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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밤에 읽는 만화 그리스 로마 신화

[도서] 야밤에 읽는 만화 그리스 로마 신화

김원경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Mercury, Venus, Mars, Jupiter, Saturn…… 태양계를 구성하는 행성들의 영어 명칭을 지구를 제외하고 순서대로 나열한 것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유래한 이 이름들은 물론 서양의 문명 곳곳에는 신화의 흔적과 영향이 짙게 배어있다. 2000년대 중반 우리 사회에서 주목할 만한 문화적 현상으로 꼽혔던 것이 ‘신화’에 대한 관심이었다. 이윤기 선생의 ‘그리스 로마 신화’를 비롯해 북유럽, 중국 등의 여러 문화권의 신화가 활발하게 소개되는 한편 신화와 관련 전문 분야를 접목시키려는 학계의 논의도 활발했다. 과학의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신화란 그저 허풍이나 과장이 담긴 옛날 이야기로 치부할 수도 있을텐데 어떻게 많은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일까? 연구자들은 신화가 겉으로 드러난 내용 그대로가 아닌 인간의 무의식이 담긴 상징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그 내용에서 찾아볼 수 있는 현재성과 보편성을 강조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그리스 로마 신화는 고전 문학, 음악, 미술 등에 영감을 주는 소재였을뿐만 아니라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기술적 발전과 문화적 변주에 힘입어 코믹스, 불록버스터, TV 시리즈에서도 그 규모를 달리하여 우리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고 있다. 아울러 신화가 담고 있는 세계관을 다시 한 번 짚어볼 계기를 제공하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리스 로마 신화가 담고있는 이야기의 방대한 규모다. 수많은 등장인물과 사건 그리고 서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상호 관계 등으로 일목요연하게 머리 속으로 정리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씨네21북스가 펴낸 <야밤에 읽는 만화 그리스 로마 신화>는 야밤에 읽는 이라는 표제가 의미하듯 지금까지의 많은 책들과 결을 달리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우선 그리스 로마 신화는 성인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 눈에 띤다. 수많은 신들이 언급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신성한 그리고 고결한 신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세속적인 인간과 마찬가지로 정욕, 소유욕과 같은 탐욕은 물론 그를 충족시키기 위해 살인 그리고 전쟁도 불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집착과 배신도 넘쳐난다. 금기시되는 근친상간과 이종교배마저도 신들의 세계에서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자식을 잡아먹는 티탄, 난잡한 성관계를 밥먹듯이 하는 제우스, 의미없는 살인을 반복하는 헤라클레스로부터 아이들이 꿈과 희망을 배우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게 작가의 변이다. 그리고 구성상 재미를 위하여 그리스 로마 신화의 여러 판본들에서 취사선택한 내용들이 있어 때때로 널리 알려진 것과는 다른 다소 낯선 이야기들이 존재한다는 점도 밝히고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제우스의 탄생을 보자. 가이아가 자신이 만든 천공의 신 우라노스와 함께 2세들을 만들며 시작되는 신들의 세계에서 그 중 똑똑하지만 사악한 성격을 가진 막내 크로노스가 아버지인 우라노스에 반기를 들어 왕위를 잡은 뒤 남매관계인 레아와 자손을 만든다. 그들이 바로 헤라, 하데스, 포세이돈, 제우스 등이다. 다른 형제와 마찬가지로 크로노스에게 잡아먹힐 위험에 처했던 제우스는 할머니 가이아와 어머니 레아의 도움으로 살아남고 첫 번째 부인 메티스와 함께 아버지 크로노스에게 먹힌 형제들을 구해내고 한동안 행복하게 살아간다. 하지만 할머니 가이아가 메티스가 낳은 아이가 신들의 왕이 된다는 얘기를 흘리자 아내를 한 입에 삼켜버린다. 이런 과정은 신화를 다룬 책들이라면 제우스가 태어나기까지 역경과 아버지를 해치면서 형제자매들을 구하는 영웅적인 행위가 담담히 서술되었을 터이지만 이 책에서는 만화의 장점을 잘 살려 여인의 품을 안식처로 여기는 뭇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제우스의 메티스에 대한 구애과정이 익살스럽고 매우 인간적으로 표현되어 있고 여성 편력의 시작점임을 잘 드러내고 있다. 또한 크로노스의 포악한 성품과 악행을 판소리의 한 장면으로 전달하는 만화적 장치도 곳곳에서 활용하고 있다.


 책 I편과 II편 사이에 있는 번외편에서는 아레스와 헤파이토스, 아프로디테의 삼각관계 및 조금 어딘가 부족해보이는 포세이돈을 다루고 있다. 아재개그를 대표하는 말장난, 즉 아프로디테를 앞으로 뒤태로 바꿔 호명하면서 아프로디테가 아레스와 밀통했을 때 남편 헤파이토스가 거미줄로 덫을 놓아 현장을 덮치고 망신을 줬으나 그 뿐이었다, 대장장이 신으로서의 능력을 열거하다가 이야깃거리는 별로 없다는 허무한 얘기로 끝맺는 등 B급 감성을 충분히 살리고 있다.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라는 시를 인용하며 시작되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 대해서는  청혼도 실패하고 트로이의 성채를 쌓아주고도 뒷통수를 맞는 실속없는 모습을 그리면서 올륌포스의 꺼벙이로 묘사한다. 어딘가 모르게 희미해 보이는 포세이돈의 얼굴은 그런 성격을 잘 형상화하고 있다.

 

 특히 작가의 뚜렷한 견해를 보여주는 부분은 책의 마지막장 헤라클레스 편이다. 진화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 교수의 살인에 대한 견해, 미셸 푸코가 <비정산인들>에서 칭한 괴물의 정의 등의 잣대를 활용하여 우리에게 강력한 힘을 지닌 영웅으로 널리 알려진 헤라클레스를 법ㆍ제도 위반에 의한 사법적 개념의 괴물에 속한다고 주장한다. 전쟁이라는 핑계로, 삶의 숙제라는 여정으로, 신의 저주에 의해 너무 많은 살인을 저지른 점을 주장의 토대로 삼는데 제 자식과 형 이피클레스의 아이들을 함께 불 속에 던져 죽인뒤 아폴로 신전에서 받은 신탁을 바탕으로 행한 에우튀스테우스왕에 대한 12년의 봉사 활동과 그 밖의 사건들을 보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의견으로 여겨진다.


 야밤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만화책이 하나 더 있다. 2017년 출간된 야밤의 공대생 만화가 바로 그 것인데 과학사의 중요한 인물과 사건을 인터넷 유머와 감각적인 패러디로 많은 이들의 호평을 받았다. 분야는 비록 다르지만 씨네21북스의 <야밤에 읽는 만화 그리스 로마 신화> 역시 신과 그들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개략적인 얼개를 여러 만화적 장치들을 이용해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을 뿐 아니라 관련된 연구성과나 문학작품을 인용하면서 그리스 로마 신화에 담긴 함의도 잘 짚어주고 있다. 이를 통해 그 방대함에 짓눌려 현재까지도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우리의 기억 속에 전승될 그리스 로마 신화를 접하지 못하고 있는 이들에게 입문서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낼 것으로 보인다.

 

 

* 리뷰어 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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