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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본 책

'인사회'라고 '인문사회과학 출판인 모임'이 있다.

작년에 이 모임에서 MBC 노조를 위한 후원 바자회를 했었다.

외국에 있지만 한 마음으로 MBC 노조의 파업과 투쟁을 지켜보고 있던 차에

고맙게도 출판인들이 뜻을 모아 의미 있는 동참을 하는 것이 고마워서

어떻게든 돕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내가 주로 '인사회'의 소식을 들은 건 돌베개 트위터를 통해서였기 때문에

DM으로 그런 의사를 전했다.

사실 귀찮다면 귀찮고 번거롭다면 번거로울 수 있는 일이었는데

흔쾌히 오케이를 해줬다.

좋은 일에 동참해줘서 고맙다는 말과 더불어.

 

그 바자회가 리퍼브 도서를 판매해서 그 수익금을 전액 기부하는 형식이었는데,

나는 외국에 있고 한국 통장에 돈도 별로 없어 많이 기부는 못 했지만,

그 금액만큼 책을 보내주겠다고 했다.

 

사실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책보다는 기부가 목적이었고,

멀리서나마 어떤 식으로든 힘이 되는 게 목적이었기 때문에.

 

그런데 약속대로 내가 기부한 금액만큼 리퍼브 도서를 보내줬다.

사실 그것만도 고마웠는데, 늦어져서 미안하다며

나랑 연락을 주고 받았던 분이 돌베개에서 나온 책 한 권도 선물로 보내준 거다.

리퍼브 도서라도 고마웠을 텐데 새 책으로.

 

흔히 출판사 마케터들이나 인터넷서점 MD나 직원들이 착각하는 게 있는데,

독자들은 '공짜 책'을 밝히는 게 아니다.

물론 간혹 그런 사람들도 있겠고, '책은 사서 보는 게 아니라 공짜로 얻어보는 것'이란 인식을

독자들에게 심어준 건 일정 정도 출판사와 인터넷서점의 잘못도 있다고 생각하고 안타깝게 여기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공짜'에 방점을 찍지는 않을 것이다.

 

솔직히 책을 읽는다는 건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가능한 일이다.

영화도 볼 수 있고, 친구도 만날 수 있고, 차를 마실 수도 있는 그 시간에 그 모든 것 대신 책읽기를 선택했다는 건 그만큼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이고.

 

그래서 정말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공짜로 준다고 책을 덥썩 덥썩 받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좋은 책을 보는 안목이 있고, 그 기준에 의해서 책을 고를테니 말이다.

 

그러니깐 내가 그 분께 감동을 받았던 건, 그리고 그 만남이 기분이 좋았던 건,

'공짜로 책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책에서 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 이 사람은 정말로 고마워하고 있구나.'

'아, 이 사람은 이 만남을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구나.'

 

그게 참 기분 좋았다.

내가 그렇게 생각했던 이유는 그 사람이 선물한 책이 고심해서 고른 것이라는 단번에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증정' 도장 찍어 보내는 형식적이고 관례적인 책이 아니라,

책을 좋아하는 누군가가 책을 좋아하는 누군가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었던 마음이 드러나는 책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증정'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고마운 마음에 우러나서 보낸 '선물'이라는 게 물씬 느껴지는

정말 감동적인 선물이었다.

 

돌베개는 학부 때부터 아끼고 사랑하던 출판사였지만,

그 한 사람으로 인해 돌베개에 대한 애정이 더욱 커졌다.

 

물론 출판계에 종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책이 좋다는 순수한 마음과 열정으로 그 일을 할 거라고 믿는다.

그런데 어느 조직이나 집단이 그렇듯 미꾸라지 몇 마리들이 온 강물을 흐린다.

외부에서 보기엔 그런 사람들만 눈에 띄기 마련이고.

 

사실 나도 여러 번 불쾌한 경험도 하고, 실망도 했었다.

너무 뻔하게 눈에 보이는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친한 척하다가 자기 목적이 달성되지 않으면 욕하며 돌아서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회의가 들었다. 저 사람들은 도대체 독자를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저들에게 있어 독자는 어떤 의미일까?

 

암튼 이 일은 그 모든 불쾌한 경험들을 상쇄할 만큼 유쾌하고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 사람에 대한 고마움을 두고 두고 마음에 갖고 있었는데,

'돌베개' 대표계정으로 연락을 주고 받은 거라 누군지는 모르고 있던 터에

 

며칠 전에 채널예스에서 기사 하나를 발견했다.

일명 '페친소 특집'이라고 각 출판사의 페이스북 담당자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는 거였는데,

정말 우연찮게도 내가 보게 된 게 돌베개 담당자의 인터뷰였다.

 

인터뷰를 다 읽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트위터에 글을 남겼다.

그 기사를 링크해 같이 올리면서 혹시 페이스북 담당자가 트위터도 관리하면 연락 좀 달라는 내용이었다.

 

한국 시간으로 출근할 시간이 되자마자 (아마 확인하자 마자 신속하게 답글을 단 것 같다. 사실 이런 것도 참 감동적이다. 몇날 며칠이 걸려도 답변 안 주는 데도 많으니깐) 글이 달렸다.

자기가 페이스북과 트위터 모두를 관리한다는 거였다.

 

그 글을 보자마자 DM으로 작년 일을 이야기하며, 혹시 그때 도와준 분을 찾고 싶은데 도와줄 수 있는지를 물어봤다.

혹시 본인인가요, 라고 기대를 품고 물어봤는데

제가 맞아요, 라는 답변이 왔다.

 

와, 'TV는 사랑을 싣고'에서 오랫동안 보고 싶었던 사람을 만나면 이런 기분일까?

두고 두고 고맙고, 그래서 참 생각났던 사람인데,

이렇게 1년 반 정도 만에 재회를 하게 된 것이다.

 

반가운 마음에 그때 참 고마웠다는 인사와 함께,

감사 편지를 보내고 싶다고 했더니 고맙다고 했다.

마음을 담아 정성스레 보내려고 예쁜 카드와,

홀리데이 리미티드 우표도 구입했다.

 

그동안 고마웠던 마음을 담아 정성스럽게 편지를 쓰려고 한다.

 

흔히 그 회사의 인상은 수위가 결정한다는 말이 있다.

물론 수위만 보고 그 회사의 전체 이미지를 판단하는 건 섣부른 일이지만,

그만큼 첫인상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어떤 집단이나 조직의 대외적 이미지를 결정하는 건 결국 조직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라는 의미이기도 하고.

더군다나 외부의 사람들을 대하고 접하는 사람들이라면, 그 사람이 그 조직의 인상을 좌지우지할 가능성은 그만큼 커진다.

 

나는 이 출판인 한 사람으로 인해

돌베개에 대한 이미지뿐 아니라

출판인들 전체에 대한 이미지도 아주 좋아졌다.

 

물론 지금도 간혹 실망하게 될 일들도 있고, 그런 사람들도 가끔 만나게 되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는 이런 사람들이 더 많을 거란 생각으로 위안을 삼는다.

 

대부분의 출판인들이 그저 책이 좋아서 그 일을 평생의 업으로 책한 것처럼,

대부분의 독자들도 그저 책이 좋아서 시간과 돈을 들여 책을 사고 읽는다.

출판계와 출판문화를 구성하는 각 주체들이 서로에 대한 이런 믿음이 있으면 좋겠다.

요즘 같은 분위기는... 한국 출판계를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무척 실망스럽다.

 

각 주체들이 '첫 마음'을 기억했으면 좋겠고, 그런 식으로 다른 주체들도 응원하고 격려해주면 좋겠다.

생각해보면 어차피 책을 만드는 사람도 책을 파는 사람도, 출판사 대표도, 인터넷서점 대표도 결국은 책을 좋아하는 독자일 뿐이다. 독자였던 누군가가 그걸 업으로 삼은 건 독자들 중에서도 유독 책을 더 사랑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사실 따지고 보면 전체 인구 중 '책 읽는 사람'은 극히 일부이다.

과연 전체 한국 사람 중 한 달에 네 권 이상 책을 읽는 사람(그래도 책 좀 읽는다 말을 하려면, 책을 사랑한다 말을 하려면 한 달에 네 권은 읽어야 할 것 같아 임의로 정해봤다)이 몇 퍼센트나 될까?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소수이고 약자다.

 

그런데 왜 서로 서로 연민하고 연대하지 못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할퀴기만 하는 걸까?

사실 가장 안타까운 부분은 그 점이다.

 

암튼, 최근 있었던 일련의 사건들을 보며 거의 낙심하고 있던 차에 (내 돈 주고 책 사면서 왜 이런 꼴을 봐야 하나? 아예 책을 끊자, 는 생각까지도 했었다. 나처럼 외국에 사는 사람이 한국어로 된 책을 소장하려면, 책을 구입하는 거 외에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한국에서 책을 실어와야 하고, 또 운임비까지 들여야 해외로 책을 가져올 수 있다. 책값에 운임비까지 포함해서 일년에 5-600권씩 책을 구입하는 데 드는 돈도 만만치 않다. 물론 그걸로 생색낼 생각은 없다. 어차피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깐. 다만, 그 일이 참 무의미하게 느껴졌다는 거다. 일련의 '이전투구'식 '밥그릇 싸움'을 보면서) 이 분과 다시 연락이 닿게 되어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여전히 그 사람은 책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만이 뿜어낼 수 있는 좋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 일이 정말 좋아서 하는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운들이 그가 쓰는 글들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래서 그냥 보고만 있어서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쪽지를 주고 받는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참 행복해졌다.

 

 

바로 이분이다.

조원형 씨.

출판인들에게 대한 믿음을 다시 갖게 해준 분이다.

 

 

한국의 나무

김진석 저
돌베개 | 2011년 12월

 

그리고 그때 그분이 선물했던 책이 바로 이 책이다.

곁에 두고 틈나는 대로 읽고 또 읽는 책이다.

어떻게 보면 가장 돌베개스러운 책이기도 하다.

돌베개의 우직스러움만이 이런 나무도감을 만들 수 있으니깐.

 

이렇게 좋은 책을, 이렇게 기분 좋은 사람에게 받았으니

두고 두고 보게 되는 책이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꽤 많은 책을 소중하고 있지만, 그 많은 책 중 내가 가장 아끼는 책 중 한 권이다.

 

독자들은 결코 좋은 책을 배신하지 않는다.

물론 사랑받지 못하고 사장되는 책들도 있기는 하지만, 더뎌지는 것일뿐 양서는 언젠가는 독자들이 알아본다고 생각한다. 좋은 사람 눈에는 좋은 것만 보이는 법이니깐.

이런 책은 반드시 사랑받을 수밖에 없다.

적어도 '독자'로서 나는 그런 믿음을 갖고 산다.

 

 

이 글의 마지막은 신영복 선생님의 글로 맺고 싶다.

내가 이 분을 다시 만나게 된 채널예스 기사의 맨 위에 있던 사진이기도 한데, 이것이 출판사로서의 돌베개의 가치관뿐 아니라 넓게 보아 모든 책읽는 사람들, 그러니깐 모든 출판인들과 독자를 포괄하는 출판계를 구성하는 주체들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는 글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책은 세 번 읽어야 한다.

먼저 텍스트를 읽고

두번째로 필자를 읽고

마지막으로 독자 자신을 읽어야 한다.

 

어찌 보면 대개의 독자들이 일독이나 이독에서 머물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게 아닐까?

독서의 마지막은 자기 자신을 읽는 게 되어야 한다. 자기를 잘 아는 사람, 자신을 잘 궁구하는 사람, 잘 성찰하고 반성하는 사람은 타인도 잘 이해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거기서부터 소통이든 연대든 가능한 것일테고.

 

모든 씨보다 작은 이 겨자씨 같은 믿음이 언젠간 자라나 나무로 우거지길. 그래서 공중에 나는 새들이 거기 깃들 수 있길 바란다. 성경은 천국이 그렇게 확산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책이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할 때, 그것이 가능한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결국은 책을 좋아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믿음과 힘이, 세상을 바꿀 수도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많은 만남이 있는데요, 책을 통해 스스로의 생각을 존중하고 타인과 사회를 고민하면서도 여유와 긍정을 잃지 않는 분들과의 멋스럽고 맛스러운 만남", 이것이야 말로 책을 읽는 사람끼리 할 수 있는 가장 최소의 그렇지만 가장 최상의 소통이자 연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 글에서 인용한 채널예스의 기사는 http://ch.yes24.com/Article/View/23250에서 볼 수 있다.

*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 직접 인용한 것은 인터뷰의 내용 중 일부를 가져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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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uju

    읽어보고 싶은 책이네요. 좋은 책소개 감사합니다^^

    2013.11.17 19:21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읽는낭만푸우

      사연이 있는 책은 특별해지죠. ^^

      2013.11.19 01:40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