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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작정하고 그랬던 건 아닌데, 아주 막연하게 이청준 작가의 작품들 중 안 읽은 작품들을 한 번 읽어보자 하고 『젊은 날의 이별』을 골라 읽었는데 생각보다 별로라 계속 이어가지 못하다가 지난 달에 별 생객 없이 막연하게 골라 읽었던 『춤추는 사제』가 너무 좋아서 본격적으로 이청준 작가의 작품들을 읽어보기도 했다. 사실 좋아하는 작가의 전작 읽기는 한 때 내가 참 좋아하던 독서 방식인데 요즘은 너무 바쁘기도 하거니와 운동을 시작한 후론 그나마 있던 시간마저 독서에 할애하기가 점점 어려워져서 전작 읽기는 꿈도 못 꾼다. 그래도 이번엔 오랜만에 다시 전작 읽기를 해보려고 작정했다. 그만큼 『춤추는 사제』가 참 좋았다. 이 작품은 어떤 측면에선 여전히 이청준스럽지만, 어찌 보면 꽤 이청춘스럽지 않은 형식과 장르를 취했다고도 볼 수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준다는 점에서 좋았다.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이 작품을 읽은 후, 역설적으로 잘 안다고 생각했던 작품들, 소위 이청준의 대표작부터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 달에 고른 작품이 장편 『당신들의 천국』과 단편소설집 『병신과 머저리』, 그리고 산문집 『이청준의 인생』이다.

장편소설과 단편소설, 산문을 동시에 병행하며 읽는 셈인데, 이런 독서가 갖는 나름의 장점이 있다.

가령 『병신과 머저리』에 실린 한 소설은 『당신들의 천국』의 1부의 핵심 에피소드와 거의 비슷하다. 이 작품의 발표 연도를 알 수는 없지만, 어느 쪽이 선이고 후이든 작가가 이야기의 내용을 어떻게 발전시키며 작품을 완성시켜가는지를 짐작해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비슷한 예로 산문집에도 『당신들의 천국』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나온다. 이 책을 읽고 감명을 받아 소록도로 간 한 여성의 이야기인데, 이청준 선생은 그 이야기를 하면서 작가로서 갖는 부담이나 책임감에 대해 언급한다. 누군가의 인생에 영향을 끼치는 것에 얼마나 무겁고 준엄한 일인지 작가는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산문집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선생의 목소리는 할아버지처럼 친근하고 따뜻해서, 작가로서의 이청준뿐 아니라 인간 이청준에게 좀더 가까워지고 친밀해지는 기분이다.

 

『당신들의 천국』은 시간만 있다면 하룻밤에 몰아 읽고 싶을 만큼 힘이 있고 단단하다. 그렇지만 조금씩 천천히 읽는 것도 좋다. 읽는 부분을 꼭꼭 곱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왕성하게 책을 읽었던 건 초등학교 5~6학년 때와 중학교 3년이었는데, 이 책은 아마 그때 읽었던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아마 아빠가 그 즈음에 이 작품에 대해 많이 이야기를 해주셨거나. 암튼, 나는 이미 이 책의 기본 줄거리와 결말을 알고 있는데도, 아주 몰입해서 읽게 되는 작품이다.

 

이청준 작가의 작품들이 대개 그렇듯, 이 작품도 매우 기독교적이고 성경적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출애굽 시절의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데, 아주 솔직히 말하면 출애굽기의 서사보다 『당신들의 천국』의 서사가 더 두텁고 진지하다. 내가 출애굽기나 소위 모세오경이라  불리는 성경을 읽으며 느꼈던 여러 단상이나 생각들보다 이 작품을 읽으며 느끼는 것들과 생각하게 되는 것들이 훨씬 더 많다. 더욱이 이 책의 2부는 『햄릿』에 육박한다. 캘리포니아는 겨울이 우기라 대체로 빗소리를 들으며 자기 전에 이 책을 읽는데, 비오는 겨울밤에 서늘한 공기 안에서 이 책을 읽으면 마치 수도원에 와 있는 기분이다. 염결성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이제 2/3 정도 읽었는데, 곧 땡스기빙 데이 연휴이니 아마 조만간 마무리지을 수 있을 것 같다.

 

생각해보니 땡스기빙 데이 연휴 기간 동안 도서관도 문을 닫을 것 같아 지난 주말에 황급히 책들을 빌렸다. 고맙게도 해당 도서관 사서들이 부지런히 일해줘서 벌써 오고 있는 중. 아무래도 땡스기빙 데이 연휴 지나서야 도착하겠지만, 지금 읽는 세 권의 책을 다 읽는대로 다른 책들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적절한 타이밍.

 

이번에 빌린 이청준 선생의 책들은 다음과 같다.

 

신흥 귀족 이야기
인문주의자 무소작 씨의 종생기
이어도
나무 밑에 서면 비로소 그대를 사랑할 수 있다

 

마지막 책은 산문집인데, 안도현, 정호승 등 시인과 최인호, 이청준 등 소설가, 환경운동가 등 16명이 나무를 소재로 인생과 삶의 지혜에 대해 쓴 에세이집이라고 한다.


<신흥 귀족 이야기>는 처음 들어보는 작품인데,찾아보니 1970년과 71년에 <여성동아>라는 여성잡지에 연재했던 소설이란다. 의외다. 이청준 선생이 여성지에 소설을 연재하기도 했구나.
그렇지만 그렇다고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피츠제럴드 같은 경우도 잡지에 연재를 많이 했고, 그걸 재능 낭비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이 봤지만, 나는 잡지에 실렸던 피츠제럴드의 단편들도 참 좋아한다. 그 작품들이 다른 작품들에 비해 퀄리티가 떨어진다고 결코 생각하지도 않고.
박경리 선생이 신문에 연재했다던 <녹지대>도 비트세대인 젊은 박경리를 만날 수 있어 좋았고. 그러니 읽기 전에 미리 판단할 일은 아니다.

 

이 네 권의 책을 빌리면서 함께 빌린 6권의 책들도 기대가 크다.

허균의 시가 영역되었다. 이런 작업은 누가 이렇게 꾸준히 할까? 정부가 정책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한 개인의 수고와 정성에 의한 것이라면 더욱이 참 고맙다. 
주원규 작가가 사임당에 대해 쓴 소설도 있길래 빌렸다.
흔히 작가들이 생계(?)를 위해 아동용 동화나 이야기를 번역하거나 창작하는 경우가 있길래 그런 건가 했는데
이 책은 '소설'이다. 우와! 주원규 작가가 여성 인물을 주인공으로 해서, 그것도 역사 속 인물에 대해 쓴 소설이라니, 상상이 안 된다.


어떤 작품일지 궁금하다.

암튼, 땡스기빙 이후에도
책읽기는 계속된다.

 

2017년 연말과 2018년 연시는 이청준 선생과 줄곧 함께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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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책읽는낭만푸우

    이 작품을 출애굽기로 치자면 이청준은 매우 객관적이고 균형감 있게 양쪽(그러니까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을 다루고 있다. 물론 대부분은 원장에게 할애하지만 나는 비로소 이스라엘 백성이 무지와 탐욕에 찌든 어리석은 백성인 것만은 아니라는 걸 생각하게 됐다. 중요한 건 분량이 아니라 관점이다.

    2017.11.22 16:59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읽는낭만푸우

    그리고 모세의 누나 미리암이 문둥병에 걸렸었다는 점도 염두에 두자. 그러면 이상욱의 존재감이 좀더 뚜렷해진다.

    2017.11.22 17:00 댓글쓰기
  • 어느 해 이른 봄 서울 변두리의 한적한 길거리.한 노인이 길가에 가로수로 갓 옮겨 심어진 백목련 가지에서 새 꽃눈들을 찾아 모두 따내고 있었다."할아버지, 지금 뭣하고 계신거예요? 할아버지는 꽃을 사랑할 줄 모르세요?"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한 꼬마 아이가 그것을 보고 의젓하게 할아버지를 나무랐다.(중략)노인이 다시 잔잔한 웃음기 속에 차근차근 설명했다."나

    2018.01.07 13:42 댓글쓰기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