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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도서]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저/정현종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간단명료하지만 어려운 책이다.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을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으며 읽었다.

많은 경험이 생긴 후 다시 읽으면 또 다른 깨달음을 얻겠지.

어제는 죽었고 오늘 난 모든 것을 새로 경험한다 다짐하고 하루를 시작했다.

똑같은 상황에 직면했을 때, 생각은 전과 똑같이 일어났다. 하지만 상황과 그 상황에 대한 생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경험을 토대로 생각을 확장하지 않았다. 처음 경험하는 일이라 가정하니 판단을 할 수 없었다. 그 자리에서 종결하고 나아갔다.

극복하려 애쓰지 않고 그냥 없애는 힘을 체감했다. 까먹고 계속 후회에 머물겠지만, 의식하고 경험치를 많이 쌓아야겠다.

"당신이 무언가를 찾을 때 사실 당신은 다만 진열장을 구경하고 있을 따름이다."

  "진리는 길을 갖고 있지 않으며, 바로 그 점이 진리의 아름다움이다."


"나무와 접촉하려면 나무에 당신 손을 대야 하는데, 말은 당신이 그것과 접촉하는 것을 돕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제약 위험을 다만 지적 개념으로만 안다면, 당신은 그것에 관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위험을 단순히 관념으로만 알 때 관념과 행동 사이에는 갈등이 있게 되며 그 갈등은 당신의 에너지를 앗아간다. 당신이 제약되어 있다는 사실과 그것의 위험을 즉각적으로 알 때에만, 낭떠러지임을 알았을 때처럼 당신은 행동하게 된다. 그래서 아는 것은 행동하는 것이다."

"공포는 확실한 것에서 불확실한 것으로의 이동이다."

"공포는 생각의 결과인가? 만일 그렇다면, 생각이란 언제나 옛것이기 때문에 공포도 언제나 옛것이다. 이미 말했듯이 새로운 생각이란 없다. 새롭다는 걸 알면, 그건 이미 옛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낡은 것의 되풀이일 뿐이다. 즉 미래 속으로 투사했던 생각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따라서 생각은 공포에 대한 책임이 있다. 그래서 당신은 스스로 그것을 알 수 있다. 당신이 어떤 것을 즉각적으로 대할 때 거기엔 아무런 공포도 없다."

"당신이 "나는 그걸 제어해야 해, 나는 그것을 없애야 해, 나는 그걸 이해해야 해"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그것으로부터 도피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이 공포와 동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그것의 일부임을 알 때 ― 즉 당신이 공포임을 알 때 ― 당신은 공포에 관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리하여 공포는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해본다는 것은 없으며 최선을 다한다는 것도 없다. 하거나 안 하거나 둘 중에 하나다."

"우리는 내적으로 가난해져야 한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아무런 요구나 욕망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은 있는 그대로의 당신이며, 당신은 비교함으로써 그 사실을 조각낸다."

"고독하려면 과거에 대한 모든 것들을 버려야만 한다. 당신이 고독할 때, 즉 어떤 가족에도 속해 있지 않고 어떤 나라에도, 문화에도, 특별한 대륙에도 속해 있지 않고 완전히 고독할 때, 국외자가 된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이렇게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천진스러우며, 이러한 천진성이 마음을 슬픔에서 해방시킨다."

"질투, 선망, 불안 같은 것과 더불어 살 때 당신은 그것에 익숙해져서는 안 되며 그것을 수락해서도 안 된다. 새로 심은 나무를 햇빛이나 폭풍으로부터 보호하듯 그것을 보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 당신은 그것을 비난하거나 변명하지 말고 보살펴야 한다. 그러면 당신은 그것을 사랑하기 시작한다. 그럴 때 당신은 질투하고 불안한 것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보살핌에 마음을 쓰는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 때, 죽음은 삶과 매우 흡사하다. 당신은 죽음 없이 살 수 없다. 이것은 지적 역설이 아니다. 하루하루 마치 그것이 새로운 아름다움인 양 완벽하게 살려면 어제의 모든 것은 죽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당신은 기계적으로 사는 것이고 기계적인 마음은 사람이 무엇인지 또는 자유가 무엇인지 결코 알 수 없다."

"죽는다는 것은 완전히 마음을 비우는 것을 뜻하며, 그것의 일상적인 소망, 쾌락, 괴로운 격정들을 비우는 것이다. 죽음은 새로 태어나는 것이요 변화이며, 그 안에서 생각은 전혀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된다. 왜냐하면 생각은 낡은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이 있을 때 거기엔 완전히 새로운 어떤 것이 있다.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는 곧 죽음이며, 그러면 당신은 살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무엇을 해야할 지 모르면 당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은가? 전혀 아무것도. 그러면 당신은 내적으로 완전히 침묵한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당신은 아는가? 그것은 당신이 찾지 않고, 원하지 않고,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거기엔 전혀 중심이 없다. 그러면 거기엔 사랑이 있다."

"앎의 상태 속에 여전히 "나는 알아야 해, 나는 앎을 연습해야 해"라고 말하는 실재가 있다면, 그것은 다시 또 하나의 이미지다."

"낡은 두뇌는 살아있는 삶의 엄청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생각은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거기에 없는 사물을 보기 때문에 뒤틀려 있는 것이다."

"생각이 어떻게 시작되는가를 알게 되면 생각을 통제할 필요가 없다."

"당신은 늘 자신의 제약에 따라 해석하게 된다."

"과거의 것들인 기억, 체험, 지식에서 끌어낸 생각이 없는 한, 사고자가 없는 한, 당신은 자기 자신 안에서 보고 깨달을 수 있다."

"우리는 언제나 짐을 지고 다닌다. 우리는 짐들에 대해 결코 무심해지지 못하며 그것을 잊어버리지 못한다. 오직 어떤 문제에 대해 완전한 주의를 기울이고 그것을 즉각적으로 해결할 때에만, 즉 그것을 다음날이나 다음 순간으로 옮겨 놓지 않을 때에만 고독이 있다. 그러면 우리는 붐비는 집 안에 있거나 버스 안에 있을 때조차도 고독을 지니게 된다. 그리고 그 고독은 새로운 마음, 천진한 마음을 암시한다."

"살아 있는 마음은 고요한 마음이며, 아무 중심도 없고 공간, 시간도 없는 마음이다. 그런 마음은 무한하고 유일한 진리이며, 유일한 실재인 것이다."

"긍정된 모든 것들은 그것 자체의 반대를 포함하고 있으며,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은 극복하고자 하는 그것을 강화시킨다. 당신이 진실 또는 실재를 체험하고 싶어할 때 그 요구는 바로 현재 '있는 것'에 대한 당신의 불만에서 나오는 것이며, 따라서 그 요구는 요구와 반대되는 것을 낳는다. 그리고 그 반대되는 것 속에는 '있었던 것'이 들어있다. 그래서 이 끊임없는 요구에서 벗어나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이중성의 회랑(回廊)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당신 자신을 아주 완전하게 앎으로써 마음이 더 이상 뭔가를 찾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명상은 생각의 통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생각이 통제될 때 그것은 마음속에 갈등을 키우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신이 생각의 구조와 근원을 이해할 때, 생각은 방해하지 않을 것이다. 생각의 구조에 대한 이해가 바로 명상이다."

"침묵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 그가 사랑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사랑이 무엇이며 침묵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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