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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 빅터 뎁스(Eugene Victor Debs)에 대한 이야기는 커트 보네거트의 소설에서 처음 들어봤다.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무슨 이유로 노동자들을 선동하여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였는가라는 오만하고 무식한 판사의 질문에 대해 "예수님의 산상수훈을 실천하기 위해서"라는 식의 대답을 했다는 이야기가, 보네거트의 어떤 소설에 나온다. 참 통쾌하면서도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장면이었다. 그 다음에는 하워드 진의 미국 민중사에서도 유진 뎁스가 언급된 부분이 있었다고 기억된다. 

유진 뎁스는 프랑스의 장 죠레스와 함께, 잘 알지는 못하지만 간략한 인생편력을 듣고서 근거 모를 매력을 느끼는 인물로 수십년간 남아있었다. 그러다가 처음으로 그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말년 약 10여년이 채 안되는 기간에 대한 이야기이긴 하지만(1차 세계대전 전후), 저자에 의하면 그것이 미국 사회주의/민주주의의 역사에서 차지하는 상징적 의미와 비중은 매우 크다고 해야겠다. 

전쟁을 반대하다 검거되어 재판을 받고, 감옥에 가고, 전국적인 구명운동이 일어나고, 전쟁 이후 그를 감옥으로 보낸 우드로 윌슨의 소위 리버럴 민주당은 대선에서 패배하고, 공화당 대통령으로부터 사면을 받고 나와 사회당의 재건을 위해 노력하다가 사망한 인물. 그 이전에도 사회당의 대통령후보로 4번 출마했으며, 수감중에 5번째 출마를 한 인물... 

얘기는 이정도로 하고, 유럽에서 로자 룩셈부르크나 장 죠레스의 반전 활동에 대한 단편적인 이야기에 비해, 미국에서는 오히려 사회주의 그룹의 가장 대표적인 인물에 의해 대대적인 반전활동이 있었단 사실에 살짝 참신함을 느꼈다. 지정학적인 이유가 유럽과 미국은 다르긴 했으나, 어쨌건 유럽보다 일면 훨씬 당당하게 반전활동을 했었다는 사실이 인상적이더라. 

우드로 윌슨이란 인물에 대해서도 곁가지로 좀 더 이해하게 된 계기였다. 뎁스와 동료들과는 달리 당연 미국에서도 전쟁상황에서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며 참전에 동의한 사회주의 세력도 꽤 된다는 사실도 소개되었고, 윌슨은 그런 좌파의 일부를 아우를 수 있는 정도의 리버럴이었던 듯 하다. 그러한 배경에서 국제연맹 창립과 같은 빅프로젝트를 추진한 역량도 있는 인물이었던 듯 하다. 허나, 극좌를 탄압하였고, 무엇보다 국익을 앞세워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는 대표적인 사례의 주체가 되어버리는 아이러니의 중심에 섰던 인물이더라. 게다가, 전쟁 직후 뇌졸중으로 심신이 쇠약해져 주변의 조언을 제대로 듣지도 못한, 그러다보니 자신의 정치적 강점을 계속 이어나가지도 못해 정권을 넘겨줘 버리는 끝이 별로 안좋았던 인물이라 하겠다. 역사적 요인들은 여러가지가 있었겠으나, 국제연맹이 비리비리하고 결국 국제연합으로 재편되는 배경에는 주도자의 이같은 추락도 중요 요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무엇보다 주인공 유진 뎁스란 인물은 참 강직함의 표본으로 그려진다. 70-90년대 우리나라 재야의 지도자들과 비교해서 더 멋지단 느낌이 들 정도로.... 20세기 초까지 미국에서의 선거운동, 정치집회에서 그리고 법원에서의 진술등도 2-3시간 가량 지속되는 연설이 있었다는게 아주 놀라왔다. 가장 직접적으로 뎁스의 구속의 계기가 된 집회에서도 정말 여러가지 이야기를 장시간의 연설로 소화했다는 설명이 나온다. 법정에서의 최후진술도...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이라고 불렸다는 이유중의 하나는 그의 언변이 반대파, 사회 주류들에게 그만큼 위협적이었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라 한다. 

아내가 아들놈의 이름을 중성적이고, 또한 외국인들에게도 어색하지 않은 것으로 하자면서 제안했던게 유진이었고, 머릿속에 떠오른 사람은 유진 오덤, 유진 올만디, 유진 오닐과 함께 유진 뎁스였다. 이 책을 읽고 이름을 참 잘붙였단 생각이 든다. 

하나 쫌 애매한 건, 이런 말년의 유진 뎁스에게 불륜과 같은 사랑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는 점. 동료라 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그 역시 가정이 있는 인물이었으며, 둘의 관계는 일면 플라토닉적이었다고도 하겠으나, 주변의 지인들이 그 관계를 나름 지켜주고 있었다는 사실이 좀 구려보이긴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두 가정은 모두 이 관계로 인해 깨지지 않았고, 관계도 식어버리긴 했다지만 말이다. 

100년 전의 미국 정치 이야기이긴 하지만, 현실 정치에서 지도자들간의 갈등과 여론으로부터 받는 영향에 대한 설명이 지금에도 그대로 적용될 것 처럼 생생하게 기술되어 있는 책이다. 저자후기를 보니, 클린턴 정부때의 나름 삐리리한 상황을 보면 뎁스의 상황을 떠올렸다는 식의 이야기가 있다. 그들 사회에서 상대적 진보라고 하는 민주당 분파의 집권에도 기득권의 보호기재가 강화되는 것을 지켜보는 심정이 이런 역사적 인물과 사실을 떠올리게 한 것이 아닌가 싶다. 사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과 같은 대통령기에 자행된 여러가지 일들을 떠올리면, 충분히 공감의 따가움을 느낄 수 있을 듯 하다. 

유진 뎁스란 인물이 한국사회에서 좀 유명하다면, 한번쯤 번역되어 반복되는 보수정치 구조의 고질적인 문제와 그 반복에 대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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