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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원하는 삶을 살 것인가

[도서] 어떻게 원하는 삶을 살 것인가

우간린 저/임대근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I. 원치 않는 삶을 피하기

 

한 번은 공자와 제자들이 태산 아래를 지나고 있었는데, 먼 곳에서 한 여자가 새로 만든 묘 앞에 엎드려 울고 있었다. 공자가 이유를 묻자 여자가 대답했다. 자신의 집안은 사냥으로 먹고 살았는데 태산에 호랑이가 날뛰어 걸핏 하면 사람을 다치고 죽게 하더니 결국 시아버지와 남편이 모두 호랑이에 물려 죽었는데, 설상가상으로 바로 며칠 전 어린 아들마저 호랑이에게 잡아먹혔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공자의 제자 중 한 명이 물었다.

산에 호랑이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떠나지 않았소? 만일 진작 이곳을 떠났다면 아들을 지킬 수 있지 않았겠소?”

그러자 여자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이 고사는 ≪예기禮記≫ <단궁檀弓 편>에 나오는 것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苛政猛於虎는 여자의 이야기를 듣던 공자가 탄식하며 한 말이다.

 

가혹한 정치가 호랑이보다 무섭구나! 호랑이가 있는 곳에서는 그래도 모두가 잡아먹히지는 않지만, 가혹한 정치 아래서는 살아 남을 사람이 없구나! 앞으로 너희가 출사를 할 기회가 있다면 반드시 이런 백성을 잘 돌보아야 하느니라!” (pp.314-315)

 

 

공자의 그 어떤 말보다 이 문장이 크게 와닿는 것은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모두가 뼈저리게 공감하는 한국의 현실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특히 박근혜 정권 들어 보이고 있는 여러 경제 정책들은 그야 말로 사나운 호랑이보다 더 가혹하고 무섭다.

기업하기 좋은 노동유연화정책으로 인해 끊임없이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고용불안정이 지속되고 있다. 최소한의 인격마저 무시당한 아파트 경비원은 분신 자살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가 일하던 아파트 경비원들은 모두 일괄 해고 통지를 받았다. 경제 수장이라는 부총리가 나서서 정규직이 과보호되고 있다며 (기업을 위해) 정규직의 해고를 용이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은 아직도 일터로 복귀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점점 늘어나는 하우스 푸어들은 신빈곤층을 형성하고, 젊은 세대들은 취직과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 ‘송파 세모녀 사건에서 볼 수 있듯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비극적 선택을 하기도 한다.

그뿐이 아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규명되지 않는 진실에 여전히 눈물 흘리고 있고, 강정과 밀양 등에서 사회적 약자들이 사회 정의 실현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대개는 경제논리에 의해 그들의 요구는 거듭 묵살되고 있다.

 

청와대의 행보는 시종일관 일방적이다. 여론을 수렴하거나 국민을 통합하려는 의지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더욱이 사적인 인맥과 권력에 의해 모든 시스템들이 마비되어 있다시피 해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투명해야 할 과정들은 모두 은폐되고, 몇몇 대통령 측근들이 사적으로 전횡을 일삼고 있다.

실로 가혹한 정치는 맹수보다 무섭다는 것을 우리는 매일 거듭해서 목도하고 있다.

 

인간을 규정하는 여러 가지 정의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은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언어를 통해 교류한다는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간 개념은 현대 민주주의시대에 더욱 부합한다. 플라톤과 마키아벨리를 거치면서 정치적 동물의 개념은 소수의 엘리트들만이 아닌 인간 모두에게로 그 외연이 확장되었다. 오늘날 정치는 매우 중요하며 모든 인간이 각자가 원하는 인생을 살기 위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는 게 정치적 안정이다. 소수의 위정자가 호랑이가 되고 대다수 국민이 호랑이에게 잡아 먹히는 현실은 언어로 교류하는 정치적 동물로서 인간 본성에 부합하지 않는다. 권력 독점을 통한 정치의 독점은 대다수 국민의 인간 본성을 박탈하는 것이고 그들을 유적 존재로부터 소외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현실을 감당할 수 없어  도피하는 것은 소외를 또 다른 소외로 대체하는 것에 불과하다. ‘가혹한 정치를 피해 태산 밑에 살던 여인이 그랬던 것처럼 원치 않는 삶은 피하는 것은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세상이 절대 바뀔 리 없으니 아예 세상을 피해 은거하자는 제안에 공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원하지 않는 삶을 피하려는 소극적인 자세가 아니라, 원치 않는 삶을 원하는 삶으로 바꾸려는 적극적인 의지와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II. 원하는 삶을 추구하기

 

공자는 바른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평생 천하를 주유했다.

 

예의 관점에서 보면 그 말씀이 옳습니다. 하지만 인의 관점에서 보면 한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백성입니다. 군주와 백성의 관계는 배와 물의 관계입니다. 군주가 배라면 백성은 물입니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고, 배를 뒤집을 수도 있습니다.” (p.297)

 

2천년 전에 공자가 한 말이다. 이것은 현대 민주주의와 매우 유사하다. 모든 정치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 모든 정치 권력은 국민을 위한 것이고, 따라서 국민을 위하지 않는 권력은 침몰될 수밖에 없고 침몰되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정치 권력이 배라면 국민은 물이기 때문이다. 국민을 거스르는 정치 권력은 존재할 수 없다.

 

왕권주의하에서 이 말은 군주를 경계하고 군주에게 교훈을 주기 위한 말이었겠지만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국민 스스로가 자기들의 권력을 인지하고 그 힘을 행사할 수 있게 해주는 말이다. 모든 힘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서 나온다.

 

그런데 국민이 가장 손쉽게 정치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투표이다. 자신의 정체성과 정치적 지형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합당하게 투표함으로써, ‘정치적으로 올바른사람을 대통령으로 혹은 위정자들로 뽑을 수 있다.

 

히틀러가 독일인들의 자발적 선거를 통해 지도자가 되었다는 것을 기억하자.

잔인한 호랑이보다 가혹한 정치를 지속시킬 것인가, 중지시킬 것인가?

폭정을 경험하면서도 계속 동일한 투표 행위를 보인다면, 그것은 호랑이들이 기세좋게 날뛰도록 도와주는 꼴이다.

우리에게는 선거라는 도구가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건망증이 가장 심한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을 잊어버린 사람입니다.” (p.297)

 

공자가 애공에게 했다는 이 말은 군주의 도리를 깨우치기 위한 것이었지만, 우리 모두에게도 적용된다.

국민의 동의 없는 정치 권력은 있을 수 없다. 이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정치란 국민을 아끼고 국민을 으뜸으로 삼는 것이다. 이 점 역시 잊지 말자.

위정자는 어떤 경우라도 국민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 이 점 역시 기억해야 한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어떻게 원하는 삶을 살 것인가?”

 

 

이 질문의 대한 답은 명확하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스스로 자기 자신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점인데, 삶의 많은 영역 중에서도 특히 정치적 영역에서 이 것은 매우 중요하다.

 

개인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자신의 수양과 자기 계발도 필요하겠지만,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구조 변화가 수반되지 않는다면, 개인들이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도와 정책들이 잘 시행되고 있는지 감시하고 잘못된 것들이 있다면 개선하고 개정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요컨대 어떻게 원하는 삶을 살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개인의 의지나 노력만큼 중시되고 반드시 병행되어야 할 것이 사회의 변화이다. 호랑이보다 가혹한 정치가 계속되는 한 어느 개인도 행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신은 진짜 행복하기를 원하는가? 당신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를 바라는가?

그렇다면 무엇보다 정치적으로 각성해야 한다.

맹수처럼 가혹한 정치 하에서 당신은 절대 개인적 안정과 평화, 성공을 누릴 수 없다.

그것이 공자를 통해 얻어야 할(혹은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지혜이자 깨달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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