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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주인공만 모른다

[도서] 여자 주인공만 모른다

듀나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매년 개봉되는 영화의 수도 크게 늘어났고 장르도 다양해졌지만 관람객들의 평가가 박한 영화들에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출연 배우들의 연기력도 한 몫 하겠지만 시나리오 내용의 전개나 감독의 연출이 매끄럽지 않다는 점이 대부분 지적된다. 액션이나 코믹영화의 경우에는 앞으로의 내용이 뻔히 예상되거나 진부하거나 한물간 그리고 억지스럽게 웃음을 짜내려는 경우가 꼽히곤 한다. 이런 평가들이 익명성이라는 이름하에 관련 기사 등의 댓글에 인신공격적이고 지나친 비하 표현 등으로 나타나게 되면서 대형 포털 한 곳은 연예와 영화란에 댓글을 달지 못하도록 하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과는 별개로 영화나 드라마 등을 꼼꼼히 챙겨보는 이들은 예상 가능하거나 반복되는 구성에 대해 나름의 목록이나 견해를 가지고 있기 마련일텐데 이를 일목요연하고 간결하게 정리한 책이 출간되었다.


 SF소설가이자 1990년대 초반부터 영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듀나는 세기말이었던 1999년부터 본인의 인터넷 게시판에 ‘클리셰 사전’이라는 란을 만들어서 텔레비전 시리즈나 영화 감상 등의 경험을 통해 느낀 장르상 진부한 관습들을 틈틈이 정리해왔다. 그가 밝히고 있듯이 현재에 비추어 볼 때 시간이 많이 흐른관계로 독자들에게는 다소 낯설고 생소한 작품들이 언급되고 있기도 하지만 지금에도 면면이 이어지고 있는 클리셰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독자들이 본인이 알고 있는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요소들과 비교해보고 나아가 저자가 언급한 사례들이 담긴 작품을 새롭게 찾아볼 수 있는 기회로 볼 수도 있겠다. <여자 주인공은 모른다>는 제목이 인상적인 이 책은 클리셰로 부를 수 있는 장면 등을 가나다순으로 정리하고 있다.


 제임스 본드가 주인공인 007시리즈를 비롯해 거의 모든 액션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 하나 있다. 악당들의 속임수에 빠지든 엄청난 수에 압도되었든 주인공이 잡혀와 목숨이 위태로운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악당의 우두머리는 승리의 도취감에 빠져서인지 태연하게 자신의 계획과 야망을 장황하게 설명한다. 그 사이 주인공에게 도움을 줄 동료들이 출현하거나 주인공 자신이 재빠르게 수갑이나 밧줄을 풀고 비밀무기를 꺼내 활약하면서 범죄를 해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같은 장치는 주인공에게 빠져나가기 힘든 위기를 제공하면서도 기회 역시 동시에 제공해야 한다는 복잡한 상황을 만족시키기에 이만큼 손쉬운 구성이 없기 때문에 생각을 귀찮아하는 작가들이 흔히 사용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목적은 각본가가 악당의 복잡한 음모를 극적 재미를 살리면서 관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에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위의 사례만큼 흔한 것이 로맨스 장르에서 볼 수 있는 신분을 숨긴 사랑이다. 남자 주인공이나 여자 주인공이 다른 사람인 척 돌아다니는데, 그 와중에 다른 여자나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갈등이 발생한다. 상대방이 자기 자신의 실제 모습이 아니라 거짓으로 꾸민 외형에 빠져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의 예는 워낙 흔해서 영화 <25살의 키스>, 귀족 청년이 평민 소녀와 사랑에 빠지는 발레 <지젤>, 마리보의 코미디 연극 <사랑과 운명의 장난> 등 영화 이외의 장르에서도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여기에 주인공이 사랑을 얻기 위해 의도적으로 자신의 신분을 속이거나 변장하는 등의 약간의 변주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이야기가 사랑받고 반복되는 것일까? 저자는 흔해서 조금은 식상할 수 있는 로맨스에 약간의 변장과 거짓말을 가미함으로써 서스펜스가 발생할 뿐 아니라 현실의 연애를 다소 과장한 것에 불과해 극적인 일상을 구현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독자들에게 내놓는다.  이 밖에도 음주후 기억상실, 불치병, 나는 네 아빠(엄마)다, 파리 어딜 가도 에펠탑은 보인다 등 제목만 보아도 어떤 얘기인지 짐작이 가는 주제들과 먼 산 보기 등 다소 생소하면서도 미처 생각지 못할 수도 있는 장치들을 총 89개의 이야기로 풀어놓았다.
 

 저자는 클리셰에 대해 공식과 규칙처럼 자기 생각없이 반복되기 때문에 진실성이 없긴 하지만 쓸모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원래 우리는 생각만큼 독창적인 존재가 아닐뿐만 아니라 독자에게 게는 일종의 제식처럼 매력으로 다가올 수 있고 많은 뛰어난 장르 작가들도 이 진부한 공식들을 멋대로 뜯어 고치거나 극단적으로 따라가며 즐기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언급한 것 외에도 독자 본인들이 생각하는 클리셰들을 떠올려보면서 별도로 정리해본다면 더욱 능동적이고 재밌는 경험이 될 것 같다.


* 리뷰어 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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