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하라는 작가를 유명하게 만들어준 대표 책중에 하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인간의 기본적인 본능중에 하나인 타나토스, 바로 파괴본능에 대한 소설이다.
주인공 나는 자살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편하게 죽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자살도우미(?)다. 그렇다고 자살을 먼저 권하거나 살인을 저지르는 것은 아니다.아주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어느 누가 봐도 자살이라는 것을 의심할 수 없는 방법들을 소개해주고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도와준다. 또한 계약자가 파기를 원하면 언제든지 수수료만 받고 계약을 파기해준다. 하지만 실제로 자살이 성공하고 나면 나는 그 일들을 가지고 소설을 쓰며 여행을 한다. 어떤 죄책감도 자책도 없다. 단지 이제 조금 피곤할 뿐이다.
|
탄생도 그렇겠지만 죽음이라는 것은 인간의 영역이 아닌 신의 영역이다. 병이 들고 나이가 들어 죽든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든 그것은 인간의 선택에 의해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신의 영역에 감히 도전하는 방법이 있다. 바로 자살이다. 탄생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탄생의 저 반대쪽에 있는 죽음은 바로 자살이라는 행동으로 내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감히 신의 영역이라고 해도 틀린말은 아닐 것이다. 스스로가 자신에게 있어 신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꼭 죽음이라는 방법을 통해 가능한 것일까? 죽음이라는 방법을 택하지 않아도 이미 나는 나 자신에게 있어서는 스스로 신이다. 나의 육체는 오로지 나의 의지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자살이란 것은 그 행위중 가장 최전방에 있는 나의 의지가 아닐까?
사실 이 책은 8월중에 다 읽은 책인데 휴가니 출장이니 하다가 결국 지금에서야 이렇게 글로 끄적이고 있다. 책도 얇고 아주 작다. 금방 읽을 수 있는 책인데도 불구하고 한달이 채 지나지 않았지만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물론 읽고 바로 글을 쓰지 않아 그런 것도 있겠지만 기대하고 읽은 것과는 달리 나에게는 그리 흡입력있게 다가온 소설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로 전에 읽은 책 '상실의 시대'에서도 자살이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사뭇 다른 느낌이다. 하루키의 소설이 숲속에 잔잔히 내리는 보슬비같은 느낌이라면 김영하의 소설은 입안에 모래를 넣고 씹어먹는 느낌처럼 퍽석하다. 각각의 독립적이 소설로 두고 읽는다면 김영하의 소설도 나쁘진 않았겠지만 연이어 쓰는 서평에 비교 대상인 '상실의 시대'와는 꽤 많은 격차가 나는 듯하다. 그래서 이 책에게는 조금 미안한 느낌도 든다.
개인적으로 김영하의 소설은 단편이 많은 것이 아쉽지만 참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퀴즈쇼는 참으로 재미있게 읽은 책 중 하나이다.
그래도 어쩌겠나... 좋아하는 건 좋아하는 거고 책에 대한 나의 생각은 또 이러하니 어쩔 수 없지...
어찌됐든 죽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어 준 책이다.
주인공 내가 결국 자살도우미의 역할에 피곤을 느낄 날이 오길 바란다.
2010.08.?? (8월의 어느날...)
*김영하씨의 팬이라면...
나를 파괴할 권리가 궁금한 사람이라면... 읽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