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지난 몇 달 동안 남편은 매일 야근을 했다. 자정 넘어 집에 들어오는 그의 몸에선 냉장고 깊은 곳에서 홀로 썩어가는 된장 냄새가 났다. 슬프지만 외면하고 싶은 냄새였다.

 

*

 

꿈 따윈 들어오지도 못할 만큼 짧은 잠을 자고, 새벽 여섯 시, 남편과 나는 담담한 표정으로 집을 나섰다. 낮 시간은 너무 바쁘다. 지난 밤의 상상을 이어갈 틈이 없다.

 

*

 

의심은 소문을 만들고 소문은 진실을 만든다. 의심과 소문과 진실의 삼각형에 갇힌 채 그는 결백을 주장하고 나는 더러운 손톱을 자근자근 씹어 먹는다. 열심히 돈 모아 작은 전셋집이라도 얻으면 아이부터 갖자고 말하며 소주 한 병도 다섯 번에 나눠 마시던 안쓰럽고 애달픈 사람. 그런 그가 어쩌다 더러운 소문의 주인공이 되어버렸을까.

 

*

 

내가 말했죠. 주변인 탐문하면 모두들 그 사람 칭찬만 한다고. 나는 그게, 용의자가 위선적이거나 뭐, 용의주도해서 그런 건 아니라고 봅니다. 사람에겐 그냥, 이런 모습도 있고 저런 모습도 있는 겅요. 그렇게 생각하면 간편하죠.

 

*

 

왜 그랬다고 생각해, 아줌마는?”

내가 어떻게 알아!”

견고하던 목소리가 와장창 깨져 산산조각 났다. 내 안에서 터져 나온 그 소리를 주워 담느라 열 손가락 모두 상처가 났다.

 

*

 

내가 악역을 자처했듯 그 역시 악역을 감수했다. 반드시 그래야 했다. 무자비해지는 것만이 최선이었다. 모두 이해한다는 행동. 전부 내 탓이라는 포즈. 아무 일 아니라는 기만. 상처를 극복하겠다는 허세. 그건 다 사치였다. 그런 가식으론 그 누구도 위로할 수 없었다. 우린 서로를 물어뜯어야 했다. 당신은 진짜 나쁜 인간이라고 욕해야 했다. 그래야만 했다.

 

*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가 의심을 받는 것만으로도 내 삶의 기반이 완전히 무너진다는 사실에 이를 악물었다. 사실, 사실 말입니다를 강조하던 경찰의 말투가 떠올랐다.

 

*

 

소문은 의심을 만들고 의심은 진심을 만든다. 의심이 먼저든 소문이 먼저든 진실의 자리는 언제나 맨 끝이다. 사람들은 의심과 소문을 함부로 버무려 진실을 만들고 있다.

 

*

 

나는 그라는 인간이 아니라 내 남편인 그를 믿는다. 이것은 정당한 믿음일까.

 

*

 

지킬 수 있는 약속만 하는, 언제나 신중한, 모난 구석 없고 누구에게도 미움받지 않던 사람. 지나치게 평범한 그가 내 눈엔 너무 특별해 보였다. 세상에서 가장 진짜에 가까운 사람이 내 남편이라는 확신. 그것 하나로 모든 가난과 피로와 불행을 견뎌왔다. 그러니까 그를 믿어야 하나.

 

 

 

팽이

최진영 저
창비 | 2013년 09월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0

댓글쓰기


  • 외도를 눈치챘지만 아는 척하지
    않았다. 울고불고 따질 여력이 없었다. 내가 안다는 걸 그가
    알게 되어 둘 사이에 생길 감정 소모도 피하고 싶었다. 잠시 이혼을 생각했지만 번거로웠다. 일상을 해치우기도 버거웠다. 돌아올 사람이면 돌아오겠거니 생각했고, 그는 돌아왔다.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서로를 대했다. 고백도 용서도 없이, 마치 아무 일도 없었

    2018.05.18 06:33 댓글쓰기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