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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겪는 일인데, 아직도 도서관에서 빌려 보낸 책들을 반납할 때가 되면 마음이 애잔해진다.

여기서 읽는 책들은 링크플러스를 통해서 캘리포니아 각지에서 온 책들이다 보니 떠나 보내는 마음이 남다른 것 같다.

가령, 극단적인 예로 샌디에이고에 있는 어느 도서관에서 온 책이라면, 서울에서 부산 가는 것만큼 오고 가며 장거리 여행을 하게 되는 거다. 그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내게 와준 책들이니 고맙고, 잘 읽은 책을 떠나 보내는 마음이 늘 애틋할 수밖에 없다.

 

 

이번에 떠나보내는 책은 이렇게 열 권이다.


한국엔 진짜 글 잘 쓰는 소설가들이 많다. 스토리텔러라고 할지 페이지터너라고 할지.

 

- 은승완의 <총잡이>는 소설공모전이라는 소재를 통해서 문단 혹은 소설가지망생들의 이야기를 르뽀처럼 적나라하게 쓴 소설이다. 어디까지나 사실이고 어디부터가 허구인지 알 수 없지만, 아마 대부분은 사실에 기반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나름 글 잘 쓴다는 사람들도 '등단'이라는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이렇게까지 하는 구나 싶어 씁쓸하다. 그 관문을 통과한 자들도 실상 별다를 게 없지만, 그마저도 통과하지 못한 사람들의 실상은 비참하다. 액자식 구성을 취하고 있는데, 겉 이야기도 좋지만 속 이야기도 짜임새 있다. 제목과 딱 어울린다. '총잡이들'. 웨스턴 무비에 대한 추억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은승완은 말하자면 '판도라의 상자'를 연 셈인데, 판도라의 상자 속에 마지막에 들어 있던 게 무엇인지 떠올린다면, 이 작가가 정말로 말하고자 했던 걸 짐작할 수 있다. 어쩌면 그 '인물'에 가장 공을 들이고 애정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 이선영의 <신의 마지막 아이>는 예수의 탄생과 관련된 이야기인데, 용두사미라고 할지. 시종일관 재미있었는데 결말이 좀 아쉽다. 이 소설도 액자식 구성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그냥 예수의 이야기에만 집중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대단한 필력인 건 사실이고, 그걸 입증하듯 여러 공모전에서 수상한 경력이 화려하다. 안타까운 건 작품 속에서는 인터넷에 연재된 소설  때문에 나라 전체가 발칵 뒤집히는데, 현실에선 이 소설의 존재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거라는 점. 아마 영화였다면 '신성 모독'으로 문제가 될 수도 있었을까? 문학이 얼마나 주변부 문화가 되었는지를 여실히 드러내준다고 해야 할까?   

 

여러 번 말했는데 개인적으로 낭기열라에서 나온 책들은 무조건 사랑한다. <멀어도 얼어도 비틀거려도>도 아껴 아껴 읽었다. 실은 두 번 읽었다.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야기. 눈이 푹푹 내리는 날 한 번도 읽고 싶은 책이다. 벽난로에 책을 태워가면서. (참고로 낭기열라에서 왜 이 책을 낼 수밖에 없었는지는 책을 읽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된다. '낭기열라'의 뜻을 아는 독자라면 아마 벌써 눈치 챘겠지? ^^)

 

김연수의 신간을 몇년간 기다리고 있는데 공들여 쓰는지 출간이 늦다. 대부분이 집필을 일본에서 했다는 걸 보면 아마도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 아닐까 짐작되는데... 아무튼 기다리다 지쳐 오랜만에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읽었다. 아주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은 읽기 위해 빌린 게 아니라, 오래오래 도서관에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 빌린 거였다. 자주 대출이 되어야 저장서고나 북세일 용으로 나가는 게 아니라 오래오래 서고에 비치될 수 있으니깐. 그러다 정말 충동적으로 읽었는데, 내 기억 속의 내용과 사뭇 달랐다. 뭐랄까. 누군가 체본한 부분을 잘 떼어낸 후 이 책의 표지에 다른 책을 갖다 붙인 것 같은 기분이랄까. 그래서 마치 처음 읽는 책처럼 '낯설게' 읽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나는 김연수의 '신간'을 읽은 셈이다. 엄밀히 말해 이 책은 내가 읽은 판본이 아니라 '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의 일부로 나온 하드커버로 나온 판본이니 다른 책이라고 억지를 부려봐도 되겠다. ^^;

이 책은 두 번을 거듭 읽었는데, 첫번째로 읽었을 땐 열대야가 극성일 정도로 여름이 아직 기세를 발하고 있었는데, 두 번째 읽을 땐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나는 내내 이 책을 생각했는데, 그래서인지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함께 하는 것 같았다. 

김연수는 늘 남편과 나 같아서 좋아하는데, 나중에 나이가 들어 남편이랑 이 책을 같이 읽고 싶단 생각을 했다. 마치 우리의 20대를 닮았다. 만약 내가 작가라면, 남편에게 주는 긴 연서로 이런 작품을 써보고 싶다. 단 한 권의 책을 남편에게 선물한다면 이 책을 주고 싶다.

 

- 박경리 선생의 <녹지대>는 통속소설처럼 큰 기대 없이 읽었는데, 뭐랄까... 한국전쟁 후를 살아가는 비트세대의 이야기다. 박경리 선생이 잭케루악처럼 비트세대였다니... 그런데 생각해보면 정말 그렇다. 뭔가... 할머니의 처녀시절 사진을 본 기분이다.

조정래 류의 역사소설을 기대하거나, 한국 전쟁을 다룬 박경리 선생의 다른 작품과 비슷할 거란 생각을 가지고 읽는다면 약간 실망할 수도 있지만, 나는 '비트걸'인 박경리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참신하고 좋았다.

 

- 박경리 선생의 <우리들의 시간>은 꼭 구입해서 소장하고 싶은 시집이다. 이전에 출간된 시집들에 수록되었던 작품들을 모두 모았는데, 뭐랄까. 그 사람의 인생을 살고 나온 느낌이다. 그런데 그게 마치 내 전생처럼 느껴진다고 할까?

이 시집에 수록된 시들은, 소설가들이 쓰는 산문에서처럼 작가이기 전에 인간으로서의 한 사람의 진솔만 내면을 만나게 되는데,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박경리 선생은 나와 닮았다.

김연수의 작품을 읽을 때 느끼는 부분과는 조금 다른 측면이긴 한데, 뭐랄까. 여성으로서의 삶이라는 측면으로 봤을 때 공감하게 되는 부분이 많다고 해야 하나. 마치 내 전생을 살다 나온 듯 한 시집이다.

 

-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 솔직히 말하면 작품성만 두고 보자면 조남주의 기존 두 작품보다도 떨어진다. 이렇게 많이 팔린 건 그야말로 '타이밍이 잘 맞아서'가 아닐까 싶다. 노회찬이 영부인에게 선물하면서 입소문을 탄 게 가장 컸겠지만, 노회찬이 이 책을 고른 이유까지 생각해본다면,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화두 중 하나가 '페미니즘'인 것만은 확실해보인다.

그러니깐 이 소설은 문학성으로 접근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 왜 독자들이 이 작품을 찾는가, 왜 독자들이 이 작품에 호응했을까라는 질문으로 접근하는 게 맞을 듯하다.

 

책을 떠나 보낼 때는 위의 사진처럼 책등에 포커스를 두고 사진을 찍기도 하지만,

아래 사진처럼 책머리나 책꼬리도 꼭 찍는다.

책머리나 책꼬리에 이 책이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있는 도서관 이름이 찍혀 있기 때문이다.

간혹 책이 도서관에 들어온 날도 찍혀 있어, 해당 책의 생일도 알 수 있게 된다.

 

각기 다른 도서관 이름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애틋해지는 것이다.

이 책이 저 먼 곳에서 나를 위해, 오직 나 하나만을 보고 여기까지 와준 거구나.

이 책이 내게 오기까지 수고한 사람들에 대해 늘 고마운 마음을 갖게 된다.

 

링크플러스가 캘리포니아에 있는 도서관을 포괄하는 시스템이지만,

간혹 네바다의 리노에 있는 책들이 오기도 한다.

네바다 주립대학의 책인데, 아마 대학들은 좀더 포괄적으로 이런 시스템에 포함되는 게 아닐까 싶다.

 

실은 그게 너무 신기해서 일부러 리노에 있는 그 주립대학에 가보기도 했다.

도서관까지 가보지는 못했지만, 여기서까지 책이 온다니, 책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담아.

 

아무튼, 이번에도 이렇게 열 권을 돌려보냈다.

 

내게 와줘서 고마웠어.

6주간의 짧은 시간이지만, 아주 즐거웠어.

잘 가렴.

거기서 잘 지내고, 너희들을 사랑해주고 아껴주는 많은 독자들을 만나렴.

그래서 제 수명을 다할 때까지 도서관에서 무병장수하렴.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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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반적으로 도서관 책들은 3주간 빌릴 수 있고, 세 번까지 연장가능하다. 그러니깐 12주까지도 빌릴 수 있다는 거다.그에 비해 링크플러스는 한 번까지 연장 가능하기 때문에부지런히 읽어야 한다. 그런데 이번엔 연말연시가 걸려 있어책 읽을 시간이 부족했다.물리적 시간 자체가 부족해서 방법이 없었는데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날 때마다

    2018.01.22 14:01 댓글쓰기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