"그렇게 되나? 물론 총책임자는 나구."

"어, 고마워. 아주 든든해."

"무얼."

"진짜루 많이.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나두.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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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라지가 뒤에 있어서 주로 뒷쪽 문을 이용한다.
    메일박스를 확인하는 거 외에는 현관을 이용할 일이 없는데,
    요즘엔 혹시 한국에서 편지라도 온 게 있나 싶어 메일박스 체크를 열에 일곱은 내가 한다.

     
    근데 그때마다 항상 현관 앞에 수북하게 쌓여 있는 박스들.
    우울증을 쇼핑으로 달래는 남편 때문에 현관

    2013.12.23 09:26 댓글쓰기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