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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미

[도서] 상미

차예랑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종종 나만 빼고 내 주변의 모두들 즐거워 보인다. 어쩌면 내 삶을 스스로 우울하다고 단정짓고 있는 반증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나는 우울에 대한 책을 탐닉하기도 하고 그 책의 내용들을 빗대어 내 우울의 정도를 삶의 수준을 자가 진단해 본 적도 많다. 어찌보면 이 책도 그러한 류의 궁금증으로 읽게 된 바이다.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 보면 비극이란 말도 있다. 아마 내 주위 모두가 늘 무한 행복한 상태로 살아가는 것은 아닐진데 왜 나만 부족해 보이고 자주 슬프고 우울하며 삶이 무기력 해지는 건지... 내가 스스로의 삶에 대한 판단을 너무 깊이 있게 하고 잘 살아 내보고자 하는 욕심과 내 삶의 기대치가 너무 큰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삶에 대한 과욕이 오히려 삶에 역효과를 일으키는 것이다. 

 이 책은 3세대의 엄마가 등장하며 엄마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엄마란 존재에 대해 '나무' 로 표현한 작가... 그렇다. 이 시대 아니 지난 시대를 통틀어 모든 엄마는 나무가 맞을지도 모르겠다. 엄마와 엄마의 엄마인 할머니,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작가의 표현력과 묘사가 너무 절묘하게 잘 어우러져서 더욱 작가의 엄마에 대한 관조적 느낌과 삶에 대한 사유에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 


 

 전체적으로 하나의 주제와 글의 맥락을 유지하면서 소주제로 각각의 글과 시로 이루어진 글이다. 작가는 문장력이 매우 뛰어난 것 같은데 스스로 글에 대한 소설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아마도 이러한 고민과 사유도 작가의 글에 대한 깊이와 맞닿아 있는게 아닐까 싶다. 아마 나 같은 사람은 글쓰는 것이 두렵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뭐든 알 수록 두렵고 무식자가 용감하다고 작가는 수백 배의 깊은 사유와 사념의 과정에서 글쓰는 것이 두려워 졌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에서 작가의 언어는 더 숙성되고 수려해 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에 대해 누구도 하물며 신이라도 그 정의를 단정할 수 없을 것이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논한 무수히 많은 정의들을 내가 수용할 수 있는 한계선 만큼이 바로 나의 삶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정의하는 삶과 모든 생각들도 정의하는 순간 굳어지고 한정되므로 오히려 정의하지 않고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한정되는 순간 확장성과 적용성에 한계가 생기는 것이므로 열린 사유를 하는 것이 스스로 사고력을 키우고 배움의 기틀을 닦는 길이다. 

 책에서 등장하는 가까운 이들의 죽음에서도 작가의 고찰을 통해 나 역시 인간의 유한한 존재성과 죽음에 빗댄 삶의 의미를 되짚어 보게 되었다. 죽음을 피해갈 수 있는 인간은 없으며 누구나 한줌의 재, 흙속으로 소환된다. 삶의 과정은 어쩌면 어떤 죽음을 준비해 나가는 일련의 과정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 책을 통해 한 층 성숙한 자아란 무엇인지 정의하긴 어렵지만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참된 지혜의 힘을 가지고 삶의 이겨내기 위해 더욱 책을 접하며 다른 이의 사유를 고찰해 보아야 할 필요를 느낀다. 

 

이 글은 yes24 서평단에 선정되어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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