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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왕, 경성을 만들다

[도서] 건축왕, 경성을 만들다

김경민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누가 이 사람을 아시나요, 정세권을. 요즘으로 치면 부동산 재벌이라고 할까,1920년대 경성에서도 대규모로 집을 지어 팔아 거부가 된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그가 정세권이다.

그가 개발한 곳이 어디인가 하면, 한옥촌으로 전통적인 가옥 분위기가 남아있는 그 북촌이었다는 것.

그런데 궁금한 것이 얼핏 생각하면 속된 말로 집장사에 불과한 사람인데 왜 제목에는 건축왕이라는 호칭을 붙여주었을까?.

 

정세권의 등장은 당시 경성의 주거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20년대 빈농출신들과 일본인들이 경성으로 이주하면서 10년사이 경성 인구는 50% 이상 급증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심각한 주택문제가 발생하게 된 것이었다. 

일제는 도시계획을 수립했고, 북촌에 우선적으로 일본인들의 거주지역을 확보하는데 앞장섰으니, 북촌 거주 조선인들이 다른 곳으로 이주해야 하는, 즉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이에 조선인들의 주택 수요층을 위한 개발업자가 절실해졌고, 이때 정세권을 비롯한 조선인 디벨로퍼들이 구세주처럼 등장한 것이었다.

 

이들은 주먹구구식이 아니었다. 부지와 자금확보 금융조건을 꼼꼼히 살피는 근대적 개념의 개발업자였다. 관급공사 진입이 막혀있고, 일본업자에 비해 금융조건 등에서 불리하다는  여러 불리한 조건을 감당해야 했던 조선개발업자들은  여러 채의 작은 한옥들이 밀집한 단지를 개발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 한옥은 기존 한옥과 전혀 다른 형태였고,작은 한옥을 대량 공급함으로써 북촌에 일본인들이 대거 유입하는 것을 막아냈을 뿐 더러 서민 계층의 주택 보급에 일조를 했다.

이때 조성된 북촌, 현재 이곳은 아기자기한 한옥촌으로 서울의 명소가 되었으니, 실로 탁월한 판단이었던 셈이다.

 

북촌 사업의 성공으로 자금을 확보한 정세권은 이후 왕십리등 개발에 나서며 일제의 개발정책과 맞섰다. 그런데 이 책에서 정세권에 집중하고 있는 이유는 그가 부동산 개발업자라는 점만이 아니었다. 더 놀라운 이유가 있었으니, 그가 물산장려운동이나 조선어학회 운동을 적극지원한 민족운동가였다는 점이었다.

조선물산장려회관을 본인 자금으로 건설하고 막대한 운영비까지 일정부분 분담했는데 그가 적극 지원하던 시기에는 물산장려운동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진 시기였다. 

 

그 뒤에는 조선어학회 회관을 건설하고 조선어학회 활동 자금을 후원했다. 이런 지원으로 그는 여러 수난을 감수해야만 했다. 일제의 요주의 인물이 되었고, 일제에게 재산의 상당부분을 빼앗기고 말았는데, 그런데도 심지어 사업이 기울어가는 와중에서 지원을 멈추지 않았고 끝내 조선어학회 사건당시 고문까지 당한 뒤에야 겨우 풀려날 수 있었다.

 

북촌개발이 크게 성공한 뒤 누릴 수 있는 안락함 그걸 포기하고, 정세권은 민족운동에 기꺼이 사재를 보탰던 것이다. 서슬 퍼런 일제의 감시하에서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선택이 아니었다.

일찍부터 명석한 머리로 자수성가한 것은 물론이고, 그는 경성 개발에, 주택 보급에 기여한 개발 전문가로서도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도 정세권은 독립운동에 뛰어드는 용기를 보여주었다.

 

이쯤해서 그렇다면 지금까지 왜 그의 이름이 이렇게 알려지지 않았던 것일까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나부터도 정세권은 처음 듣는 이름이었으니.

그는 일제 말에 사업이 기울면서 낙향했고, 그가 도움을 줬던 이광수나 안재홍, 이극로 등은 납북되거나 월북해 그와 활동을 함께 한 인물 중 그의 활동에 대해 적극적으로 언급해줄 인물들이 없었던 때문이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겨우 정세권에 대한 조명이 이루어지고 있음은 무척이나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조선을 지키려고 한, 일제에 맞선 인물에 대한 발견과 평가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작업인 것이다.

정세권은 대단한 사업감각과 걸출한 안목으로 경성에 뉴타운을 개발하는데 수완을 발휘했고, 전문적 소양과 더불어 굽히지 않는 민족의식을 겸비한 인물이었다. 건축왕이란 호칭에 어울리는 정신과 활동력의 소유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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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waterelf

    1. 그가 잊혀진 것에는 건축가들로부터 '집장사'나 하는 놈이라고 폄하된 점도, 구호 위주의 관념적 물산장려운동을 추진하던 사람들과의 갈등도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에 "실패한 자"에 대해 엄격한 사회 분위기도 한 몫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2. 정세권이 안 알려진 것에는 독립운동 참여 사실을 적극적으로 홍보하지 않은 탓도 있지 않을까요?
    을사오적 중 하나인 박제순의 손자 박승유 교수가 탈영을 해서 광복군에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친일행위에 대한 속죄라 생각해서 침묵을 지키는 바람에 친일파 자손이 잘 먹고 잘 사는 사례로 잘못 알려진 것처럼.

    2017.12.21 07:14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꽃들에게희망을

      아무래도 말년에 낙향해서 거기서 사망한 탓에 자료도 없고 지원했던 인물들도 사라지고 해서 그런 것 같아요. 거기에 뭐랄까 자금 지원보다는 일선에서 옥고를 치룬 분들이 더 눈에 띄었을 것도 같구요.

      2017.12.22 04:23
  • 파워블로그 오우케이

    건축가 정세권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가 몰랐던 우리 선조들의 모습을 재발견하게 되네요. 물산장려운동이나 조선어학회 사건에 연류되었지만 끝내 나라를 위해 헌신한 그의 삶이 지금에라도 묻히지 않고 되 살아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

    2017.12.21 08:07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꽃들에게희망을

      네.앞으로 이렇게 알려지지 않은 분들의 활약상이 더욱 많이 평가되겠지요.^^

      2017.12.22 04:26
  • 파워블로그 자스민

    오, 정말 정세권은 대단한 수완을 발휘하고 정신력과 활동력이 훌륭하시네요. 이렇게 책에 나와줘서 다행이군요. 처음 들었어요.

    2017.12.21 11:09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꽃들에게희망을

      네. 이렇게 전문 분야에서 직업으로 조선에 기여한 분들도 알고 싶어지는군요.^^

      2017.12.22 04:27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