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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다정하고 무례한 엄마

[도서] 나의 다정하고 무례한 엄마

이남옥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부모는 내가 선택하지 않았다. 부모 역시 어떠한 타입의 자식을 콕, 찝어 선택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부모에게는 새로운 가족을 이루겠다는 (일반적인 케이스) 최소한의 의지는 있었을 것이다. 때문에 눈감는 날까지 자식에 대한 책임을 이고 가는 것이 부모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사실 나는 이 부분에서 자식을 가지기 겁이 난다. 나 스스로에 대한 책임감조차 부재한 상황인데 여기에 혹 하나를 더 붙이겠다니. 그저 상상만으로도 절망적이다. 좋든 싫든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의도했든 사고였든 우리는 엄마의 몸을 빌어 이 세상에 왔다. 그야말로 운명으로 엮인 가장 가까운 사이이다. 요즘 말로 태어났더니 엄마가 누구, 아빠가 누구, 할머니가 누구... 금수저들에 대한 부러움을 듬뿍 담고 있는 문장이다. 그런데 반대의 경우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저주스러운 핏줄. 벗어날 수 없는 족쇄. 누구의 자식이라는 사실은 죽을 때까지 벗어날 수 없는 꼬리표와도 같다. 따라서 부모를 부정하는 행위는 평생을 따라다니며 자신의 몸에 생채기를 낸다. 잊고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일 뿐, 끝까지 지울 수 없는 기억이다. 인간이 가지는 모든 상처의 중심에는 엄마가 있다. 듣기만 해도 눈물나는 단어가 엄마라는 것도 어찌보면 언어폭력의 일종이다. 이렇게도 애틋하고 보편적인 감정을 내포하고 있는 엄마라는 단어가 누군가에게는 공포스러운 무기처럼 작용했다면, 그 것이 수반하는 상흔은 상대적으로 훨씬 더 깊고 크고 짙었을 것임이 분명하다. 이런 고질병이 없다. 그때는 내가 어렸으니까, 기댈 수 있고 도움을 청할 수 있었던 상대는 엄마 뿐이었으니까, 선택지 따위는 없었으니까, 엉엉 울면서라도 꾸역꾸역 겨자를 먹어야 하는 별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어엿한 성인이 되었고 경제적으로도 자립하였으며 혼자서도 잘 살아가고 있다. 상황은 180도 역전되었다. 이날만을 기다리며 이 악물고 참아왔다. 견뎌왔다. 힘없이 늙어가는 엄마가 의지할 곳이라고는 세상 천지에 오로지 나밖에 없는 이런 날을 말이다. 마음만 먹으면 어린 시절에 대한 복수쯤이야 식은죽 먹기이다. 하지만 전혀 기쁘거나 후련하지 않은 이 찝찝한 마음은 무엇이란 말인가. 어린 시절의 상처받은 자아는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와 내 삶을 뿌리채 흔들어 놓는다. 어느날인가 소름끼치게 싫었던 엄마의 모습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본다. 이해할 수 없던 엄마의 행동거지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본다. 연애에 수없이 실패한다. 나의 일상에 그렇게 지긋지긋했던 부모의 결혼생활이 겹쳐진다. 죽고 싶다. 나는 평생 엄마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내 앞에 무릎꿇고 진심으로 사죄하는 엄마를 본다면 치유될 수 있을까? 슬픔이 쏟아져 내린다. 내 자식새끼를 보면 눈물이 난다. 이렇게 이쁜 아이에게 우리 엄마는 어떻게 그랬을 수 있었던 것일까? 우리 엄마도 엄마의 엄마에게 같은 상처를 받았던 것일까? 그럼 시작은 누구의 잘못이었을까?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운명론으로 막을 내린다. 아니, 모두 나의 탓이다. 내 대에서 이것을 끊지 않으면 내 자식 또한 이 고통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아니, 아예 자식을 낳지 말았어야 했다. 나에게서 끝내야 한다.. ... 고통받고 있는 나, 너, 우리는 지금까지 여러가지 방법으로 해결책을 모색해 왔을 것이다. 있는 힘을 다해 지우고 또 지웠을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얼마 전에 읽었던 <부모와 아이중 한 사람은 어른이어야 한다> 와 함께 읽어봐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지금까지 수고했다. 부디 앞으로도 건투를 빈다.


#나의다정하고무례한엄마 #이남옥 #가족관계 #상처회복 #상처치유 #엄마의의미 #엄마와의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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