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이탈리아 실존인물인 메조판티 추기경은 무려 72가지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했다고 전해진다. 외국어 하나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범인의 눈에는 분명 부러운 존재일 뿐이다. 메조판티에 관한 자료를 조사했던 저자의 눈에도 그는 완벽한 ‘언어 천재’였다고 한다. 72가지 외국어를 원어민 수준에서 자유자재로 구사했으며, 말에 품위까지 있었다고 한다. 그가 어떻게 이런 전설적 존재가 될 수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면 ‘언어 습득의 비밀’에 대한 퍼즐을 맞출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저자는 ‘언어 습득의 비법’을 밝히는 순례를 떠난다. 세상에서 6개국어 이상의 언어구사가 가능한 초다언어구사자를 만나 그들의 언어습득 방법을 연구한다.
제일 먼저 찾아가는 인물은 역시 메조판티 추기경이다. 메조판티의 고향인 볼로냐를 방문해 그의 유품을 조사한다. 이를 시작으로 다양한 초다언어구사자들을 찾아간다. 그 중에는 오십 가지 언어를 구사했던 대장장이 일라이후 버리트, 아홉 살 때 이미 열세 가지 언어를 익혔다고 하는 셰리 등이 있었다. 또한 22가지 언어를 습득한 유럽연합의 통역관 그레이엄 캔스데일도 소개된다. 한편 크리스토퍼와 같이 전형적인 서번트증후군(자폐의 일종) 환자도 있었다.
결국 저자의 관심은 언어를 쉽게 배우는 것이 타고 나는 것인지 아니면 특별한 방법에 따라 부단히 노력하는 것인지를 밝히려는 데 있다. 각각의 초다언어구사자의 케이스가 저자가 원하는 만족스러운 답변을 주지는 못했지만 하나의 단면을 보여주는 역할을 수행했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 같다. 저자는 많은 면담과 연구를 통해 여러 가지 언어를 매우 능숙하게 사용하기 위한 조건을 몇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언어 학습 활동과 그 언어를 사용하는 능력에서 예외적으로 적합한 신경 하드웨어가 필요하다. 둘째, 언어 학습에 대한 사명감이 요구된다. 그리고 셋째는 언어 학습자로서의 정체성이다. 종합해 보면 언어 천재가 되는 길은 유전적인 혜택과 함께 개인의 뚜렷한 노력이 어우러질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6개국어 이상을 구사하는 초다언어구사자는 예외적이고 특별한 경우이다. 보통사람인 우리가 그들을 목표로 삼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언어를 배우는데 있어서 이들이 보인 학습방법과 행태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선 자신만의 확고한 목표를 가지고 언어를 배우는데 몰입해야 한다. 너무 문법과 원어민식 발음에 얽매이는 형태의 공부법은 바람직하지 않다. 언어는 배우기(learn)보다는 습득(pick up)하는 것이다. 또한 언어는 기억력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언어감각을 발달시키고 기억력을 강화하는 훈련도 필요하다. 결국 언어에는 왕도가 없다. 남의 성취를 부러워하기 보다는 오늘 한 발 더 나아가기 위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