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 완벽주의라는 용어를 들으면 가장 먼저 거부감이 느껴진다. 견고하고 틈이 없을 것 같은 느낌. 완벽주의자와 융통성은 결코 어울리지 않는 단어인 것 같다. 그래서 그런가, 나에게 완벽주의는 꽤 부정적으로 느껴지는 용어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완벽'하기를 꿈꾼다.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서 완벽할 수 있기를. 스스로도 인정할 수 있을 정도의 완벽함을 갖추고자 노력한다. 완벽으로부터 오는 스트레스는 성장을 위한 필연의 거름이라 생각하며, 지친다는 생각은 사치라고 여기며.
나 역시 예외는 아니다. 완벽주의를 꺼려 하면서도 완벽하고 싶어 한다. 특히 내가 주도하는 일 앞에서는 밤낮이 뒤바뀌는 것도 모를 정도이다. 문장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단어 하나를 두고 몇 시간을 고민하기도 한다. 그 과정이 너무 괴로워서 대충 넘길까 하다가도 이내 '아니지. 나중에 후회하게 될 거야.'라는 생각에 마음을 돌려 노트북 앞에 앉는다.
그저 과제물의 완성도를 높이겠노라, 가벼운 욕심으로 치부할 수 없는 나의 집착은 완벽을 좇는 나의 자아였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완벽주의자라는 것을.
--------------------------------
책 <네 명의 완벽주의자>는 한국인의 2명 중 1명은 완벽주의자라는 놀라운 연구 결과를 제시한다. 나와 같은 완벽주의자들이 이 땅 위에 상당히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위안이 될 법도 한데, 나에게는 위로보다 씁쓸한 감정이 먼저 찾아왔다. '아, 나처럼 완벽함을 추구하며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이 있구나!'
재미있는 것은 일부 완벽주의자들이 보이는 아이러니한 행동 중 하나가 꾸물거림이라는 것이다. (pp. 45)
완벽주의자들은 자신이 맡은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해내고 싶어 한다. 빠르게 일처리를 하는 대신 실수를 하는 것보다 조금 더디더라도 완벽하게 해내고 싶어 한다. 이 같은 마음이 극단적으로 발현된 것이 바로 '꾸물거림'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의 꾸물거림은 결이 조금 다르다. 귀찮고 게을러서, 오늘의 일을 내일로 미루는 꾸물거림이 아니라 정말 잘하고 싶어서, 잘하고 싶은 마음에 두세 번 검토하다 발생하는 꾸물거림인 것이다.
완벽주의자들은 자신의 실수를 용납하지 못한다. 실수는 태초부터 고려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태도는 악순환을 유발하는 계기가 된다. 절대 실수하면 안 된다는 강박이 스스로를 구속하는 완벽한 태도를 강요하게 된다. 완벽하고자 하는 마음이 너무 강하게 발현되면, 행위를 시작하기 전부터 고려 사항들이 많아진다. 하지만 오탈자가 발생하는 것이 두려워서 거듭 문서를 검토했음에도 미처 수정되지 않은 오탈자를 마주한 순간, 모든 것은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실수할까 봐 불안한 상태가 지속되고 불안은 부정적인 결과를 예상하게 한다. 모든 것을 빈틈없이 해낼 것만 같았던 완벽주의자가 오히려 주저하고 머뭇거리며 예기불안의 상태에 처하는 것이다.
--------------------------------
책 <네 명의 완벽주의자>는 이 밖에도 완벽주의자의 특성들을 통찰력 있게 관찰해내었다. 그들의 특징적인 사고와 행동, 그로부터 야기되는 문제점들을 일목요연하게 집어내며 완벽주의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이를 더욱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지 그 방안까지 살펴주고 있다. 행복한 완벽주의자로 나아가는 일종의 가이드북처럼 말이다.
책을 읽으며 나 자신이 생각보다 더, 완벽주의자에 가깝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이왕 이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이 완벽주의 성향을 나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십분 활용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다. 적당한 완벽주의와 적당한 여유가 적절히 어우러진 사람. 프로페셔널한 모습과 인간적인 모습이 두루 묻어나는 사람. 책에서 말하는 행복한 완벽주의자가 되는 것을 추구하는 삶, 지금 당장 변화하기는 어려워도 시도해볼만한 도전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