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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다는 농담

[도서] 살고 싶다는 농담

허지웅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내가 허지웅 책을 사게 될 줄 몰랐는데 내게 허지웅은 마녀사냥에서 뭐든 다 안다는 그 시니컬한 자세로 남아있어서

미우새라는 그 이상한 포맷의 프로그램에서도 썩 좋아하지 않았고(쓰다보니 그 프로 초반에 내가 왜 본 건지도 모르겠고)

동족혐오인가 싶긴 했지만 내 돈 주고 그 사람 책? 절대 안사,에 속하는 작가였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지만 죽을 고비 같은 큰 계기가 있으면 바뀐다는데 허지웅이 그런가 생각했다.

책을 읽으니 원래 그랬고 주로 얘기하는 주제가 바뀌었을 뿐인 것 같기도 하지만 나는 허지웅 친구가 아니니 내가 본 것으로 한계를 갖고 말한다.

유투브로 보기에도 달라진 것 같았고(그의 방송태도는 방송국놈들의 농간일수도 있었겠으나) 이번 에세이에 대한 좋은 평도 들었다.

제목부터 나는 나의 투병으로 생각한 것을 얘기해보려 한다,를 말하고 있고

책 소개 페이지에 있던 글이 큰 위로가 되었다.

그 소개 페이지에 있는 글이란, 허지웅이 차를 긁는데 그 불행한 사건이 있기 까지의 일들을 곱씹다가 사실 그 일은 일어나는 일이었다는 것이다.

집요하게 내 실수를 찾는 나는 그걸 알고 있기에 요즘 그 생각을 안하려고 하는데 언제 어떻게 프로그래밍되서 습관화 된 건지 그 쓸데없는 자책회로가 돌아갈 때가 있고 또 누군가는 내게 그런 단순한 이유가 아니었다,고 말해주는 게 안도가 됐다.

책 한권을 읽는다고 그런 위로를 얻는 건 쉬운 게 아닌데 종합선물세트같이 오길 바라는 것도 욕심이고 이정도면 됐지,하고 구입.

불행한 일을 겪으면 사람의 머릿속은 그렇게 된다. 그리고 불행의 인과관계를 따져 변수를 하나씩 제거해보며 책임을 돌릴 수 있는 가장 그럴싸한 대상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54

나의 경우 그 대상은 항상 결국 나 자신이었기 때문에 나를 용서하기 힘들었다.

요컨대 불행의 인과관계를 선명하게 규명해보겠다는 집착에는 아무런 요점도 의미도 없다는 것이다. 그건 그저 또 다른 고통에 불과하다. 아니 어쩌면 삶의 가장 큰 고통일 것이다. -56


나는 허지웅 별로다! 라고 단언하던 시절에도 우연히 그의 글을 웹상에서 보곤 했다. 의외로 잘 읽히고 깔끔해서 놀랐었다.

잘 읽힌다는 뜻은 글쓴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한번 읽으면 이해할 수 있고 쓸데없는 군더더기가 없다. 글을 읽는 동안 갑자기 뭔소리야 하고 다시 읽어야한다거나 하는 일이 없었다는 뜻이다. 내가 글을 읽을 때 싫어하는 것은 허세와 꼰대력으로 그런 건 엄청 잘 찾아내는데

나는 알고 너희는 모른다. 내가 너희에게 한 수 알려준다,가 그의 글에는 없다.

인간 엄청 싫어하게 생겼는데 의외로 그런 게 없어.......

하물며 글을 그림처럼 읽는 스마트폰 화면으로도 그랬으니 종이로는 더 잘 읽을 수 있었고 알고는 있었지만 그의 글은 군더더기 없이 명확하다.

내 기준에서는 잘 쓴 글들.(그럼에도 몇몇 영화평론들은 좀 지루했던 건 내가 원래 보지 않은 영화평론을 읽는 걸 즐기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의 글을 읽는 동안 좋은 선배에게 좋은 얘기를 듣는 것 같았다.

쓸데없이 괴로울 필요는 없다고 조목조목. 니가 뭘 알아, 싶지도 않은 것이 필력이고 작가로써의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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