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8일 미국 역사상 첫 흑인 여성 대법관이 탄생했다. 커탄지 잭슨 대법관은 인준 후 첫 공개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흑인 여성이 미국 대법원에서 봉사하게 되기까지 232년이 걸렸고, 115명의 전임자를 거쳐야 했다. 그러나 우리는 해냈다"
"우리 아이들이 어느 때보다도 지금, 미국에서는 어떤 것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고 있다고 내게 말한다. 그들은 내가 롤 모델이라고 말하는데 나는 이를 기회이자 무거운 책임감으로 받아들인다."
"나는 노예의 꿈이자 희망"
차별, 편견
'유리천장'이라 불리는 보이지 않지만 은밀하고 암묵적인 장벽은 여성뿐만 아니라 다양한 소수자들에게 적용되는 현상이다. 이를 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개개인의 활동이 바위를 향해 던져 허무하게 깨지는 계란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주디스 휴먼의 자서전을 접하면 개인사가 역사를 구성하는 핵심임을 되돌아보게 된다. 그녀가 미국 시민으로서 자립하고자 걸어간 길은 장애 운동사 그 자체였다. 그녀와 함께 한 수많은 활동가와 의원, 지지자들의 연대와 협력, 공감은 변화를 만들어냈다. 변화는 혼자 만들 수 없다는 분명한 사실의 재발견이다.

주디스 휴먼의 인생은 부모님에게 큰 영향을 받는다. 그들은 홀로코스트에 의해 고아가 되어 십 대에 독일에서 미국으로 이민 왔다. 이 배경은 주디스 휴먼의 인생이 한 시민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그들은 이미 나라에 의해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죽음을 당한 경험을 했기에 "딸아이를 시설에 보내는 것이 좋겠습니다."라는 의사의 조언을 따르지 않고 함께 살기로 했다. 소아마비로 장애를 얻었지만, 이 또한 딸, 주디스 휴먼 자체로 수용한 부모님 덕분에 주디는 한 번도 장애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한 사람, 미국 시민, 주디스 휴먼으로 살아가고자 하였다. 부모님들에게 물려받은 의지는 그녀 스스로 원하는 바를 쟁취하기 위해 싸울 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다.
어린 시절 너무나 자연스럽게 주위와 어울렸던 주디는 사탕가게에 가던 길에 한 경험으로 자신을 다른 시선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 질문으로 그녀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사라졌다. 사람들이 자신을 세상의 한 부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이후 모든 것이 똑같았지만 미묘하게 달랐다는 글에서 목이 잠겼다. 하지만 그녀와 그녀의 가족은 굴복하지도 타협하지도 않고 사회에 속할 수 있는 길을 찾아 나섰다.
학교에 갈 수 없었던 주디는 아홉 살이던 해 4학년이 절반쯤 지난 후에야 '건강보호 21'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주디는 집을 떠나 또래 아이들과 함께 교실에서 수업을 듣을 수 있게 되어 기뻤다. 생각과는 다른 학교 풍경이 이상하다 느꼈지만 매일 집에 혼자 있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비장애인과 철저히 분리된 세상에서 '분리 평등'이라는 현실 속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게 된 것이었지만, 오히려 주디는 그 시절을 배제와 맞닥뜨리며 연대하는 시간이었고, 훗날의 성공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될 어떤 것을 가르쳐주었다고 회고한다. 사회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했지만 각자가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어떤 것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미래의 삶이 원하는 대로 되기를 꿈꾸며 서로를 지지하게 될 동지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자꾸 간과한다, 어린이들의 놀라운 능력을. 그리고 그것이 가장 중요한 능력이라는 사실을.
주디스는 평생 차별과 싸워왔다.
학교에 다니기 위해 교육위원회와 싸우고,
교사가 되기 위해 또 교육위원회와 싸우고,
재활법 504조 시행을 위해 보건교육복지부와 싸우고,
미국 장애인법 제정을 위해 의회와 싸웠다.
드디어 1990년 7월 26일, 그녀와 동지, 그들은 오랜 투쟁 끝에 가장 강력하고 가장 포괄적인 시민권법을 만들었다. 그렇게 바랐던 동등한 시민이 되었다.
'분리 평등'으로 장애인들을 없는 존재로 배제했던 세상에서 차별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 책 곳곳에 잘 드러나 있다. 그녀의 화와 분노가 잘못된 것이라 말하는 시대에 여성으로서 장애인으로서 자기 자신을 떳떳하게 드러내는 그녀를 보면서 부끄러움을 느꼈다. 자신의 일이 아니면 무심하거나 보지 못하는 나의 현실이 주디 그녀가 느꼈던 차별의 벽이지 않았을까 싶어서. 사람들이 늘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차별,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거나 이해하지 못했을 뿐이라거나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랐다고 말하며 지워버리려고 하는 차별 말이다.
그녀는 살 가치가 있는 삶을 원했다. 인간으로서 우리가 지닌 가치에 대한 의문을 가졌다. 누구의 삶이 가치 있는지를 누가 결정할 수 있는가? 주디스 휴먼 그녀는 그 의문에 대한 답으로 스스로 장애인을 배제시키는 사회와 힘껏 부딪쳐 싸웠다. 재활법 504조 시행을 위해 연방 정부 건물을 점령하고 단식 투쟁까지 불사르며 농성을 하였으며, 장애인법 제정을 위해 의회 의사당의 대리석 계단을 기어 올라갔다. 그녀와 동지들은 남들이 부정한 모든 것을 스스로 쟁취하였다. 돈과 효율, 편리함에 침묵하고 외면하는 세상에 목소리를 내었다. 그들 또한 동등한 시민이고 인간이라는 자명한 사실을 외쳤다.
『나는, 휴먼』을 읽으면서 뜨거운 감자였던 '장애인 지하철 시위'에 대한 생각이 깊어졌다. 출근길에 행해진 시위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낸 일반인들과 정치인들을 보면서 의문이 든다. 물론 난처하고 당혹스러운 상황이긴 하지만, 그들이 겪은 몇 차례의 불편을 장애인들은 평생 감당해왔다. 내가 아니면 상관없다는 좁은 세계에서는 그 불편이 전부일 것이다. 하지만 100세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누구나 장애를 안고 살아간다. 어느 순간 자신의 위치가 달라질 수 있다. 그제서야 돌아볼 것인가? 굳이 그렇지 않더라도 나와 네가 아닌 우리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았으면 좋겠다. 차별과 편견, 배제가 아닌 연대와 공감, 배려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싶다. 봄바람 타고 꽃향기처럼 온기가 우리 사회 곳곳에 퍼져나가길 바란다.
여성이기 전에, 장애인이기 전에, 주디스 휴먼으로 살아가고자 한 그녀의 모든 것이 큰 가르침이 되어 바른길로 인도해 줄 것이다. 스스로의 가치를 본인이 정할 수 있다는 믿음을 전하는, 울림 가득한 책이다. 오늘날 살기 퍽퍽하다 말하는 우리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는 『나는, 휴먼』을 많은 이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