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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

[도서]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

미야노 마키코,이소노 마호 저/김영현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한살 터울의 두 명의 40대 여성이 있다. 이소노는 의료인류학자이고, 미야노는 철학자이다. 이름도 비슷해서 책을 읽다보면 헷갈린다. 그래서 의료인류학자 이소노는 철학자 미야노를 다른 공간에 존재하는 자신의 여동생이라고 생각한다.

둘은 한 학술행사에서 만나서 인간적이면서 학술적인 호감을 느꼈다. 사실은 철학자 미야노가 이소노를 자기 삶의 마지막 동행자로 선택한 것이다. 미야노는 유방암을 앓고 있었고, 말기 진단을 받아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직감적으로 삶의 정리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고, 그것을 도울 상대로 이소노를 선택한 것이었다.

둘은 2달간 10여차례의 편지를 주고 받는다. 미야노가 말기암 상태라는 것을 안 이소노는 당황해 한다. 의료인류학자로 질병에 걸린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연구해온 그이지만 실제 죽음을 앞둔 사람과의 소통은 두렵고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그는 처음엔 미야노가 나을 거라며 희망을 던지고, 기적을 바라는 보완대체의학이나 민속의료를 검색해서 미야노에게 투척한다. 그러면서도 그녀에게 희망을 던져야 하는지 위로를 던져야 하는지 몰라서 편지의 마무리는 선생이 학생에게 숙제를 주는 듯한 조언과 질문으로 끝낸다. 자신이 살던 교토에 미야노가 찾아왔을때도 그의 여행가방을 들어줘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도 어찌 할 줄 몰라 애를 태운다.

반면 미야노는 차분히 답장 속에 자신이 일생동안 탐구해왔던 철학자 '구키 슈조'의 '삶의 우연성'이라는 안경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솔직하면서도 때론 거칠게 스스로를 의류인류학자인 이소노에게 보여준다.

미야노는 자신의 투병사실을 전해 들은 주변 사람들 마다 용하다는 민속치료와 식품들을 마구마구 보내주는 것에 지쳤고, 티뷔 프로그램에서 다 나으면 가족여행을 갈거라고 말하는 어느 암환자의 인터뷰에 냉소적이고, 항암치료를 중단하고 완화치료를 권유하는 의사에게 '선생님의 가족이라면 어떻게 하실건가요?'라고 묻는 어머니를 보며 알 수없는 분노가 치미는 자신을 이야기한다.

이소노는 미야노의 답장을 읽으면서 점차 죽어가는 자를 대하는 자신의 태도를 스스로 분석하고 반성하게 된다. 의류인류학자로 살았지만, 정작 죽어가는 자를 대하는 당사자가 되었을 때 몸도 머리도 굳어버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조금씩 용기를 내어 에둘러 갔던 죽음과의 직접적인 대화를 미야노를 통해 시작해 나간다. 숙제를 내주던 선생님에서 어느순간 진리를 배우려는 학생이 되어 그는 철학자 미야노에게 삶과 죽음을 묻게 된다.

이소노의 물음에 미야노는 점점 몸이 말라가고, 통증이 자신을 삼켜 마약성 진통제가 늘어가는 상황에서 펜을 들어 편지지에 '라스트 댄스'를 추기 시작한다. 그리고 말한다. 평생 탐구했던 주제가 죽음의 목전에서 비로소 깨달아지고 있다고.

두 사람이 서로를 애틋하게 아끼고, 죽음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서로를 격려하면서 대화하는 과정은 육체는 쇠약해도 정신은 더욱 빛날 수 있음을 알게 한다. 그 성취감 속에서 미야노는 자신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를 견뎌낸다.

편지가 계속될 수록 미야노의 병이 진행되고 남은 페이지가 얇아져 갈 수록 내 마음도 안타까움에 어쩔 줄 몰라 읽다 멈추기를 몇번을 반복했다. 그렇게 미야노는 우연한 인간의 탄생도, 유방암의 발생도, 그리고 미야노와의 만남도 마치 모두 예정된 것처럼 자신의 삶의 서사로 완성하였다. 서구의 실존철학이 일본에서 어떻게 더 세밀하게 다듬어지고 확장되었는지를 미야노의 글을 통해 배울 수 있어 더욱 값진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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