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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코는 없다 외

[도서] 하나코는 없다 외

최윤 등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지난 금요일 급한 일을 몇 개 끝내고 나니 여유를 가지고 소설이 읽고 싶어졌다.  소설은 대체로 장편소설을 자주 읽는 편이지만, 최윤의 소설은 어쩐지 장편보다는 단편소설이 더 읽혀지고 내게는 장편보다 단편이 더더욱 길게 느껴지곤 한다.  그 분의 소설은 한 소설집에 묶여져서 전체로 포괄 할 수 있는 가 하면 작가가 [숲 속의 빈터]와 같은 소설은 그냥 따로 내고 싶었다고 말하는 것처럼 때로는 독립적으로 그렇게 존재한다.  나는 언제나 그렇듯 아직 열려지지 않은 그의 문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고 열고 난 후에 어떠한 방식으로든 피하지 않고 만나게 하는 그녀의 소설이 참으로 좋았다.  한 동안 어떤 소설들은 텅 빈방에 나 혼자 남겨놓은 듯한 느낌도 주곤 하였지만 말이다.

 

[하나코는 없다]는 94년도에 이상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다.  언제나 그렇듯 내게는 10년이 지나서야 찾아온 것이다.  나에게는 그런 시간이 필요했다.  좀 더 일찍 경험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제서야 찾아온 이 모든 내 앞에 놓여진 것들에 대하여 나는 감사한다.  시간이 흐르고 나면 다시 또 내가 커버린 만큼 다르게 생각하게 될지언정..[하나코는 없다]라는 작품을 읽기전에 생각을 했던 것은 단순히 일본여인이 한 사람 등장하겠구나 하는 정도였다. 그리고 구지 작품을 그리지 않더라도 내게는 어떠한 스파크로든 작용을 하리라 생각을 했었다.  단편의 좋은 점은 작품 전체의 구성을 돌이켜보는데 있어서 흐름이 끊어지지 않을 만큼을 품을 수 있다는 것일 것이다. 

 

[하나코는 없다]는 하나코를 아는 여러사람들 중의 '그'라는 사람이 소설속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소설의 시작은 낯선 곳에서 시작되는 물위에 떠있는 듯한 느낌을 배경을 통해서 그대로 드러낸다.  그가 찾아온 곳은 베니치아이다. 소설은 '모자' 무역업을 하던 그가 대학시절과 사회초년의 시절을 지나 중년에 접어들면서 무역차 이탈리아로 가게 되는 일로 시작된다.  그는 사업차이기 이전에 이전에 친구 K로부터 예전에 그들과 함께 어울리던 '하나코'의 소식을 듣게 되면서 어느날 갑자기 이탈리아로 도망쳐오듯 아내에게 출장 소식을 알리지도 않고 베네치아로 오게 된다. 

 

하나코라는 이름은 그와 그의 무리들 J,P,K 등이 함께 '장진자'라는 그녀의 이름 대신에 부친 이름이었다.  왜 그들은 그녀에게 하나코라는 이름을 붙였는지는 정확히 기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우연히 붙여진 이름, 그녀의 코가 눈의 띌 정도라고나 할까 그런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그들에게 있어 하나코의 존재와도 무관하지 않은 그러한 일본식의 별명으로 불리어지고 있었다. 다시 이전으로 돌아간다.  대학시절 그들은 그들의 무리 중 어느 한명의 소개로 하나코를 알게 된다. 하나코는 그들의 모임이 있을 때 마다 항상 함께 했는데 그들이 기억하는 것은 항상 그녀가 그녀의 친구를 한명 데리고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종종 그들은 여럿이 모여서 자신의 일상을 나눌 때도 하나코는 옆에 있었지만 그녀의 이력에 대해서도 그다지 아는 바가 없었으며 그리고 그녀가 특별히 그녀의 일로 관심을 끌게 하는 적도 없이 그렇게 지내는 사이었다.  종종 그들이 각각 따로 하나코와 만나서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이야기들을 그녀에게 털어놓기는 하였지만 그녀는 그들 개개인의 마음속에 온전히 자리를 잡은 것도 아니었지만 그렇지 않다고도 할 수 없는 그런 존재로 남아 있었다.  그들에게 있어 그녀는 일종의 탈출구와도 같은 그런 존재였다. 그것은 그녀보다는 자신들의 상황에 초점이 맞추어진 그래서 그녀가 필요한 것과 같이 보였다. 그녀는 만인의 연인이지도 않았지만 그들의 각각 결혼을 할 때에도 그녀에게 일부러라도 연락을 하지 않는 그런 사이였다.

 

그랬던 그녀가 어느날 그들의 곁에서 사라지게 된 것이다.  그들은 모두 그 사실이 일어난 일을 알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이야기를 쉽사 꺼내지도 않았으며 사회초년생 시절의 객기에서 비롯된 극히 긴장속에서 살아가던 그들이 어느 덧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긴장이 풀어지면서 생겨버린 그 일을 그들은 기억하고 싶지도 않았고 중 세월을 지나면서 정말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에 부딪혀 잊어진 것처럼 그렇게 지냈다.  어느 누구도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일을 그리치고 난 뒤에야 지쳐 있는 자신들의 영혼을 보게 되었고 조용한 일상속에 스며 있는 자신들의 폭력성을 경험하게 된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그들은 각각 우연히 듣게된 하나코의 소식에 출장을 핑계삼아 이탈리아로 가지만  정작 그들은 하나코를 예전처럼 만나지도 대하지도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주인공 그 역시 하나코를 만나기 위해서 수소문을 하였고 전화통화도 하였다.  그녀는 디자이너가 되어 있었고, 그는 그녀에게 잘 있냐고 물었고 괜찮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아직도 저를 그렇게 모르시겠어요." 라는 말을 남긴다.  그리고 그에게 꼭 오라고 그러지만 그는 다시 그녀를 만나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친구들처럼 출장을 다녀온 이야기를 허풍을 섞어 이야기를 하지만 그들처럼 그녀와 있었던 이야기는 쏙 빼어버린다.  그들은 이전처럼 하나코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지도, 그렇다고 그녀가 자신들 이전처럼 대할 수 없음을 알게 된 것이다.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그것은 세월의 흐름과 그들의 만만의 공백이상의 것이 존재함을 비로소 느끼게 된 것이다.

 

며칠 후 그는 머리속에서 맴도는 그녀가 전화로 전한 아직도 자신을 그렇게 모르겠냐는 말을 생각하고 있을 무렵, 어느 잡지에 소개된 글과 함께 그녀의 사진과 함께 실린 기사를 보게 된다.  그녀는 이탈리아에서 '의자'를 디자인하는 성공하는 캐리어우먼이 되어 국내로 들어오는 사진을 보게 되는데 그녀의 곁에는 이전에 그녀와 함께 늘 붙어다니던 친구도 함께 임을 알게 된다.  그녀와 그녀의 친구는 그들에게 자신의 동업자이가도 하고 동반자이기도 하다는 메시지를 보게 된다.

 

이 소설을 보고 '페미니즘 적인 요소가 아주 강한 영화'라고 말을 한다고 하였다.  그들이 그저 평범한 일상에 편승해서 때로는 과거를 회상하며 큰소리 치며 그저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때 그녀는 성공한 모습으로 그녀의 친구를 동반자라는 메시지로서 여성 스스로가 남자에게 의지하지 않고 일어설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준 소설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남자와 여자의 관계이기 이전에 강자와 약자의 관계로 읽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에는 여성으로서 한 번 이 책을 읽었고, 읽고나서는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서 다시 한 번 이 책을 읽었다.  아무렇지 않은 듯 행해지는 그 일들이 때로는 한 사람의 영혼에 지이지 못한 상처를 줄 수가 있다. 그들과 그녀가 마지막 낙동강까지 중고차를 타고 흘러가서 어느 민박집에서 있었던 일을 읽는 부분에서 솔직히 나 역시도 그렇게 당혹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녀가 받은 그 수치심을 그들도 알았고 그것은 그들의 아무 생각없이 행해진 객기가 한 사람의 영혼에 가한 상처였던 것이다.  최윤의 소설에서는 전쟁이나 총칼이 없이도 나타날 수 있는 '폭력'에 대한 그녀의 세계관을 엿볼 수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성공을 하고 돌아온 이전에 그들이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알 수도 없었던 '하나코'에서 초점을 맞출 수도 있다.  [하나코는 없다]는 소설의 제목은 그들이 규정하고 그들이 그녀에게 행했던 그런 하나코는 없다는 허상에 대하여 말을 한다.  그들이 규정한 하나코는 없지만,  그녀 장진자는 존재했고 그렇게 그들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던 그녀는 국제적으로 유명한 디자이너가 되어 다시 나타난다.

 

더 나아가서 소설은 관계의 허상에 대하여 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에게 있어 '하나코'는 익명에 가까운 존재로 실제의 관게속에서 그녀를, 혹은 그녀의 입장에서는 그를, 생각하기 이전에 스스로 관계의 허상에서 자신들을 내맡겼던 모습을 볼 수가 있다.  그?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는데 그는 소설속에서 '모자'의 무역업을 하고 그녀는 '의자'를 디자인한다.  모자와 의자는 우리에게 있어 무언가 다른 느낌을 전해준다. 화장을 안하고 가벼운 만남을 가질 때 가끔 우리는 모자를 쓰기도 하고 급한 마음에 머리를 감지 못하였을 때 모자를 푸욱 눌러쓰고 나가기도 한다. 소설속에서는 그 뿐만이 아니라 그의 친구도 '모자' 동업을 하는 것으로 나온 것을 보면 그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기 보다는 무언가 가리고 나아가는... 그리고 그녀는 늘 그들과 개별적인 만남을 가질 때  편안한 의자가 있는 곳으로 안내를 했다.  그녀는 언제나 그들에게 있어 '편안한 의자'로서의 역할을 가져왔던 것이었다.  그랬던 그녀에게 그들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하게 됨으로서 비로소 자신들이 가진 허상의 관계를 보게 한다.

 

언제나 그렇듯 읽고나면 그다지 편안한 느낌을 받지 못하는 것이 최윤의 소설이다.  그렇지만 놓고 싶지 않은 것 역시도 그녀의 소설이다.  마치 로제 그르니에의 소설이 그토록 읽는 동안 마음의 언저리에 무수한 흐트러진 물거울을 만들듯이 말이다.  하지만 안다.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님을, 그리고 이제 우리 개개인에게 소설에서 삶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을 안다.  그녀의 소설은 그래서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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