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블로그 전체검색
신영복 평전

[도서] 신영복 평전

최영묵,김창남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한 사회의 어른으로 지도자로 살아온 사람들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것은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그 시대를 이해하는 동시에 그를 딛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려 노력하는 많은 이들에게 영감과 깨달음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것이 평전이나 자서전의 출간이 갖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자기 기만적인 치적의 나열과 그를 강조하려다 외교적 비밀을 누설하는 등 함량 미달을 극명히 보여주는 이명박의 <대통령의 시간>이나 광주민주화 항쟁의 역사를 왜곡하고 자기 변명에 급급한 <전두환 자서전> 등을 보면 과연 이런 종류의 책들이 필요한 것인지 회의감이 들 때도 있다. 물론 이 사회를 위해 헌신한 훌륭한 분들을 기억하기 위해 후학이나 뜻을 같이 했던 이들이 성실히 그 분들의 삶을 돌이켜보고 의미를 되짚어보는 경우도 많으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지만 말이다.


 지금으로부터 4년전 1월, 자신 인생의 3분의 1에 가까운 20년을 감옥에서 보낸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군에서 장교로 복무하던 1968년 통혁당 사건으로 인해 간첩 혐의에 연루되어 사형을 언도받고 간신히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어 복역했던 장기수였다. 세상으로 다시 나와 감옥생활을 통해 더 갈고 닦은 삶의 지혜와 동양 고전의 의미를 많은 이들에게 전달하면서 참다운 어른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몸소 실천했던 신영복 선생의 이야기다. 감옥에서 지인들과 주고 받은 성찰적 편지로 인해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강의 ? 나의 동양고전독법>, <담론>을 비롯한 많은 저서를 남겼으나 여전히 선생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많다. 2년전에는 시대를 의롭게 살다간 수많은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론을 전문적으로 집필하는 김삼웅 선생이 <신영복 평전>을 펴내 그 뜻을 기리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 선생이 재직했던 성공회대 동료 김창남, 최영묵 교수가 선생의 삶을 정리하여 또 하나의 <신영복 평전>을 내놓았다.


 저자들은 이 책을 두고 ‘신영복 선생이 평생 거치신 학교에 관한 이야기’라고 했다. 학교란 학업과 연구를 병행한 학생시절과 그리고 무난한 인생이었으면 접하지 못했을 형극의 길이었던 감옥 생활, 그리고 사회로 돌아와 대학에 적을 두고 학생들과 시민들과 삶과 학문의 자세 등을 함께 토론하며 더불어 숲을 가꾸어 가던 선생 시절을 한마디로 관통하는 다중적 의미일 것이다. 선생도 출옥 직후 한 신문에서 쓴 글을 통해 자신의 길을 세 길에 비유하면서 20년의 감옥생활을 ‘나의 대학시절’이라 명명했다고 한다. 책은 평전답게 어릴때부터의 삶의 여정과 성찰적 관계론으로 대표되는 선생의 사상 그리고 다양한 저술활동을 두루두루 살피고 있다. 독특한 것은 선생이 평소에 듣기 좋아했던 쇠귀라는 아호로 그를 지칭한다는 점이다.


 대중에게 쇠귀는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겸허하고 예의바른 성품에 명랑함도 갖춘 이로 기억된다. 이런 품성은 자라온 과정과 일화를 살펴보면 이해할 수 있다. 교장 사택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졸업까지 거의 전 기간을 교장 선생님의 아들로 자라온 쇠귀는 지금의 초등학교 3학년 시절, 일본에서 귀환한 나이 많던 급우에게 교장 아들이라는 이유로 1등을 한 것이라는 비난을 듣는다. 사실은 아니었지만 나중에 선생님의 지시로 찾아갔다가 가난한 집안형편을 목격하고는 친구의 주장을 곱씹어보면서 그 사건 이후 되도록 1등을 하지 않아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장난꾸러기가 된다. 대학에 다닐때나 사형수 시절에도 글을 모르고 제대로 배우지 못한 이들을 위해 편지나 항소이유서를 대필해준 면모에서도 그의 성품은 잘 드러난다. 대학을 마치고 숙대 등에서 교편을 잡는 등 촉망받던 학자였던 쇠귀는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되면서 사형을 선고받고 죽음 앞에 서게 되는 등의 큰 격변을 겪게 된다.

 

 고 김대중 대통령은 사형선고를 받던 순간의 심경을 이런 식으로 회고했다. ‘재판장의 입술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입술이 옆으로 찢어지면 사, 사형이고 입술이 앞으로 튀어나오면 무, 무기징역이었다. 입이 나오면 살고 입이 찢어지면 죽었다. 나는 입술이 앞으로 나오길 간절히 기도했다.’ 독재정권에 굴하지 않고 싸워온 민주화 투사라 하더라도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는 삶을 바라는 것은 인지상정인데 쇠귀는 여섯차례나 사형소릴 듣고 두려워하면서도 조국과 민족에 대한 시 한 편 남기겠다며 마음을 다잡고 결국 무기로 감형되면서 기나긴 수형생활을 시작한다. 그는 사상범이었지만 널리 알려진 것과 같이 공장에 출역해 페인트?도장?영선 등 수많은 기술을 익히면서 밑바닥 재소자들과 함께 어울리며 우정을 나눈다. 이같은 감옥생활은 쇠귀의 사상세계에 많은 영향을 주게 된다.

 

 쇠귀는 책과 교실보다 현장과 사람, 이론보다는 실천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감옥에서 깨달았다. 대학 은사였던 변형윤 선생이 1988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출판 기념회에서 ‘뛰어난 경제학자를 잃었지만 위대한 사상가를 얻었다’는 언사가 무색하지 않게 옥중에서의 다독과 재소자와의 격의없는 어울림의 경험을 ‘성찰적 관계론’이라는 자신만의 철학관으로 정립했다. 세계는 개별적 존재들의 집합이 아니라 내가 맺고 있는 관계의 총합이며 관계는 끊임없이 생성?변화한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개인, 집단, 국가 등이 배타적으로 자기를 강화하고 강요하는 자본주의라는 사회구성 원리를 극복할 수 있는 연대와 실천의 원리로서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사상적 배경으로 저자들은 마르크스 정치경제학, 붓다의 연기론과 공자의 휴머니즘으로 대표되는 동양사상을 언급하고 있는데 쇠귀는 이런 성찰을 항상 일관적으로 실천해왔다고 평가받는다.

 

 청년운동가 쇠귀가 1988년 광복절에 초로의 붓다로 돌아왔다가 타계한지 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세상은 약탈적 자본주의의 횡행으로 불평등이 심각해지고 있고 사회는 각자도생이라는 미명하에 더욱 파편화되고 있지만 이런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인적?사회적 대안을 제시할 어른이 부재한 시대이다. 불행한 시대로 인해 겪은 개인적 시련과 고통의 경험을 공감과 연대의 정신으로 사회를 바꾸어보자는 실천의 사상으로 이끌어낸 이 시대의 사표, 쇠귀 신영복 선생의 삶과 정신을 다룬 이 책은 그래서 더욱 소중할 수 밖에 없다.

 

* 리뷰어클럽 서평단의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0

댓글쓰기
첫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