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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소 첫번째

[도서] 시소 첫번째

김리윤,손보미,신이인,안미옥,염승숙,이서수,조혜은,최은영 공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문예지를 잘 읽지 않는다. 평론서는 더욱이 읽어본 적조차 없다. 나에게 선입견이 있었나 보다. 괜스레 문학평론가를 저어했다. 그리고 문예지를 기다리기보다는 단행본을 즐겨읽었다. 문예지를 통해 찾아가는 문학을 즐기기 보다 보여주는 단행본에 익숙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자음과 모음』에서 한 계절에 발표된 시와 소설을 각각 한 편 선정하여 그 좋음을 널리 알리자는 취지로 '시소'라는 코너를 마련하였다. 2021년 첫 번째 봄·여름·가을·겨울 시소들을 모아 단행본으로 출간하였다. 시·소설뿐만 아니라 작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인터뷰는 특별하고 뜻깊다. 글이 완성되어 세상에 나오면 독자는 읽고 해석하고 사유하고, 작가는 자식 같은 글이 소화되고 발산되어 회자되기를 원한다. 감동과 여운은 독자의 몫이겠지만 독자의 입장에서는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주제, 의도가 사뭇 궁금하다. 그리고 작가 또한 독자의 반응을 알고 싶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그런 부분에서 작가와 문학 평론가의 심도 있는 대화는 '시소'를 음미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그래서 문예지와 문학 평론가에 대한 호의를 가지게 되었다.

 

시소 첫 번째/자음과모음

 

2021년도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마다 나온 다양한 시, 소설 중 선택되어 계절을 대표하게 된 시 4편과 소설 4편은 딱히 계절감이 드러나지는 않는다.

 

소설을 즐겨 읽는지라 소설은 집중해서 읽어갈 수 있었다. 역시나 시는 생각처럼 그 짧은 글이 애를 먹인다. 한번 읽고 두 번 읽고 인터뷰까지 읽어보고 다시 읽어야 빌려온 감성과 느낌으로 얕은 감동에 젖을 수 있었다. 시 행간에 숨어있는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여러 번 찬찬히 읽어봐야 했다. 소설도, 시도 짧은 글일수록 더 어렵다. 그리고 볼수록 끝없이 빠져든다. 고르고 고른 문장 하나가 뿜어내는 빛에 압도된다.

 

8인 8색 작품 모두 제각기 다른 결들과 감성으로 그냥 지나가버린 것만 같아 인생 중 지우개로 지운 듯한 2021년을 우리 곁에 차곡차곡 쌓아준다. 사계절을 1년을 그렇게 선물한다. 고맙다.

 

8인의 작가 중 '최은영' 작가님만 안다. '시소'의 취지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나름 책을 읽는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멀었구나.' 생각에 무릎이 꺾기 전에 '이렇게 좋은 작가를 많이 알았네.' 기쁨에 팔짝 뛰어야겠다.

소설, 시 모두 여성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 관계, 자리, 사랑, 성장을 담고 있다. 같은 사람으로서, 같은 여성으로서, 같은 엄마로서, 같은 딸로서 경험의 공유를 떠나 공감하고 아파하고 더 나아가 이해하고 위로해 주는 공간이었다.

 

활짝 핀 꽃은 마르면서 작은 꽃으로 자랍니다.

그냥 배울 수는 없고요

보고 배워야 가능합니다

 

저는 많이 보고 있어요

...안미옥 「사운드북」

 

나도 멀리서 보면 별 비슷할까요

그럼 뭐해요

평생 난 나를 멀리서 볼 수 없을 거 아닌가요

...신이인 「불시착」

 

나는 발이 없는 것만이 계속 자란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

프레임 안으로 쉽게 미끄러진 다음

화면 바깥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김리윤 「영원에서 나가기」

 

진심으로와

사랑하다 사이의 간격이 너무나 멀었다

...조혜은 「모래놀이」

 

신기하게도 내가 다 아는 단어들인데도 작가의 손으로 나열하고 배열을 마친 시구는 다른 세상의 언어처럼 다가왔다. 그리고 가슴을 건든다. 그렇지 않냐? 고, 나는 이런데 당신의 생각은 어떠냐?고 묻는데 기뻤다.

말라버린 꽃을 시든 게 아니라 작은 꽃으로 자라는 시선을 같이 쫓을 수 있어서 기뻤고,

사랑이 절로 솟아나는 감정인 줄 알았는데 많이 보고 배워야 하는, 내가 키워야 하는 감정임을 알고 건조하던 마음이 촉촉해져서 기뻤다.

올려다볼 때는 반짝이는 별이었는데 내려다볼 때는 회색 먼지 뭉치를 굳힌 것 같은 돌, 운석처럼 멀리서 남이 볼 때는 별처럼 반짝여도 멀리서 나를 볼 수 없는 내가 느끼는 착잡함, 불안감, 생경함, 혼란을 무심하듯 툭 투정 부리듯 툭 내비치는 글에서 위로받았다.

「영원에서 나가기」는 형태, 시간, 성장, 영원에 대한 철학적 사유가 담긴 작품으로 형태가 온전한 영원을 바라는 마음을 비우고 그냥 흐름 그대로를 받아들이려는 시선이 청아하다.

진심과 사랑 사이의 간격, 매번 헷갈리는 그 틈을 고민하고 있어서 와닿는 시였다.

 

소설 「답신」은 이모가 조카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글이다. 5월의 맑은 날, 스물세 살이 된 조카에게 투영시킨 자신에게 속삭이는 듯한 고백이 담담하게 펼쳐지는 데 더 절절하게 다가온다. 결핍된 애정 속에서 서로에게 집중했던 두 자매의 사랑과 희생이 진실되지 못한 이방인 때문에 계속되지 못한 고통이 그려진다. 그리고 언니와 조카 그리고 나는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조카와 주고받던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인사는 이해할 수는 없지만 좋아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언니에 대한 나의 또 다른 사랑 표현이었다. 부디 세 사람 모두 행복하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소설 「프리 더 웨일」은 살아남고자 키워내고자 고군분투하는 엄마의 이야기다. 기혼여성에게 가해지는 사회 시스템의 폭력뿐만 아니라 다양한 집단의 차별과 배제를 그리고 있는 현실성이 강한 소설이다. 싱글맘인 수경은 등단을 한 소설가이나 데뷔작 외에는 작품 활동을 하지 않았고 생계유지와 딸 양육이라는 현실 앞에 학습지 회사에 취업을 한다. 기혼 여성 채용에 불만을 가진 내부 직원들의 비난, 험담, 성추행 등을 철저히 외면하고 회사 다른 직원들과 교류하지도 않은 채 '자리'를 지키려는 노력만 한다. 수경뿐만 아니라 딸아이 또한 어린이집의 '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서 부당한 대우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버티는 두 모녀의 모습은 아프고 암울하고 폭력적이다. 수경은 오롯이 품어주던 남편 우상우가 보여주던 다정함이 그립다. 대책 없는 낙관과 무방비한 희망이었대도. 좋은 날, 좋은 기분을 알지 못한다. 그 고백이 씁쓸한 이유는 그녀의 미래가 쉽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에 함부로 위로조차 건넬 수 없어서이다.

 

미안하고 슬펐어요. 온 힘 다해 키워낼 거지만, 사랑으로 돌볼 테지만, 이 작은 아기에게 먼 훗날 나를 묻거나 태워달라고 할 생각을 하면……

엄마가 되어 엄마가 걸어온 삶을 다시 살고, 아이를 남겨둔 채 깊고 어두운 땅 아래로 홀로 묻혔다. 죽어서도 무서웠을 것이다. 아이를 기르는 동안에도 이 슬픔이 끝끝내 지속되는 거구나. _369쪽

 

벌써부터 시소 두 번째 이야기가 기다려진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만난 8인의 작가들이 앞으로 전해줄 이야기에 귀 쫑긋 기울이면서 천천히 그날을 기다려볼 것이다. '시소' 그 적당한 만남으로 행복한 날이다.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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