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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최전선

[eBook] 글쓰기의 최전선

은유 저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글쓰기의 최전선>을 읽기 전, 그리고 읽는 내내 나는,

두 달 전에 읽은 <쓰기의 말들>에서 느낀 글쓰기에 대한 작가의 진심과

경건하기까지한 윤리적인 태도에 대해 그 신념이 무엇일까 궁금하였다.

지난 달 읽은 <출판하는 마음>에서는 책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그렇게까지 성실하게 귀 기울이는 인터뷰어로서의 태도

의 근원이 무엇일까라는 궁금함이 더해졌다.

답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글쓰기의 최전선>을 읽었다.

출간된 책을 역행하여 읽었기 때문에 갖게 된 질문일지도 모르겠지만

바로 그 점이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지금의 은유적 쓰기에 대한 반추와 기록이

바로 <글쓰기의 최전선>에 낱낱이 은유의 목소리로 말해지고

은유의 언어로 쓰여있었다.

이미 우리에게 벌어지고 있는 에세이의 사회적 파장

의 힘이 무엇일까.

그것은 어쩌면 은유가 강조하는 '르포와 인터뷰'로의 확장일지도 모르겠다.

모래알처럼 부서지는 도시의 공동체를 사는 우리에게

삶에 밀착한 르포와 인터뷰가 주는 경험의 진실,

그 구체는 힘이 세다.

 

글 쓰는 일이 작가나 전문가에게 주어지는 소수의 권력이 아니라 자기 삶을 돌아보고 사람답게 살려는 사람이 선택하는 최소한의 권리이길 바란다. (44쪽)

 

피해자의 언어가 필요하다. 자기 언어가 없으면 삶의 지분도 줄어든다. (68쪽)

 

비문학에도 순문학에도 온전히 마음 붙이지 못하던 참인데 르포르타주에서 문학의 가능성을 보았다. 르포르타주는 기록이라는 뜻의 불어다. 구체적인 현장에서 구체적인 사람과 대면하며 쓰는 기록 문학을 뜻한다. 사실에 근거한 취재에 배경지식과 비판의식을 더한 글이다. 그런 점에서 르포르타주는 글쓰기의 한 장르가 아니라 글쓰기의 기본 준칙이자 윤리에 가깝게 느껴졌다. 현장, 사람, 기록. 이것은 늘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세 가지가 아닌가. (180쪽)

 

우리 사회는 좋은 삶에 대한 기준이 편협하다. 화원에서 파는 꽃과 동물도감에 나오는 고양이의 사진은 그 종류가 아무리 많아도 딱 그만큼이다. 척도에 의해 선별되는 것은 그보다 훨씬 많은 것들을 보이지도 못하게 한다. 삶도 그와 같다. 가령 학벌, 돈, 직업, 외모 등 극히 물질적인 것을 척도로 삼아 그것이 충족될 때 성공한 삶이라고 말하고 미달할 땐 무시한다. 무시는 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없는 듯이 취급한다. 이 가려진 부분, 삶의 진실을 드러내는 게 글 쓰는 이의 역할이다.  (184-1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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