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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여]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eBook] [대여]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무라카미 하루키 저/이영미 역

내용 평점 3점

구성 평점 4점

일어 번역을 보면 당최 뭔 말인지 아리송하면서도 또 그런대로 느낌이 올 때가 있다. "이 드라이 마티니는 그야말로 극북의 드라이군요." 어떤가? 좋은 예시이지 않은가. 이 문장은 하루키 잡문집, 안자이 미즈마루 책 서문에 등장한다. 극북은 '극한에 가까운'이라고 풀어쓸 수 있는데 영어로는 익스트림 정도가 되려나. '북쪽의 끝'은 아니다. 그러면 북극의 마티니가 되니까. 지나친 소유격이 일본식 표현 특징이라 할 수 있는데, 정말 오만 데다 '~의'를 쓴다. 우리말 표현은 소유격을 생략하기 때문에 '학교의 알림입니다'라고 쓸 필요 없이 '학교 알림입니다'라고 하면 된다. 그러고보면 일상에서 주고받는 표현에 (필요 없는) 소유격을 넣을 때가 많다. 이게 꼭 일본식 표현이라기보다는 번역문, 번역체에 익숙해진 이유도 있을 것이다. 저 극북의 드라이 문장을 우리말로는 어떻게 고칠까 생각해봤다. 자꾸 비속어 생각만 난다. 이 드라이 마티니는 ( ) 드라이하군요. 솔직히 영어로 더 잘 어울리는 건 extream 보다는 damn 인 듯... 어쨌든 일본인이 쓴 글은 그네들 스타일대로 읽어야 느낌이 있다. 글맛이 말이다.

아침에 앱 푸시가 왔길래 확인하니 [하루키 잡문집]을 반값에 대여해준단다. 라디오 시리즈 에세이도 괜찮았기 때문에 구입해 목차를 보니 지난 세월 동안 쓴 글들을 작가 나름대로 선별하여 실었다 한다. 다른 사람에게 써 준 서문이나 잡지 기고문, 문학상 수상 소감문 같은 것들이다. 시대의 흐름이 느껴지는 글도 있지만 하루키 특유의 감성이 있다. 젊다. 에세이에선 이렇게 쉽고 재밌게 이야기하면서 왜 소설은...! 몇 작품 골라 읽었는데 하루키 하면 생각나는 음악과 문학 파트에 있는 글이었다. 오디오 매거진 기고문에선 오쿠다 히데오의 글을 떠올렸다. [시골에서 로큰롤]이라는 책인데 오쿠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음악 감상에 대한 글이다. 어른이 되어 가면서 좋아하게 된 밴드들을 소개하며 추억거리를 이야기한다. 거기서 작가는 컴포넌트 오디오에 대한 열정을 보이는데 하루키도 오디오에 대해 조금 언급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일로 맞춰진 오디오, 예전 재즈 카페할 때 사들인 것을 그대로 쓰고 있다고 한다.

이 책 서문에서 작가를 키우는 것은 원고료라고 하는 이야기에도 공감할 수 있었다. 어디서 본 건데 하루키는 자기 작업실에 9시에 출근해서 5시에 퇴근한다고 했다. 일본 작가들은 이런 경우가 꽤 있다고 들었다. 약간 할당량이 있고... 예를 들어 잡지 연재글도 출판사에 출근해서 꾸준히 쓰고 만화 같은 것도 마찬가지. 그렇게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꽤 된다고 한다. 요지는 매일 글을 쓴다는 거. 돈이라는 동기가 글을 뽑아내는 동력 중 하나긴 하다. 피츠제럴드도 그랬고 모차르트도 그랬고(?) 발자크도 그랬다. 돈이 있다고 작품이 좋지 않으냐 또 그런 건 아니다. 모네는 복권에 당첨된 덕분에 수련 연작을 그릴 수 있지 않았나. 아무튼 하루키가 시시콜콜 털어놓는 이야기들은 소소한 재미가 있다. [야성의 부름]을 쓴 잭 런던의 이야기도 나오는데, 런던이 러일전쟁 취재기자로 조선에 왔던 적이 있다. 그때 취재기가 [잭 런던의 조선 사람 엿보기]라고 출간되었다. 이 책 읽으면 엄청나게 짜증이 나는데 런던이 조선을 엄청 깔본다. 1904년이니 어쩔 순 없지. 그걸 알고는 있는데 하루키가 소개하는 내용이 묘하게 빈정이 상하는 거다.

조선인 관리가 런던에게 찾아와 정중히 요청하길 틀니를 좀 보여달라 했단다. 조선인들이 작가인 자기를 알아본 줄 알았는데 틀니라니! 하면서 30분 동안 런던은 연단에 올라가 틀니를 넣었다 뺐다하며 보여준다. 틀니를 처음 본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말이다. 런던은 그 일화에서 인간이 사력을 다해도 그 분야에서 인정받기는 좀처럼 힘들다고 생각했단다. 하루키는 그런 경험을 통해 교훈을 얻은게 대단하다며 자기 같았으면 턱도 아프고... 이하 생략. 이 부분은 읽기 나름이지만 꼬아서 보면 또 그렇게 봐진다. 못할 이야기도 아니고 없었던 일도 아닌데 기분이 상했다. 신문에 낸 글이라 하니 일본인 특유의 돌려까기 시전인가 싶기도.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 라고 하기엔 원래 그 사람들이 좀 그렇기에 하루키도 의심하게 된다. 일상 속 그 미묘한 까기를 모르면 반응하는 이만 피해의식을 가진 인간이 되는 것이다. 일본 좋아할 수 있다. 나는 일본사람들이 그렇게 친절하고 배려해주니까 참 좋더라! 그건 당신이 외부인일 때 얘기고, 그들 내부에 들어가 그 코드를 알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뭐 그랬다는 얘기다. 쓰다보니 읽었을 때보다 흥분하게 됐지만... (잭 런던 틀니 이야기를 원문으로 보려고 찾았는데 1904년 2월 15일 편지는 이렇게 밝히고 있다. "To Charmian Kittredge, ...I showed one old fellow my false teeth at midnight. He proceeded to rouse the house. Must have given him bad dreams for he crept in to me at three in the morning and woke me in order to have another look.", The letters of Jack London...박수치고 하는 건 좀 더 찾아봐야겠다.)

일본인이 쓴 글을 읽을 땐 마음이 복잡한데 나도 모르게 그들 문화에 익숙해지는 기분이 들어서다.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라는 얘기도 있지만 여기에 딱 맞는 표현은 아닌 게, 누가 내게 일본을 싫어하라 시킨 것도 아니고 그 글을 읽고 비판해보라 숙제를 준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내가 읽은 거다. 내가 그 글을 읽겠다고 선택한 것이다. 하루키 글을 읽는다고, 일본인이 쓴 철학개론서나 인문서를 읽는다고 뭐가 달라져? 싶기도 하지만... 일본인이 쓴 글에는 일본 문화나 의식이 배어 있기 때문에 염려스럽다. 하루키는 일문학 범주를 넘어선 작가이고 전공투 짬바(...) 덕에 좀 다르다 해도 그 사람 국적이 일본인 것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일본 피아니스트가 쓴 글을 읽으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음악과 예술에는 경계가 없다해도 또 그 글을 통해 일본 특유의 분석 덕에 양질의 정보를 얻는다 해도 왠지모를 죄책감이 생긴다. 내가 2차, 3차로 가공된 일본문화를 즐겼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꼭 재밌게 읽어야 즐기는 것인가? 살을 버리고 뼈를 취하겠다는 결단이 필요치 않다...

그렇게 치면 세상에 보고 즐길것이 무에 있을까. 일본 문화를 일부러 찾거나 구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피하지도 않는다. 내가 엄청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상당 부분 알고 있는 걸 보면.... 복잡하기만 하다. 어쨌든 하루키가 좋아하는 카버와 피츠제럴드에 대한 글도 두 개씩 실려있고 짧게나마 가즈오 이시구로에게 준 서문도 있다. 이시구로 분석서에 실린 글이다. 이 가즈오 이시구로라는 작가도 일본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자랐고 자기 스스로 영국인이라 생각한다지만 그 뿌리에서 아주 떨어지진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노벨 문학상 소감에서도 그리 밝혔지 않나.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를 보면 눈초리가 고와지진 않는다. 최근 읽은 [북으로 가는 좁은 길]에서도 마무리를 하이쿠로 하는데 그것도 솔직히 좋게 보이진 않았다. 예술엔 색이 없고 죄가 없다지만 그 피 묻은 칼로 제련한 5, 7, 5 하이쿠가 한 세계의 문을 닫다니 말이다. 주인공의 인생과, 그 인생을 들여다 본 작품 세계의 문. 이런 나 자신이 편협하다 싶다가도 어쩔 수 없단 생각이 들었다. 예술과 정치, 역사와 우리 삶을 자르듯 구분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일본인이 쓴 글을 읽으면서 자꾸 이런 생각을 하는 건 결국 자위 아닌가? 안 읽으면 이런 생각도 안 할텐데, 그런 생각이 드는 한편 알아야, 더 많이 알려고 해야 몰랐던 것들이 눈에 보이지 않나... 그런 생각도 한다. 어쩐지 비겁한 변명 처럼 느껴지지만... 아무튼 그렇다. 일본에 대해 비판적이면서 읽고 있는 책들은 그 나라 사람들이 쓴 글들이라 좀 길게 써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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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언강이숨트는새벽

    그 나라 만의 뉘앙스를 알지 못하면 겉만 읽고 그렇구나! 하게 된다는 이야기 , 그건 문학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된다는 엘리엇님 말씀 ..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 좋은 리뷰 넘 잘 읽었어요 . 날카롭고 , 생각있는 글이라 정말 좋아요!! ^^

    2018.03.21 14:18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엘리엇

      그래도 하루키 얘기는 너무 멀리 나간 거같지만요....ㅋㅋㅋ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벽님^^

      2018.03.21 17:19
  • 파워블로그 CircleC

    적절한 타이밍의 글^^
    ~의를 쓸 때 더 재밌는 문장이 되기도 해서 자주 쓰게 돼요. 그게 습관 되어 문제이기도 하고ㅎ 한국어 은/는/이/가 남발하는 거랑 비슷하기도 하죠.
    일본 유학할 기회가 있었는데 괜한 반발심으로 안간 거 두고두고 후회하는 1인ㅎ; 나도 시대의 피해자! ㅎㅎ

    2018.03.21 14:25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엘리엇

      그때 다녀오셨으면 또 많은 것이 달라졌을텐데 아쉽군요... 어쨌든 선진국이니까요. 요즘은 그런 것 같지도 않지만...ㅋㅋㅋ

      2018.03.21 17:21
  • 파워블로그 게스

    오 요즘 꽤나 자주 들락거렸는데 왜 친구 새글에 안보였나 모르겠네요. 밑에도 멏개나 올리셨는데.. 소식없어 궁금해서 와봤는데 아 어쩜 찰떡같이 내 마음을 써주신 거 같네요. 게다가 저도 이 책 샀어요. 지금 막.. 유발하라리랑 리처드 도킨스랑 같이 반값 더하가 쿠폰 준다길래 집에 종이책이 두권씩이나 되는데 이북으로 또사고 싶어서 알짱거리다가 그냥 싼거 이책으로 샀어요. 일본 소설 밤은 짧아 읽었는데 그거 읽으면서 받은 느낌 그대로에요. 일본스러운 표현 그게 또 묘하게 어떤건 아 진짜 짜증나 왜 번역을 이따구로 번역스럽게 했담 싶은데 어떤땐 은근히 그 알본적 정서를 즐기게 되기고 하고...

    2018.03.21 21:37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엘리엇

      어떨 때는 문장을 너무 꼬니까 답답하기도 한데.. 그 최고봉이 냉정과 열정 사이 쓴 에쿠니 가오리인 듯해요. 왜 2천년대 전후로 한창 일본소설 붐이 불었잖아요. 요시모토 바나나 이후로 넘어가면서 서점 가면 일본 소설들만 잔뜩 있던 걸로 기억해요. 특유의 치명한 분위기로 밀어붙였죠... 그땐 또 그 감성이 맞았던 것 같기도 하고요 ㅋㅋㅋ

      2018.03.22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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