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알이 동그라나 누렇지 않아
기장밥과 꼭 같지는 못하구나
굶주린 아이에게 이 꽃 이름 알리지 마라
밥을 찾아 숲속을 울며 헤맬라 (149쪽)
전국의 산과 들에 흔하게 자라는 조팝나무 이야기입니다. 꽃이 핀 모양이 좁쌀이 다닥다닥 붙은 것 같다고 해서 유래된 이름입니다. 이팝나무가 이밥을 연상시킨다고 지어진 이름과 같은 원리네요. 이 책은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 등에 나오는 2천여편의 시들 가운데 꽃과 나무, 과일과 채소를 읊은 시를 소개하면서 각각의 특징과 상징, 그리고 키우는 방법 등을 소개합니다. 식물과 관련된 그림도 보여주고요. 시와 그림으로 보는 식물 인문학 책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다.
이 책을 통해 우리 조상들이 아끼던 꽃과 나무들을 만나면서 지금까지 잘 몰랐던 사실들을 공부하는 기회도 가질 수 있습니다. 해당 식물과 관련된 서화를 보는 재미는 덤이고요. 조경기사 자격증을 가진 저자가 보충 설명해 주는 식물 가꾸기 이야기를 듣는 재미도 있고요.
모란꽃 이슬 머금어 진주 같은데
미인이 꺾어 들고 창 앞을 지나다
미소 지으며 낭군에게 묻기를
꽃이 예쁜가요 제가 예쁜가요
낭군이 짐짓 장난 삼아
꽃이 당신보다 더 예쁘구려
미인은 이 말 듣고 토라져서
꽃을 밟아 뭉개며 말하기를
꽃이 저보다 더 예쁘시거든
오늘 밤은 꽃을 안고 주무세요 (12쪽)
모란의 아름다움을 재미있는 이야기로 풀어가는 시를 읽으며 나도 모르게 미소를 머금게 됩니다. 중세 유럽의 튤립 광풍 때처럼, 당나라 시절 모란도 한 무더기 꽃 값으로 열 집을 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총 3부로 나누어진 이 책에는 모란, 국화, 동백, 장미 등 20종의 꽃과 대나무, 밤나무 등 10종의 나무, 그리고 감, 귤, 무, 아욱, 파 등 13종의 과일·채소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이미 잘 알고 있는 듯하지만 저자의 설명을 들으면 제대로 알고 있었던 것은 별로 없었다는 사실도 깨닫고 반성하게 됩니다. 전문지식 없이도 독자의 가이드에 따라 새로운 것들을 배우는 기회를 제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