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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 이야기 3

[도서] 미국인 이야기 3

로버트 미들코프 저/이종인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미국인 이야기> 3권은 전쟁 이후 헌법 제정 과정과 건국의 진통을 다루고 있다. 어느 나라던지 헌법의 제정은 치열한 논쟁과 타협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지만, 미국은 독립전쟁을 거치면서 얻은 미국인들의 자신감이 반영된 법적 원칙과 왕정이 아닌 공화정의 탄생을 야기한 정치가, 사상가들의 협업과 논쟁, 적정선의 타협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강력한 연방정부를 만들어야 한다는 연방정부파와, 중앙정부의 권력이 주 정부를 지배하게 될까 우려하는 반연방정부파가 대립했고, 나아가 선거 방식, 선거인의 정의 등을 놓고도 주 정부들은 치열한 이권 다툼을 벌였다.

많은 갈등 속에서도 결국에는 미국을 하나로 묶는 연방정부가 유지 되어야 한다고 타협한 끝에, 모두의 차선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헌법을 비준하고 건국에 이르게 된다.

미들코프는 건국 과정에서 쟁점이 된 노예제 폐지, 연방주의자와 공화주의자의 갈등, 각 주 정부 간의 갈등, 삼권 분립을 둘러싼 갈등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이런 갈등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미국 사회에 존재하는 갈등이다. 

 

아메리카 남부에 대한 영국의 기대가 결국 환상으로 남을 수 밖에 없었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영국은 남부에서 치러진 주요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영국군은 타지에서 굶주림이 만연했고, 넓은 대륙에서 정보는 틀리거나 늦었다. 

대륙군과 영국군의 대립에서 결국 영국군들이 점점 지쳐갔다. 

독립전쟁에서 당시 영국군보다 전쟁의 기술이나 전략, 체계 등이 없던 아메리카 군대 병사들을 전열에서 도망치지 않게 한 요인은 무엇이었는지, 보급과 병참, 의료행위가 어떻게 이루어졌고, 바다에서는 어떤 일어났는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전쟁은 위에서부터의 통제를 따라 체계적으로 진행되지 않았다. 징집병, 보급감, 의사, 사락선의 선원들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전쟁에 참여했고 다양한 방식으로 대륙군의 승리에 기여하게 만들었다. 

특히 300여 년전 전쟁을 치르면서 가장 문제된 것은 불결한 환경과 병으로부터 군대를 지켜내는 것이었다. 양측 다 군대를 유지하고 통솔함에 있어 이런 부분은 문제가 됐다. 

 

전쟁으로 파괴된 도시와 농촌에 살았던 민간인들은 군인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위대한 대의'를 추구했다. 특히 여성들은 외로움과 불안감을 견뎌내면서 전쟁에 나선 남성들을 대신해 가정의 일상을 유지해야 했다. 이러한 여성의 역할을 돌아봤다는 데서 이 책의 의의가 있다. 

영국군은 렉싱턴 전투 이후 보스턴의 건물들을 불태웠다. 영국 신문조차도 영국군의 잔인한 처사를 만평으로 그려 비판했다. 

아메리카에 있는 모든 사람은 전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전쟁과 아주 멀리 떨어진 지역에 사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평상시와 다른 삶을 살아갔지만 전쟁과 완전히 멀어져서 살 수는 없었다. 

 

1781년, 독립전쟁은 종국으로 치닫는다. 아메리카 인들은 요크타운에서 콘 월리스 장군이 이끄는 7,000여 명의 병력을 포위했고 결국 항복을 받아냈다. 이 전투를 마지막으로 미 합중국과 영국, 프랑스와 스페인은 본격적으로 강화회담에 나섰다. 

결국 1782년 11월 파리에서 주요 내용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고 '위대한 대의'에 의해 아메리카 인들은 세계 최강 중 하나였던 영국군으로부터 승리를 가져올 수 있었다. 

 

전쟁은 끝났지만 전후 조정 작업은 역시나 쉽지 않았다. 군사권, 영토권, 재정권 등을 두고 논쟁이 있었다. 혁명을 주도했던 지도자들은 샐운 합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여론 역시 정치체제 개혁을 지지하면서 헌법 제정이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다. 

1780년대는 중앙정부에 충분한 권한을 부여하려는 움직임과 중앙집권에 맞서 지방의 권력을 지키려는 움직임이 충돌한 시기였다. 연합 헌장의 작성과 주 헌법의 비준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에서 연합회의가 실효성 있는 중앙정부가 되는데 실패했다는 인식이었다. 무엇보다 아메리카인들은 전제적 권력이 다시 출현하는 것을 경계했고, 미합중국은 강력한 군주제로 둘러싸인 세계정세에서 홀로 분열된 국가로 남게 될 위험에 쳐했다. 하지만 이것은 오늘에 와서 보면 신의 한수였다. 

 

1787년 5월 필라델피아에서 헌법제정회의가 시작됐다. 회의에 참석한 대표자들은 치열한 토론을 거쳐 미국의 뼈대를 만들었다. 

본래 이 회의는 10년 전 합의됐던 연합규약을 개정할 목적으로 마련됐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새로운 형태의 연방정부가 필요하다는데 동의했고, 버지니아 대표단의 주도로 헌법 제정작업이 시작됐다. 

특히 정부의 형태를 둘러싼 참석자들의 신념이 자주 부딪혔기 때문에 합의에 이르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같은 해 9월 17일 55명의 대표 중 39명이 헌법에 서명하면서 작업이 마무리 될 수 있었다. 

헌법은 보수적이었지만 공화국의 미덕이 어느 정도 구현되어 있었다. 헌법은 특히 권력을 제한함으로써 사회와 도덕의 부패를 막고자 했고, 다수의 폭정이라는 새로운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였다. 

연방주의자들과 반연방주의자들의 대립 속에서 연방주의자들이 승리하면서 헌법이 비준됐다. 

혁명가들이 남긴 지혜에 부응하기 위해 미국인들은 계속해서 그들이 남긴 숙제를 풀어갈 것이다. 

 

*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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