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앱 푸시가 왔길래 확인하니 [하루키 잡문집]을 반값에 대여해준단다. 라디오 시리즈 에세이도 괜찮았기 때문에 구입해 목차를 보니 지난 세월 동안 쓴 글들을 작가 나름대로 선별하여 실었다 한다. 다른 사람에게 써 준 서문이나 잡지 기고문, 문학상 수상 소감문 같은 것들이다. 시대의 흐름이 느껴지는 글도 있지만 하루키 특유의 감성이 있다. 젊다. 에세이에선 이렇게 쉽고 재밌게 이야기하면서 왜 소설은...! 몇 작품 골라 읽었는데 하루키 하면 생각나는 음악과 문학 파트에 있는 글이었다. 오디오 매거진 기고문에선 오쿠다 히데오의 글을 떠올렸다. [시골에서 로큰롤]이라는 책인데 오쿠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음악 감상에 대한 글이다. 어른이 되어 가면서 좋아하게 된 밴드들을 소개하며 추억거리를 이야기한다. 거기서 작가는 컴포넌트 오디오에 대한 열정을 보이는데 하루키도 오디오에 대해 조금 언급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일로 맞춰진 오디오, 예전 재즈 카페할 때 사들인 것을 그대로 쓰고 있다고 한다.
이 책 서문에서 작가를 키우는 것은 원고료라고 하는 이야기에도 공감할 수 있었다. 어디서 본 건데 하루키는 자기 작업실에 9시에 출근해서 5시에 퇴근한다고 했다. 일본 작가들은 이런 경우가 꽤 있다고 들었다. 약간 할당량이 있고... 예를 들어 잡지 연재글도 출판사에 출근해서 꾸준히 쓰고 만화 같은 것도 마찬가지. 그렇게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꽤 된다고 한다. 요지는 매일 글을 쓴다는 거. 돈이라는 동기가 글을 뽑아내는 동력 중 하나긴 하다. 피츠제럴드도 그랬고 모차르트도 그랬고(?) 발자크도 그랬다. 돈이 있다고 작품이 좋지 않으냐 또 그런 건 아니다. 모네는 복권에 당첨된 덕분에 수련 연작을 그릴 수 있지 않았나. 아무튼 하루키가 시시콜콜 털어놓는 이야기들은 소소한 재미가 있다. [야성의 부름]을 쓴 잭 런던의 이야기도 나오는데, 런던이 러일전쟁 취재기자로 조선에 왔던 적이 있다. 그때 취재기가 [잭 런던의 조선 사람 엿보기]라고 출간되었다. 이 책 읽으면 엄청나게 짜증이 나는데 런던이 조선을 엄청 깔본다. 1904년이니 어쩔 순 없지. 그걸 알고는 있는데 하루키가 소개하는 내용이 묘하게 빈정이 상하는 거다.
조선인 관리가 런던에게 찾아와 정중히 요청하길 틀니를 좀 보여달라 했단다. 조선인들이 작가인 자기를 알아본 줄 알았는데 틀니라니! 하면서 30분 동안 런던은 연단에 올라가 틀니를 넣었다 뺐다하며 보여준다. 틀니를 처음 본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말이다. 런던은 그 일화에서 인간이 사력을 다해도 그 분야에서 인정받기는 좀처럼 힘들다고 생각했단다. 하루키는 그런 경험을 통해 교훈을 얻은게 대단하다며 자기 같았으면 턱도 아프고... 이하 생략. 이 부분은 읽기 나름이지만 꼬아서 보면 또 그렇게 봐진다. 못할 이야기도 아니고 없었던 일도 아닌데 기분이 상했다. 신문에 낸 글이라 하니 일본인 특유의 돌려까기 시전인가 싶기도.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 라고 하기엔 원래 그 사람들이 좀 그렇기에 하루키도 의심하게 된다. 일상 속 그 미묘한 까기를 모르면 반응하는 이만 피해의식을 가진 인간이 되는 것이다. 일본 좋아할 수 있다. 나는 일본사람들이 그렇게 친절하고 배려해주니까 참 좋더라! 그건 당신이 외부인일 때 얘기고, 그들 내부에 들어가 그 코드를 알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뭐 그랬다는 얘기다. 쓰다보니 읽었을 때보다 흥분하게 됐지만... (잭 런던 틀니 이야기를 원문으로 보려고 찾았는데 1904년 2월 15일 편지는 이렇게 밝히고 있다. "To Charmian Kittredge, ...I showed one old fellow my false teeth at midnight. He proceeded to rouse the house. Must have given him bad dreams for he crept in to me at three in the morning and woke me in order to have another look.", The letters of Jack London...박수치고 하는 건 좀 더 찾아봐야겠다.)
그렇게 치면 세상에 보고 즐길것이 무에 있을까. 일본 문화를 일부러 찾거나 구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피하지도 않는다. 내가 엄청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상당 부분 알고 있는 걸 보면.... 복잡하기만 하다. 어쨌든 하루키가 좋아하는 카버와 피츠제럴드에 대한 글도 두 개씩 실려있고 짧게나마 가즈오 이시구로에게 준 서문도 있다. 이시구로 분석서에 실린 글이다. 이 가즈오 이시구로라는 작가도 일본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자랐고 자기 스스로 영국인이라 생각한다지만 그 뿌리에서 아주 떨어지진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노벨 문학상 소감에서도 그리 밝혔지 않나.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를 보면 눈초리가 고와지진 않는다. 최근 읽은 [북으로 가는 좁은 길]에서도 마무리를 하이쿠로 하는데 그것도 솔직히 좋게 보이진 않았다. 예술엔 색이 없고 죄가 없다지만 그 피 묻은 칼로 제련한 5, 7, 5 하이쿠가 한 세계의 문을 닫다니 말이다. 주인공의 인생과, 그 인생을 들여다 본 작품 세계의 문. 이런 나 자신이 편협하다 싶다가도 어쩔 수 없단 생각이 들었다. 예술과 정치, 역사와 우리 삶을 자르듯 구분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일본인이 쓴 글을 읽으면서 자꾸 이런 생각을 하는 건 결국 자위 아닌가? 안 읽으면 이런 생각도 안 할텐데, 그런 생각이 드는 한편 알아야, 더 많이 알려고 해야 몰랐던 것들이 눈에 보이지 않나... 그런 생각도 한다. 어쩐지 비겁한 변명 처럼 느껴지지만... 아무튼 그렇다. 일본에 대해 비판적이면서 읽고 있는 책들은 그 나라 사람들이 쓴 글들이라 좀 길게 써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