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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라는 세계

[도서] 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성인이 되었는데도 내 안에 '어린이라는 세계'가 여전히 고향처럼, 낯선 여행지처럼 존재한다는 것을 늘 느낀다. 나이 들고 연로한 부모와의 갈등에서도 가장 먼저 반응하는 것은 내 마음 속 '어린이라는 세계'이다. 성인이 되어 수십년을 사는데도 많은 부분을 유년시절에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 어린이를 존중하고 싶다. 존중하여 하나의 소중한 인격체라는 것을 나 스스로 느끼고 싶다. 그 애틋하고 소중한 마음으로 내 아이들, 내 주변 어린이의 세계를 잘 만나고 싶다.


 

이런 마음으로 나는 서평단을 신청하였다. 유년기, 어린 시절을 지나 청소년기를 거쳐 성인이 되어가며 한 때의 나는 어린이를 크게 중요한 인연으로 만날 일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어린이보다도 많은 성인들, 어른을 만나고 훌륭한 인품, 인격적으로 성숙한 이들과 관계 맺으며 장차 나또한 좋은 어른, 좋은 사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의아하게도 자주, 아니, 때때로 매번 나와 상대방은 인격적으로 미성숙하였으며 인품이 크게 특별하지 않았다. 특별할 것 같은 우리는 많은 순간에 평범한 사람이었고 좋은 사람, 좋은 어른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여야 했다. 기분이 나빠질 때 마다 느껴지는 내 안의 유치함, 상대방의 어린애같은 행동은 실망스러워서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고 어디에서부터 교정해야만 하는 걸까, 답답하였다. '어린애 같은'이라는 수식어는 어느새 부족하고 미성숙하고 완전하지 않은 것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어린이는 내게 그런 존재였다.


 

우리가 사랑하는 어린이의 잠자리를 살피고, 다정하게 이불을 덮어주고, 그림책을 읽어주고, 잘 자라고 인사하는 것은 어쩌면 그것만이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전부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어린 사람이라도 악몽은 자기 힘으로 이겨내야 한다. 그 사실을 생각하면 모든 어린이가 안쓰럽기도 하고, 새삼 대단해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또 우리는 알고 있다. 이런 무서운 것들이 어린이의 어떤 면을 자라게 한다는 것을. 무서운 것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조심하고, 무서운 것을 마주하면서 용기를 키우고, 무서운 것을 이겨 내면서 새로운 자신이 된다는 것을. 그런 식의 성장은 우리가 어른이 된 뒤에도 계속된다. 그러니 어른들이 어린이에게 해 줄 일은 무서운 대상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마주할 힘을 키워 주는 것 아닐까.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을 응원하고, 부드러운 손길로 다독이면서.(무서운일 p.53)

 

그런 생각을 해왔던 나도 어느순간 양육자가 되어 아이를 만났다. 육아책을 읽고 아동발달 책을 읽으며 어떻게 아이의 부모로서 말하고 행동해야하는지 매 순간 고민스러웠다. 아이들의 잠자리를 봐주면서 숱한 밤 함께 눕고 이불을 덮어주며 이것밖에 해주지 못하는 내가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가 사랑하는 어린이의 잠자리를 살피고, 다정하게 이불을 덮어주고, 그림책을 읽어주고, 잘 자라고 인사하는 것은 어쩌면 그것만이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전부이기 때문'이라니. 이 대목에서 무얼까, 잠드는 아이의 이불을 덮어주는 손길에서 이렇게 깊은 의미를 읽어내는 저자의 사려깊음에 나는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마치, 어른으로서 책임져야하는 하루를 마감하고(아이들의 이불을 덮어주고 나서야) 고단하게 나 스스로의 이불을 덮어왔던 어제까지의 밤과 오늘부터의 밤이, 다른 밤이 된 듯한 기분이랄까.


모든 부모가 그렇듯 나도 좋은 어른이 되어 좋은 아이들로 키우고 싶은 결의같은 것이 있었다. 대개는 육아를 하며 아이가 학령기가 되기 전까지 적어도 영유아 시기에 아이가 보이는 반짝이는 모습과 행동에 대한 경험을 주변 사람들에게 스스럼없이 나누고 함께 기뻐했다. 그런데 학령기를 앞두고부터는 어느순간, 아이와 나눈 마음, 깊이 전해진 말이라든가, 아이와의 질 높은 나눔보다는 아이의 인지발달과 학습에 대한 경험, 비교로 아이의 성장을 주시하고 감시하는 입장으로 자꾸만 변하는 마음을 다잡기가 힘이 들었다. 이런 마음의 바탕에는 (내가 어릴때에 비해) 좋은 환경과 조건에서 당연히 부족하지 않게 잘 성장해야한다는 보이지 않는 부모로서의 강요가 있었을 것이다.

 

지난 봄부터 어린이들은 어린이집에도 학교에도 가지 못했다. 당연히 마음껏 놀지도 못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에 가장 현신적으로 협조한 집단이다. 물론 어린이는 실내에서도 어떻게든 놀 거리를 찾아낸다. 그렇지만 어디든 나가서 잠깐이라도 뛰놀고 와야 칩거 생활을 견딜 수 있는 게 어린이다. 그 점을 생각하면 어린이가 사회를 위해 무엇을 희생했는지, 어른들도 알아야 한다. (놀이 아니고 놀기 p.62)

 

그래서 코로나때문에라도 아이의 면역력과 안전을 위해 노력했다. 위험한 밖보다는 집 안이 더 깨끗하고 안전하고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했다. 아이 보다도 돌봄을 책임져야 하는 성인이 더 힘든 상황이라고만 여겼다. 풍요로운 시대에 사는 아이들이 무엇을 잃었는지에 대한 성찰과 배려를 미처 하지 못하였다는 것을 아차차, 이제서야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어쩌면 잘 통제하기 위한 부모의 (나의) 편의를 우선으로 삼았기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린이의 입장에서 올 한 해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 계기였다.


 

학년이나 성별 같은 것을 지우고 보면 어린이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는 느낌이다. 하나하나의 정보는 색다른 점이 없지만, 그런 것이 모이면 어린이가 생생하게 그려진다. 누구랑 비교할 필요가 없는, 어린이의 고유한 모습이다. (무수히 많은 방식으로 p.87)

 

그래서 이런 구절은 흔들리는 양육자에게 좋은 조언이 된다. 어린이에 대한 선입견, 편견을 지워주는 이 제안은 소중한 편지 같아서 자꾸만 펴보고 싶다.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는 내내 어린이를 만난 일화들, 인상적인 만남, 좋은 대화, 등을 우리가 일상에서 자꾸 나누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였다. 어린이의 목소리를 퍼뜨리다 보면 가족과 어떻게 잘 대화할 수 있는지 알게 되고 어린이의 목소리를 퍼뜨리다 보면 어린이와 재밌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방법을 체득하게 될 것이다. 어린이의 목소리를 퍼뜨리다 보면 그 누구와도 즐겁게 대화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노인과 약자와 그리고 모든 이들을 존중하며 만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우리는 모두 어린이 시절의 이야기를 한다. 나 어릴때는 말이야, 내가 어렸을 때 말이야, 나때는 말이야, 심지어 아이조차 제가 옛날에요, 저 어렸을때요, 라고 지난 시절의 경험을 말한다. 우리 모두 이렇게 어린 시절의 옛날 이야기를 품고 있다. 나, 어린 나 스스로가 주인공인, 어린 아이가 주인공인 옛날 이야기를. 어린 주인공인 나는 엄마없이 혼자 잠들기도 하고 일하러 간 엄마를 기다리기도 한다. 그 어린이는 동물도 만나고 사람도 만나고 자연도 만난다. 그 어린이가 어른이 된 내 마음 속에 옛날 이야기가 되어 산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어린이를 더 잘 알아야 한다. 어린 나를 존중하듯 어린이를 존중해야 한다.

많은 부분에 플래그를 붙였지만, 가장 좋았던 부분을 길게 인용하고 싶다. 어쩌면 이 말은 내가 가장 듣고 싶었고 내가 내 아이들에게도 가장 해주고 싶었으나 아직 못해본 말이기도 하다.평생 듣고 싶었던 이 말을 읽게 되어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이상적인 어린 시절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내가 갖지 못했다는 것만은 알았다. 그런 생각을 할때면 내 인생이 일찌감치 모양 잡힌 것 같아서 도무지 힘이 나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떨치게 된 건 한 어린이 덕분이다. 어머니는 아이가 신발을 갈아 신거나 급식을 먹을 때 느린 편이라 선생님이나 친구들한테 싫은 소리를 자주 듣는다고 하셨다. 그 뒤로 나는 그 어린이뿐 아니라 다른 어린이들에게도 자주 “천천히 해”라고 말하게 됐다. 생각해보니 나도 어렸을 때 빨리 하라는 말만 들은 것 같았다. 누가 천천히 하라고 했으면 조금은 안심이 됐을 텐데. 그런데 내가 어떻게 이런 기특한 생각을 해냈을까?

사실 “천천히 해”는 내가 아는 가장 ‘맺힌 데 없는’ 선배가 자주 하는 말이다. 퇴근길에 비가 오면 그 선배는 사무실에서 지하철역까지 꼭 후배들을 차로 데려다주었는데, 우리가 차에 탈 때도 내릴 때도 늘 그렇게 말했다. “천천히 해.” 나는 그 말이 좋았다. 덕분에 차를 얻어 타는 게 미안하지 않고 고마웠다. 한편으로는 선배는 그런 말을 듣고 자라서 좋은 사람이 되었나 보구나 싶었다. 나중에 내가 “천천히 해”라고 말하고 보니 나도 그런 말을 들어 본 사람이었다. 꼭 인생 초기에 자리 잡힌 대로 살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나는 이제 어린이에게 하는 말을 나에게도 해 준다. 반대로 어린이에게 하지 않을 말은 스스로에게도 하지 않는다. 이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은 그래야 나의 말에 조금이라도 힘이 생길 것 같아서다. 일의 결과가 생각만큼 좋지 않을 때 괜찮다고, 과정에서 얻은 것이 많다고 나를 달랜다. 뭔가를 이루었을 때는 마음껏 축하하고 격려한다. 반성과 자책을 구분하려고, 남과 나를 비교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어린이 덕분에 나는 나를 조금 더 잘 돌보게 되었다. (길잡이 p.252-253)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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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무 좋네요

    2021.01.05 16:29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무학

    "천천히 해" 저도 다짐을.... 글 잘 읽었습니다. 우수상 축하 합니다.

    2021.01.08 13:51 댓글쓰기
  • 예스블로그 예스블로그

    202호님~ 좋은 리뷰 감사 드립니다! 건강하시고 따뜻한 겨울 나날 보내시길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2021.01.08 13:59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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