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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를 키운 채식주의자

[도서] 돼지를 키운 채식주의자

이동호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저자는 20대 후반 젊은 나이에 전국에서 가장 많은 돼지가 사는 동네로 귀촌을 하였다. 그곳에서 돼지가 자라는 환경을 보며 채식을 결심하였고 목장에서 일을 하며 기존의 공장식 축산 방식에 문제의식을 느낀 사람들과 모여 '대안축산연구회'를 결성하였다. 그리고 1년간 직접 3마리의 돼지를 키우며 동물과 사람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였다.

이 책은 바로 그러한 일련의 과정을 가볍고 유쾌하게 보여준다. 특히 저자가 돼지들을 데려오고, 키우고, 도축하는 과정은 코메디 프로 만큼 재미있게 묘사한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에서 보여주는 우리나라 축산업의 현실은 상당히 불편하고 괴롭기까지하다. 오로지 경제성과 수익성만이 축산업의 목표이다. 좀 더 싸게, 좀 더 많이가 지상 최고의 과제이다. 거기서 오는 다양한 문제점들은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거나 간과되어 왔다. 내 가족이 먹을 식량에서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바뀌면서 축산업은 대형화, 기업화되었고 인간과 자연의 공존과 순환의 질서는 무너지고 말았다. 이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결국 인간에게로 그 영향이 미칠 것이다.

어릴 때 돼지 농장을 하던 큰아버지댁에 가면 냉장고에 주사약이 잔뜩 있었다. 종종 돼지에게 주사를 직접 놓던 모습들을 보기도 하였다. 이게 이미 몇 십년 전 내 경험이다. 항생제나 각종 약들이 (전문가의 처치 없이) 이미 그 시기부터 남용되고 있었다. 주말마다 마트에 가면 나는 무항생제, 무성장촉진제, 무살충제 제품들, 흔히 유기농이라는 제품들만 고른다. 가격도 일반 제품보다 훨씬 비싸다. 그럼에도 나는 이것들을 고를 수 없다. (언제나 찜찜한 의심을 품으면서...) 게다가 요즘은 동물복지도 따져보아야 한다. 이러한 것들이 결국 건강한 제품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이런 것들은 고려 대상이 전혀 아니었다. 자연에서 나고 자라는 것들은 전부 건강한 음식이라 믿었다. 이제는 먹는거 하나 마음 편히 먹을 수 없다. 전부 인간이 스스로 만든 결과물이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과 순환의 고리가 깨지면서 결국 피해는 인간에게 돌아오고 있다.

p.9

유기축산은 동물에게 유기농(=건강한) 사료를 먹이고, 성장촉진제를 사용하지 않으며, 항생제 같은 약이 필요없는 쾌적한 환경에서 키우는 것을 말한다. 건강한 가축의 분뇨는 먹이를 기르기 위한 퇴비로 되돌아간다. 순환이 이루어지는 사육 방싱이다.

p.10

자연양돈이란 간단히 말해 깨끗하고 적정한 크기의 축사에서 돼지의 본성을 억압하지 않으면서 사육하는 방식이다. 돼지들은 땅을 파며 놀고, 농가에서 나온 부산물로 만든 사료를 먹으며 천천히 자란다고 했다. 견학을 가서 내 눈으로 직접 확인도 했다. 그곳의 돼지들은 농촌을 파괴하지 않았고, 동물로서 충분히 존중을 받으며 사육되고 있었다. '이렇게 기른다면 먹어도 되겠다'라고 생각했다. 거창하게 표현하면 예의를 갖춘 고기랄까. 생명을 정성 들여 키우고 그 생명을 죽여서 먹는 과정을 통해 자연의 순환과 생명의 고귀함을 지킨다는 면에서 채식의 연장이라고 여겨졌다.

p.34

하지만 인간이 돼지를 길들인 1만년의 세월 동안 인간과 가축, 자연 사이에 오염은 없었다. 오염은 동물을 과도하게 밀집시켜 키우면서 생겨났다.

p.35

습하고 불결한 환경에서 빽빽하게 살면 누구라도 병이 난다. 돼지들이 자라는 동안 겪는 흔한 질병은 설사다. 산업계의 해결 방법은 항생제이다. '건강한 돼지'가 아니라 '더 빨리, 더 많은' 돼지 사육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p.74

과거에 가축은 콩꼬투리나 옥수숫대 같이 인간이 먹지 않는 부산물을 먹었지만 이제는 콩이나 옥수수, 즉 농산물 자체를 먹는다. 전세계 농지의 83퍼센트가 가축을 기르고 그들을 먹이기 위한 작물을 재배하는 데 쓰인다. 주객이 전도되었다. 옥수수와 콩은 표토를 사라지게 하는 대표적인 사막화 작물이다. 지구의 피부 역할을 하는 표토 없이는 농사를 지을 수가 없다.

 

p.89

미국의 '폴리페이스'라는 농장에서는 소와 닭, 그리고 돼지를 같이 키운다. 농장주인 조엘 샐러틴은 동물을 한 종만 키우는 것도 한 농경지에 한 농작물만 키우는 단작만큼 나쁜 일이라고 말한다. 여러 가축을 키우면 다양성을 통해 상호 보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연에 한가지 종만 존재하는 경우는 없다. 다양한 종이 서로 균형을 유지한다. 한가지만 키우(남기)고자 하면 불균형이 생기고, 불균형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억제가 필요하다. 단작의 범위가 넓어질수록 억제는 커지고, 작용이 있으면 그만큼의 반작용이 발생하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p.110

가축이 울타리 안에 살던 시절, 동물은 가족까지는 아니었을지라도 구성원으로서 존중을 받았다.......지금의 동물은 경제 논리 안에 있다. 이 논리에 맞춰 인간은 동물을 살이 빨리 찌거나, 알을 많이 낳거나, 젖이 많이 나오는 품종으로 개량한다. 기준에 맞지 않는 동물은 불량품이다.

p.139

윤리적 도축이라는 말이 있다. 도축에 '윤리'라는 말을 붙여도 되는지 묻고 싶었다. 윤리적으로 죽인다니, 대체 무슨 말이지?......'동물복지'도 결국 사람 중심의 생색은 아닐까? 양심의 가책을 덜기 위한 자기위안 말이다. 그렇다고 산업식이 아닌 방법으로, 예컨대 망치로 돼지를 잡는다고 죄책감이 들지 않는 게 아니었다. 성스러운 행위도 아니며, 천사들이 내려와 죄를 사해주지도 않았다. 다만 분명한건, 책임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다.

p.156

우리는 서로를 먹고 서로에게 먹힌다. 나도 무언가의 양분이 될 것이다. 생명만이 생명을 줄 수 있다. 돼지를 키우고 또 잡아먹으면서 생명을 먹는 것의 책임을 곱씹어보았다.

p.161

축산 동물의 수명은 경제성에 따라 결정된다. 소는 30개월, 돼지는 6개월, 닭은 1개월을 산다. 사료 전환율이 가장 높은 시점이다.........

오랜 기간을 수렵인으로 살았던 인간의 유전자는 지방에 더 높은 열량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방이 없는 살코기는 맛이 거의 나지 않는다. 소비자가 부드러운 고기를 선호한다는 사실이 동물의 움직임을 최대한 억압하는 사육 방식의 근거로 쓰이기도 한다. '마블링'은 축산업이 만들어낸 마케팅의 산물이지만, 기름의 부드러운 식감과 고소한 맛을 선호하는 것은 유전자의 영역이다.

p.163

인간은 먹을 수 없는 것과 먹지 않는 부산물을 활용해 가축을 길러왔다. 생태계가 감당하는 만큼 가축을 길렀다. 지금은 더 많은 고기를 먹기 위해 자연이 스스로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자원을 쓰고, 그만큼의 폐기물을 만들어내고 있다.

p.168

미지의 바이러스 대다수는 야생에 있다. 야생이 인간에게 오는 게 아니라, 인간이 야생을 뒤흔들기 때문에 인간에게 올 수 밖에 없다. 지상 동물 총량의 97퍼센트를 차지하는 인간(과 가축)의 영역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넓어지고 있다.

p.171

축산물에 남아 있는 항생제 내성균을 사람이 직접 먹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가축에게 투여한 항생제의 80퍼센트는 배설물과 함께 배출된다. 분뇨에 포함된 항생제에는 정화 기준이 없다. 그 때문에 항생제는 하천으로 유입되고 축적된다.........

기술 발전이 상황을 해결해 줄 거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업계는 발전하는 기술을 가축을 더 많이, 더 빨리 생산하는 쪽으로 써왔다. 정책을 통해 식품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행정 당국은 '물가 안정'과 '경제 활성화'라는 구호 뒤로 숨는다.

p.172

현대 인류는 유례없는 양의 축산물을 소비하고 있다. 하지만 자연에 거짓은 없다. 많이 얻으려면 많이 써야 한다. 인류는 기적을 이룬 것이 아니라, 내일의 열매를 끌어왔을 뿐이다.

p.185

싸게 많이 먹는 소비문화는 생명을 억압하는 사육 방식, 미래 자원까지 고갈시켜가며 생산하는 '공장식 농장'과 연결되어 있다. 이 소비와 생산의 고리가 가축과 인간의 관계를 왜곡한다. 이 왜곡이 결국은 우리가 살아가는 기반을 무너뜨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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