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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이런 그릇을 쓰지 않으니 정말 오랜만에 보는 건데... 한참을 들여다봤다.


아주 옛날, 그러니깐 내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아주아주 옛날, 엄마는 출타한 아빠가 돌아올 때쯤 새밥을 지었다. 지금처럼 휴대폰이 있는 것도 아니고 교통편이 좋은 것도 아니니 도착하는 시간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아빠가 엄마가 예정한 시간에 딱 맞춰 오면 좋은데, 그렇지 않으면 엄마는 몇 번이나 대문 밖을 나가 서성이며 아빠가 오는지를 살피셨다.
그러다 새로 지은 밥이 식을 것 같으면, 이런 밥그릇에 밥을 푼 다음, 이불장을 열고 이불과 이불 사이에 밥그릇을 놓아두셨다.
그러니깐 보온밥솥이 생기기 전의 일이다....
엄마는 최대한 따뜻하게, 남편에게 밥 한 그릇을 먹이고 싶었던 거다.
어릴 땐 이불장 안의 밥그릇이 너무 생소하고 신기해보였었는지, 소꼽놀이를 할 때면 꼭 그 흉내를 내곤 했다.

이 밥그릇을 보니 그때 생각이 난다.


겨울이면 엄마가 입던 엉덩이를 덮던 긴 조끼도, 엄마가 추운 발을 동동거리며 아빠를 기다리던 것도, 멀리서 아빠의 힘찬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 (아빠의 발자국 소리는 멀리서도 구별 가능하다. 아주 힘차게 지축을 박찼으니깐) 얼른 들어와 밥상을 차리는 거다. 아빠가 좋아하는 반찬들을 꺼내고, 이불장에서 조심해서 새로 지은 밥을 꺼낸다.

아빠가 맛있게 늦은 저녁을 드시면, 그 옆에 앉아 아빠가 주는 반찬을 받아먹는 재미도 컸는데. "아빠 드셔야지." 엄마가 은근히 눈치를 줘도 아빠가 하, 하, 하, 웃으면서 맛있는 반찬을 젓가락으로 집어주면, 새끼 제비처럼 입을 쫙 벌리고 맛있게 받아먹는거다. 그리고 아빠가 눈을 맞추며 공모자끼리의 웃음을 웃는거다. 엄마가 살짝 눈을 흘겨도 그냥 그 상황 자체가 너무 좋고 행복해서, 별 것도 아닌데 계속 깔깔댔던 기억이 난다.

 

밥은, 갓 지은 새밥은 사랑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아...!

라면을 끓이며

김훈 저
문학동네 | 2015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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