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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 될 때

[도서] 숨결이 바람 될 때

폴 칼라니티 저/이종인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3점

오늘은 조금 많은 생각이 드는 책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책 제목은 시적이고 아름답지만, 내용은 결코 아름답지 많은 않은, 어쩌면 다소 냉정하고 차가운 주제를 가진 책입니다.

죽음, 행복, 삶... 살면서 느끼게 되는 중요하고 무거운 단어들입니다. 우리는 모두 태어나고, 살아가고, 죽습니다. 그렇지만 항상 죽음은 먼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과거를 후회하며, 현재를 살아가기에 바쁜 우리는 죽음을 깊게 생각해 볼 시간이 많이 없죠. 이 책은 '죽음'이라는 주제를 우리의 삶과 연결지어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책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 책의 저자는 1977년 뉴욕에서 태어난 폴 칼라니티 라는 젊은 의사입니다. 스탠퍼드 대학에서 영문학과 생물학을 전공하고 여러 학문에 많은 관심을 가졌던 그는, 모든 학문이 한 점에서 만나는 의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하고, 예일대에서 의학학위를 받은 전도 유망한 의사였습니다.

의사로 일하면서도 특유의 성실성과 명석함을 앞세워 여러 대학에서 교수 제안도 받고, 아름다운 가정도 꾸리는 등 밝은 미래만 보였던 폴 칼라니티에게 어느날 암이라는 불청객이 찾아오게 됩니다. 여러 환자들을 죽음의 수렁에서 꺼내던 젊은 의사가 역설적으로 자신은 빠져나올 수 없는 깊은 구렁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폴 칼라니티는 끝까지 삶에 대한 의지를 놓지 않았습니다. 의사이자 환자의 입장에서 죽음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을 풀어내고 기록해 갔으며, 투병생활 와중에도 레지던트 과정을 마무리 하는 등 누구보다 열정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하늘은 그에게 새로운 삶을 이어갈 시간을 주지 않았고, 결국 2015년 3월, 아내와 딸 그리고 많은 사람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채 세상을 뜨게 됩니다. 그의 나이는 고작 36세 불과했습니다.

이 책은 크게 2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 나는 아주 건강하게 시작했다.

2부. 죽음이 올 때까지 멈추치 마라.

사실 에세이의 특성 상, 목차의 제목으로 내용을 어림짐작 하기는 매우 어렵죠.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왜 칼리니티가 저렇게 목차의 제목을 지었는지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1부에서는 칼리니티가 왜 의학을 선택했는지, 의사의 길을 걸으면서 어떤 경험을 겪었는지를 담담하고 솔직하게 써내려갑니다. 이 책의 주제와는 별개로(어쩌면 별개가 아닐지도요) 저는 한 인간이 다양한 학문을 공부하면서 느끼는 '통섭'이라는 단어를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수능을 보면서, 대학에 입학하고 전공을 선택하게 됩니다. 물론 전공대로 직업을 선택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어쨌든 20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선택한 전공이 삶의 궤적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물론 복수전공제도도 있고, 의학전문대학원, 로스쿨 처럼 학부를 졸업하고 진학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대부분의 사람이 한번 선택한 전공으로 밥벌이를 하게 되죠. (저도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통섭, 융합 등의 단어를 언급하면서 조화로운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되도록 요구합니다. 이런 모순적인 환경에서 교육받은 저로는, 미국처럼 다양한 전공을 접하고 그 전공을 통해 자신의 직업이나 인생의 방향을 설정하는 미국의 교육환경이 굉장히 부러웠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말했던 Connecting the dots 이라는 개념이 결국 이런 교육의 연장선이라는 생각도 들었구요.

다시 돌아와서, 문학을 전공하며 죽음을 성찰하고, 본인이 가진 여러 관심사를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직업으로 의사를 선택한 칼리니티는 그야말로 승승장구 하게 됩니다. 어떤 의사에게는 통과의례 처럼 느껴졌을 여러가지 상황에서도 칼라니티는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미를 토대로 자신만의 직업관을 세워나갑니다.

1부에서는 이처럼 의사로서의 칼라니티의 직업관을 알수 있는 구절들이 많았는데요, 저는 대표적으로 이 문구가 가장 와닿았습니다.

환자는 의사에게 떠밀려 지옥을 경험하지만,

정작 그렇게 조치한 의사는 그 지옥을 거의 알지 못한다.

p.129 동료 '브이'의 투병생활을 지켜보며

저는 이 문구를 보면서 두 권의 책이 생각났습니다.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서는 현대 의학이 환자의 질병을 고치고 생명을 연장시키는데만 몰두한 나머지 환자의 '삶'에 대해서는 어떤 고려조차 하지 않는다며 쓴소리를 합니다. 예를들면, 암이 전신에 퍼져 남은 생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에게 독한 항암치료를 지속적으로 받게 해, 자신의 삶을 정리할 시간조차 가지지 못한채 죽게도 하며, 안전을 이유로 노화로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워진 노인 환자들을 요양원에 가두고(보호라는 이름 아래) 사육하기도 합니다. 즉 질병을 정복하기 위해 인간의 존엄성을 희생시키는데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이반 일리치의 죽음] 또한 위와 비슷합니다. 영문모를 병으로 죽어가는 일리치에게 의사들은 그의 의사와 상관없이 의미없는 자신만의 치료법을 권하기 바쁠 뿐, 그의 삶에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가족조차 이반 일리치의 기분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날카로워진 그를 달래기에만 급급하죠. 오로지 하인 게라심만이 그를 인간으로 대우하며 그의 고통을 덜어내기 위해 애쓸 뿐 입니다.

제가 칼라니티에게 놀란점은, 본인이 환자의 입장이 되기 전에도, 공감과 이해를 바탕으로 의사의 역할에 충실했다는 것입니다. 그가 평소 죽음과 삶에 대해 오랜시간 고민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습니다.

2부 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칼라니티가 암을 진단받고, 치료하고, 남은 생에 대한 계획을 세우면서 겪는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20년은 의사로 20년은 작가로 살고 싶었던 칼라니티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죽음에 어떤 것이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지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아내 루시를 위해 아이를 가지려는 생각도 하고, 여러 항암제를 복용하면서 삶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기도 하죠. 마지막으로 항암치료를 하는 와중에도 레지던트로 복귀하여 일하는 등, 의사로서의 소명에도 부응하려 애쓰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삶에 대한 그의 처절한 의지가 보이는 부분 이었습니다.

2부 역시, 저에게 큰 울림을 주는 문장들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저는 다음 문장이 너무 슬펐으며, 감히 이해가 되기도 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병을 앓으면서 겪게 되는 종잡을 수 없는 건 가치관이 끊임없이 바뀐다는 것이다.

환자가 되면 자신에게 중요한게 뭔지 알아내려고 계속 애를 쓰게 된다.


우리는 항상 살아가면서 많은 방황과 고민을 합니다. 무겁게는 이게 과연 내가 원하는 삶일까? 이 직업이 나에게 맞는 것일까? 같은 질문부터 가볍게는 이번 여름 휴가는 어디로 가야할까? 오늘 점심을 뭘 먹을까? 까지..


만약 저에게, 시한부 인생이 선고된다면 저는 앞으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저는 요즘 항상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이나 회사에서 제가 하고 있는 역할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이라고 쓰고 불만이라고 읽습니다.) 갖고 살고 있습니다. 하루 대부분을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어떤 일을 할 때 제가 행복한지와 같은 것들을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고민들도 죽음 앞에서는 사치에 불과합니다. 특히 암과 같이 나에게 남겨진 시간조차 정확히 측정할 수 없는 질병에 걸렸다면, 우리는 어떤 가치에 남은 삶을 어느정도 할당해야 하는지를 결정할 수 있을까요?

칼라니티 또한 그랬습니다. 아버지가 되는 것? 신경의과의가 되는 것? 후학을 가르치는 것? 하지만 그는 그런 고민의 결론을 내지 못하고 갑작스럽게 악화된 암에 힘든 투병생활을 하다 숨을 거두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투병중에 얻은 딸 케이디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보이죠. 자신의 죽음과 대비되는 딸의 탄생을 마치 자신의 삶이 이어지는 것으로 생각해서 였을까요? 딸의 존재가 자신의 죽어가는 삶에 충만한 기쁨을 주었다고 독백하는 장면에서는 숭고한 부성애에 가슴이 저릿하기까지 했습니다.

책의 마지막은 칼리니티의 아내 루시의 회고록으로 마무리 됩니다. 칼리니티의 마지막이 어땠는지, 아내의 눈으로 바라본 남편의 죽음과 태도는 어땠는지, 그리고 그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이 책을 보면서 저는 가족애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위의 사례를 보면, 가족중에 큰 병을 앓는 환자가 있을 경우, 가정 자체가 무너지기도 하고, 환자가 돌아가신 뒤에도 남겨진 가족들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큰 상처가 새겨지기도 합니다. 물론 이 책에서는 그런 어려움들이 세세하게 기록되지 않았지만, 칼라니티와 루시는 현명하고 아름답게 자신들에게 닥친 비극적인 운명을 담담히 헤쳐나갔습니다. 자신을 사랑하고 이해하는 사람의 품에서 고통스럽더라도 행복하게 죽을 수 있다는 것, 칼라니티에게는 그 어떤 항암제보다 아내와 딸의 존재가 더 큰 힘이 되지 않았을까요?

삶과 죽음의 의미를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준 칼라니티에게 애도를 표하며, 서평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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