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가 좋아서 가족 여행으로 두 번이나 다녀온 게 몇 년 전인데, 이 책은 로마 바티칸 궁의 서명의 방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라파엘로의 프레스코화 "아테네 학당"을 설명하며 거기에 그려진 철학자들의 사상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꼬박 하루 일정으로 바티칸 투어를 하면서 보았던 여러 예술 작품들 중 "아테네 학당"은 기억에 남는 작품이기도 하지만 워낙 잘 알려진 작품이기도 한데, 이 책에서 다시 그 때 기억을 상기하면서 작품 속에 묘사된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교황 율리오 2세가 브라만테에게는 새로운 성 베드로 대성당 건축을 맡기고, 미켈란젤로에게는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를 맡기고, 라파엘로에게는 자신의 집무실들에 프레스코화를 그리게 했다는 것, 특히 서명의 방은 교황이 교회의 가장 중요한 문서들에 대해서 서명하는 공간이었기에 라파엘로는 세상의 모든 지혜를 여기에 끌어오고 싶어 했다는 설명이 이어진다. "아테네 학당"에 표현된 공간은 성 베드로 대성당의 건축을 맡았던 브라만테의 설계를 가져왔고, 벽면 부근의 두 석상은 아폴론과 아테나를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아테네 학당"에 묘사된 인물들은 기원전 6세기부터 기원후 12세기까지 활약했던 철학자들인데, 이 책에서는 제일 먼저 피타고라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의 앞에 놓인 작은 칠판에는 피타고라스학파를 상징하는 그림들이 그려져 있는데, 조화로운 음들을 현의 길이의 정수비로 표현하고 있는 모양새다. 피타고라스는 세상의 조화로운 움직임을 파악하기 위해서 그 배후에 있는 수적 원리를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또한 피타고라스가 지혜에 대한 사랑이라는 뜻이 담긴 철학이라는 말을 만들어냈다고 하는데, 우리가 철학을 하는 이유는 우리가 지혜를 소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고 여기서 지혜에 대한 사랑이 생겨난다고 하는 설명이 눈길을 끌었다. 그 다음으로 원래 밑그림에는 없었는데 완성된 그림에서 등장하는 인물을 하나 소개하고 있는데, 턱을 괴고 무언가를 쓰면서 생각에 잠겨 있는 형태로 묘사된 철학자가 바로 은둔과 냉소로 일관했던 헤라클레이토스라고 한다. 그 당시 미켈란젤로를 모델로 묘사한 헤라클레이토스는 세상의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 그 변화 뒤에 있는 반대되는 힘들 사이의 균형과 불균형을 올바로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여기에 더하여 변화에 관련된 여러 힘이 서로 어떻게 작용하며 균형과 조화를 유지하고 있는지 자세히 살피는 일이 철학의 본성이고 의무라고 말한다. 헤라클레이토스 옆에서 책을 펼쳐 보이면서 무엇인가를 설명하려는 철학자는 파르메니데스라고 하는데, 변화나 생성이라는 건 모두 가짜이고 오직 영원히 움직이지 않는 존재, 그것 만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헤라클레이토스가 생성의 철학자라면 파르메니데스는 존재의 철학자라면서 말이다. 한편 진초록의 옷을 몸에 두르고 우락부락한 인상으로 여러 사람을 모아 놓고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 있는 철학자가 바로 소크라테스라고 한다. 이 그림에서 다른 이들에게 무엇인가를 직접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유일한 인물로 그에게 철학은 글이 아니라 말이었다고 한다. 또한 그림 중앙에 위치한 인물이 바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인데, 플라톤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땅을 향해 손바닥을 펴고 있다고 한다. 즉, 플라톤은 이상을 중시하며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플라톤의 경우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모델로 그렸다고 한다.
그 밖에도 겉옷을 벗어 놓고 계단에 비스듬히 걸터앉아 무엇인가 읽고 있는 인물이 바로 시노페의 디오게네스로 인위적인 것, 형식적인 것, 사회적인 것에 반대하고 인간의 본성적이고 자연적인 측면을 중요시한 철학자라고 한다. 밝은 푸른색 옷을 입고 통통한 얼굴에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는 사람은 에피쿠로스이며, 끝자리에서 어두운 표정으로 중앙 쪽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스토아주의라는 거대한 철학의 흐름을 처음으로 만들어낸 키티온의 제논이라고 한다. 한편 바닥에 놓인 작은 칠판에 컴퍼스를 가지고 무엇인가를 열심히 설명하는 사람은 기하학을 창시한 에우클레이데스로 브라만테를 모델로 묘사되었고, 어느 무리에도 속하지 않고 한 발짝 떨어져 서 있는 사람은 신비주의적 철학을 열어갔던 플로티노스로 신플라톤주의를 정립한 철학자였으며, 피타고라스 뒤에서 커다란 흰 옷을 입고 있는 여성은 유능한 수학자이자 신플라톤주의 철학자인 히파티아, 긴 수염을 길렀으며 별이 가득히 들어 있는 푸른색 둥근 천구를 손에 들고 있는 인물은 조로아스터, 피타고라스 뒤에서 머리에 터번을 두르고 기묘한 표정으로 서 있는 사람은 아랍의 철학자 이븐 루시드라고 언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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