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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은 상당히 민주적이었다. 어려서부터 매를 맞아본 적도 없고 아주 작고 사소한 것도 가족회의를 거쳐 결정했다. 한마디로 수직적이지 않고 수평적인 분위기였다.
한국을 자꾸 '유교 문화'라고 하는 게 전혀 이해가 안 갔다. 남아선호 사상이라던가 그런 것을 전혀 피부로 느끼지도 못했고, 내가 여자라서 손해를 보거나 피해를 본 적도 없다.
나는 그런 우리집의 분위기와 문화가 우리가 기독교인이라서 가능하다고 어려서부터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기독교인인게 언제나 자랑스러웠고 그것데 대해 늘 긍지를 가졌다. 나의 정체성은 늘 '크리스천'이었다.


친가, 외가 모두 3대째 크리스천이어서인지 서양철학 등도 어려서부터 아주 자연스럽게 접했다.
'민주주의'라는 걸 글이 아니라 몸으로 경험으로 직접 살았다.
그래서 나는 기독교가 당연히 그런 거라고 생각했고, 기독교인들은 다 그런 줄 알았고, 기독교 가정은 당연히 그런 거라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고 소위 '교회'라는 것과 '교회의 어른들'을 경험하면서 한국의 기독교가 얼마나 경직되고 권위적이고 수직적인지를 깨달았다.


나는 우리 아빠가 좋아서 '하나님 아버지'도 저절로 좋아졌고 사랑하게 됐는데, 한국 교회를 보면 하나님도 싫어졌다.
교회에선 여성들의 역할도 자리도 없다. 예수는 '마리아(의 믿음)'를 칭찬했는데, 교회에선 여전히 '마르다'를 강요한다. 교회를 떠나진 않았지만 그런 것들이 정말 고민이 되고 회의가 늘 때도 많다. 내가 아직도 교회를 떠나지 않은 건 오직 하나, 하나님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교회의 머리 되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그 하나님의 몸이 교회라는 그 믿음 하나로 아직도 버티고(?) 있는 거라고 솔직히 고백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유학을 준비할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빠가 본인의 의견을 피력하신 적이 있다.
아빠는 내가 영국으로 유학을 가 신학을 하고 성공회 목사(신부)가 되면 좋겠다고 하셨다. 한 번도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신 적이 없던 아빠가 평생 유일하게 나한테 부탁하신 일이었다. 그때 정말로 깜짝 놀랐는데, 아마 아빠도 깊은 고민을 하셨던 게 아닌가 싶다. 한국적 상황에서 기성 교단에서 여성 목사가 나올리 만무하고, 자신의 사랑하는 딸이 꼭 목사가 되면 좋겠고(참고로 우리 아빠도 장로교 합동측 목사이시다)... 그래서 내리신 결론이 성공회 목사이셨던 것 같다. 교리적으로나 신앙적으로, 그리고 사회정치적으로도 가장 최상의, 현실적인 선택이 아니었나 지금도 생각한다.


그게 벌써 근 20여년 전 일인데, 그 사이에도 한국 교회는 크게 달라진 게 없다. 한국교회와 여성, 한국교회의 여성에 대한 인식과 교회 내 위치 등에 대해 전혀 고민도 없고 문제의식도 없다는 게 현재 한국 교회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더 급진적이거나 진보적인 건 바라지 않고, 적어도 이 정도 수준의 진지한 논의라도 활발하고 진지하게 이루어진다면 좋겠는데, 내 생각엔 20년 뒤에도 요원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출간이 나는 매우 기쁘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크리스천 여성(남성들도 물론 환영!)들과 함께 읽고 싶다.

 

*

 

책소개

페미니즘과 기독교의 양립은 가능한가!

여성 신학자이자 철학자 강남순이 전하는 새로운 페미니스트 신학의 가능성

이 책은 저명한 신학자이자 『용서에 대하여』『정의에 대하여』를 집필한 철학자 강남순 교수가 오랫동안 한국 사회와 기독교 사회를 경험하면서 다양한 정황에 개입하고 그 정황에 관해 쓴 글의 모음집이다. 각기 다른 정황에서 썼지만 모든 글이 담은 주제는 담론과 운동으로서의 페미니즘, 그리고 기독교의 문제이다. 저자는 이 책 『페미니즘과 기독교』를 통해 여성혐오사상과 남성중심주의가 만연한 한국 사회의 병폐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페미니스트 신학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1998년 처음 출간된 초판을 수정·보완한 개정판인 이 책은 그간 변화된 사회상과 변화된 페미니즘 이론의 흐름을 반영하고자 노력하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초판이 발간된 지 20년이 지났음에도 이 책이 여전히 유효한 이유는 여전히 한국 사회와 기독교가 남성중심성과 이성애중심주의, 배타적 교단주의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2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성차별주의와 남성중심주의는 더욱 견고하게 흔들리지 않는 터전으로 기독교 사회에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저자는 한국 사회와 가정, 종교 속에 너무나 깊게 뿌리내리고 있는 성차별주의적 의식과 제도를 바꾸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로, 이를 극복하기 위해 현재의 모습을 들여다보고 분석하고 대안을 찾고자 하는 ‘이론’들과 치열하게 씨름한다. 이 책을 통해 성차별주의와 남성중심주의, 여성혐오가 혼재된 한국 사회와 기독교 사회의 문제를 극복해내갈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으로서의 페미니스트 신학을 경험할 것이다.

 


 

 

페미니즘과 기독교

강남순 저
동녘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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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등
    공동체로서의 종교를 향하여

     

    기독교는
    역사적으로 두 가지 상충된 역할을 했으며, 갑장주의적 전통과 평등주의적 전통을 모두 지닌 종교이다. 그래서 강한 남성중심적 전통과 동시에 해방적, 평등주의적 전통이
    기독교 안에 모두 포함되어 있다. 기독교 안에 남아 있는 많은 여성들과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들은 이러한
    기독교의 해

    2018.02.11 15:48 댓글쓰기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