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능력이 부족해서 소중했던 친구에게 큰 상처를 주고 멀어졌다.
그가 나에게 문제라고 했던 공감능력을 공부하기 위해 이 책을 구매했다.
이 책이 나왔을 때 정말 읽고 싶었지만 외면했다. 공감능력 부족이 문제라고, 근데 너는 말해줘도 모를 거고 그게 네 문제라고 말한 그 애의 말이 미친 듯이 떠올랐다. 스스로 상처를 드러내고 아파하며 마주하겠다는 다짐이 쉽게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 지가 1년이 다 돼간다. 나한테 지겨웠다. 왜 자꾸 스스로 두 번째 화살을 만드는지, 종결짓고 나아가도 왜 다시 돌아가는지.. 생각은 내가 통제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 생각을 싫어하고, 판단하고, 확장시키는 게 너무 고통스러웠다.
'이것은 다 경험이 부족해서, 내가 몰라서 이러는 거다. 뭐라도 하자'라고 마음먹었고 이 책을 읽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한결 자유롭다.
작가님께 진심을 다해 감사하다.
생각해보니 공감능력이라는 게 단순히 공감을 잘해주는 정도라고만 생각했지, 배워본 적이 없었다. 이 책을 통해 공감을 제대로 배웠다. 내가 공감하는 방법이 잘못됐다는 걸 자세히 알게 됐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나를 공감하지 못하며 살아왔다는 걸 정말 치명적으로 깨달았다. 지금까지 마음공부해왔던 것과 다른 차원으로..
그리고 내가 이렇게까지 멀어진 관계에 집착하고 고통스러워하게 된 원인을 알았다.
'네 마음은 어땠는데?'라는 문장을 읽고 몸이 떨리며 눈물이 미친 듯이 쏟아졌다. 학생 때 그 친구들 사이에서 겪었던 내 감정이 떠올랐다. 기억은 희미하지만 내가 느꼈던 감정은 명확했다. 나는 배제됐었다. 그래서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나도 모르게 애쓰고 있었던 거다. 나에 대해서도 알아줬으면 싶어서.. 아, 이게 진짜 비참하다는 거구나. 내가 내 이야기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구나. 제대로 공감 받아본 적이 없었구나. 그래서 내 감정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못했고, 자꾸 나보다 남의 감정을 우선으로 이해하려고 하다보니 공감 방법이 점점 어긋났던 거구나.
아니까 자유롭다. 상처 준 그 친구들에게 정말 미안하고 고맙다. 내가 내 상처를 마주하고 그릇이 더 커져 기쁘다.
내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잘 공감해주고 싶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공감하는 연습을 해야겠다.
내 감정이 옳다.
"자기 존재에 주목을 받은 이후부터가 제대로 된 내 삶의 시작이다. 거기서부터 건강한 일상이 시작된다."
"내가 잘못되지 않았다는 확인이 있어야 사람은 그 다음 발길을 어디로 옮길지 생각할 수 있다. 자기에 대해 안심해야 그 다음에 합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다.
네가 그럴 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말은 '너는 항상 옳다'는 말의 본뜻이다. 그것은 확실한 '내 편 인증'이다. 이것이 심리적 생명줄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에게 꼭 필요한 산소 공급이다."
"그런 마음이 들 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그러니 당신 마음은 옳다고. 다른 말은 모두 그 말 이후에 해야 마땅하다. 그게 제대로 된 순서다. 사람 마음을 대하는 예의이기도 하다."
"과도한 나 드러내기는 평소에 한 개별적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관심과 주목을 받지 못한 채 방치된 삶들이 많아서라고 생각한다."
"내 가치관이나 신념, 견해라는 것은 알고 보면 내 부모의 가치관이나 책에서 본 신념, 내 스승의 견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 감정은 오로지 '나'다. 그래서 감정이 소거된 존재는 나가 아니다. 희로애락이 차단된 삶이란 이미 나에게서 많이 멀어진 삶이다."
"우울은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높고 단단한 벽 앞에 섰을 때 인간이 느끼는 감정 반응이다. 인간의 삶은 죽음이라는 벽, 하루는 24시간뿐이라는 시간의 절대적 한계라는 벽 앞에 있다. 인간의 삶은 벽 그 자체다. 그런 점에서 모든 인간은 본질적으로 우울한 존재다.
그러므로 우울은 질병이 아닌 삶의 보편적 바탕색이다. 병이 아니라 삶 그 자체라는 말이다."
"우리가 살면서 겪는 모든 감정들은 삶의 나침반이다. 약으로 함부로 없앨 하찮은 것이 아니다. 약으로 무조건 눌러버리면 내 삶의 나침반과 등대도 함께 사라진다. 감정은 내 존재의 핵이다."
"내 상처의 내용보다 내 상처에 대한 내 태도와 느낌이 내 존재의 이야기다. 내 상처가 '나'가 아니라 내 상처에 대한 나의 느낌과 태도가 더 '나'라는 말이다."
"누군가 고통과 상처, 갈등을 이야기할 때는 '충고나 조언, 평가나 판단(충조평판)'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대화가 시작된다. 충조평판은 고통에 빠진 사람의 상황에서 고통은 소거하고 상황만 인식할 때 나오는 말이다. 고통 속 상황에서 고통을 소거하면 그 상황에 대한 팩트 대부분이 유실된다. 그건 이미 팩트가 아니다. 모르고 하는 말이 도움이 될 리 없다. 알지 못하는 사람이 안다고 확신하며 기어이 던지는 말은 비수일 뿐이다."
"벼랑 끝에 선 사람에게 나는 어떤 말을 해줘야 하는가. 결론적으로 해줄 말이 별로 필요치 않다."
"감정적 반응 그 자체가 공감은 아니다. 한 존재가 또다른 존재가 처한 상황과 상처에 대해 알고 이해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그 존재 자체에 대해 갖게 되는 통합적 정서와 사려 깊은 이해의 어울림이 공감이다. 그러므로 공감은 타고난 감각이나 능력이 아니다. 학습이 필요한 일이다."
"그런 자신을 쳐다보면서 또다른 자기가 어떤 느낌을 가질지 그게 궁금해요."
"누군가의 행동과 생각이 그의 마음과는 별개라는 사실만 알아도 마음껏 공감할 수 있다."
"공감은 상대를 공감 '해주는' 일이 아니다. 내 상처가 공감받는 것에 예민하지 못하면 누군가를 공감하는 일에 대한 감각을 유지하기 어렵다. 나와 너, 양방을 공감하지 못하면 어느 일방의 공감도 불가능한 것이 공감의 오묘한 팩트다. 그래서 공감은 너도 살리고 나도 구한다. 그래서 공감은 치유의 온전한 결정체다. 이 온전함의 토대는 오로지 자기 보호에 대한 감각에서 시작되고 유지되며 자기 보호는 자기 경계에 대한 민감성에서 시작된다."
"누군가의 고통에 함께하려는 사람은 동시에 자신에게도 무한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너도 있지만 나도 있다'는 자기에 대한 감각이 살아 있어야 공감자가 될 수 있다."
"남한테도 하지 않을 말을 왜 자기한테 함부로 해요. 자기한테 사과하셔야 해요!"
"자신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고 판단자의 입장에서 모질게 자신을 몰아붙이고 있던 그녀 자신의 공감 허들과 싸운 것이다."
"서로의 사랑에 대한 욕구를 지겨워하지 않고 비난하지도 않고 정면으로 마주한 채 기꺼이 공급하며 공급받는 일은, 우리 모두가 자기 삶의 동력을 마련하는 일이다. 미룰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일이다. 휘발유나 전기의 도움 없이 굴러가는 차는 없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옳은 말로 인해 도움을 받지 않는다. 자기모순을 안고 씨름하며 그것을 깨닫는 과정에서 이해와 공감을 받는 경험을 한 사람이 갖게 되는 여유와 너그러움, 공감력 그 자체가 스스로를 돕고 결국 자기를 구한다."
"공감은 똑같이 느끼는 상태가 아니라 상대가 가지는 감정이나 느낌이 그럴 수 있겠다고 기꺼이 수용되고 이해되는 상태다."
"타인을 공감하는 일보다 더 어려운 것은 자신을 공감하는 일이다. 자신이 공감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타인에게 공감하는 일은 감정 노동이든 아니든 공감하는 시늉이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자기를 공감하는 일은 시늉할 수 없다. 남들은 몰라도 자기를 속일 방법은 없다."
"누군가의 속마음을 들을 땐 충조평판을 하지 말아야 한다. 충조평판의 다른 말은 '바른말'이다. 바른말은 의외로 폭력적이다. 나는 욕설에 찔려 넘어진 사람보다 바른말에 찔려 쓰러진 사람을 과장해서 한 만 배쯤은 더 많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