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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왜 고르게 되었을까... 아마 최수철이란 작가에 대한 호기심이 동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은, 예전에 피씨통신이라는 것을 할때, 천리안에서 다운받은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사랑', 그러니까 요새의 E-Book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매체를 통해 접해봤었고, 근래에는... 한 2년 전쯤인가? '모든 신포도 밑에는 여우가 산다'라는 꽁트집을 봤던 기억이 있다. 사실, 예전에 읽었던 건 거짓말 안보태고 '하나도' 기억이 안난다. 다만, 좀 분위기가 꿀꿀했다는 것 하나만 인상으로 남았다. 그런데, 최근의 꽁트집은... 아주 재밌게 읽었다. 시니컬함, 그렇지만 꿀꿀하지 않고 음울하지 않은 그런 분위기가 맘에 들었다. 난 기본적으로 데카당트한 분위기는 모든 장르를 통해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거나 듣거나 보거나 하는 것들은 있다. 그리고 높이 평가하는 것도 있고)

하여간, 다섯편의 단편이 실려있는데... 요것만 보고 뭐라 판단하기엔 많이 얄팍한 것을 모르진 않지만, 그래도 최수철이란 작가가 가지는 시니시즘에 조금은 익숙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기억나지 않은 작품의 꿀꿀한 분위기와 꽁트들의 경쾌한 블랙유머가 어쩌면 일관된 작가의 세계의 표출일 수 있다는 생각 말이다. '배경과 윤곽'이라는 작품, 화자가 주인공인 자신의 동료들의 친구에 대한 설명을 함으로써 풀어가는 소설에서, 그 주인공에 대한 묘사를 잠시 언급함으로써 최수철에 대한 판단의 근거를 삼을 수 있을 듯했다.

"... 그의 직업이 소설가이고, 그가 우리의 친구라는 것에 의해서, 우리 모두가 소설가라는 부류의 인간들에 대해 지니고 있는 선입관은, 그의 눈, 코, 귀, 입 -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입으로 떠들다가 재료가 떨어지고 지쳐 버리고 난 후, 남들의 사생활에 대한 비상한 관심과 평범하고 지극히 현실적이어서 진부하기까지 한 이야기를 감상과 역설, 혹은 독설로까지 끌고 나가는 데에 온통 바쳐진 그의 오관에서 느껴지는 인상, 비로 그것이었다.... " 최수철은, 적어도 이 책에 실려있는 작품들의 저자는 '쓴다' 혹은 '지어낸다'라고 하는 것에 대해 매우 깊은 고민과 회의, 그리고 고통을 느끼는 것 같다. 시대의 작가정신이라는 테제에서부터 디테일한 묘사와 독창성, 그리고 메시지 등등에 대해서 다각도로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인용한 작품의 주인공은 부정적인 인물로 그려지는데, 그것이 자기 주변의/친구들의 치부를 그대로 소설로 옮겨놓는 행위로 대변된다. 그런데... 팩트를 팩트로 기술하는 기자라면, 그것은 문제가 안된다. 하지만 팩트를 기반으로 이야기를 지어내야 하는 소설가라면 문제인 것이다. 단지 친구간의 의리/우정을 배반했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허구로써 진실을 창조해야 하는 작업을 업으로 삼는이가, 팩트와 진실의 경계를 명쾌히 파악하지 않고, 단순 기술에 살붙이기로 나설때, 그 생산물은 진실도 허구도 아닌 모호한 것이 되어 버린다.

어쩜, 최수철은 자신의 작품들에서 무수히 팩트를 기반으로 한 메시지를 생산하려고 노력해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개인의 것이든, 가족의 것이든, 그 밖의 지인들의 것인든 말이다. 그러면서 그는 고민을 했다. 그 주변 혹은 낱선 인물들의 삶을 활용하여 자기가 무언가 진실을 창조하고 있는 것인지. 또 다른 작품들에도 때로는 편집증적으로 쓰기에 몰두하는 인물이 나오고, 다른 작가가 나오며, 코를 자르는 광인의 쓰기도 나온다. 이러한 집착이 진지하게 표현될때, 삐끗하면 데카당트에 아나키즘이 될 수 있으며(문학적인), 또 다른편에서는 시니컬한 풍자가 될 수도 있겠다. 개인적으론 후자가 훨씬 그럴듯해 보인다.

정찬이라는 작가는 이번에 처음 접해봤다. 그가 천착하는 문제는 권력과 지배, 그리고 자유라는 아주 고전적인 테마다. 그런 고전적인 테마를 아주 고전적으로 쓰고 있다. 유대교의 역사/설화를 바탕으로 한 수리부엉이에서도 그랬고, 식민지시대의 생존자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 그리고 다른 두 작품에서도 그랬다. 어쩌면 최수철과 비슷한 고민을 하는 동시대 작가라고도 할 수 있을정도로 유사함도 있지만, 그 지향은 보다 복고적이고 반대로 외향적이다. 기표와 기의라는 코드를 인용하면, 정찬의 메시지에는 기의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가 더 강하다. 신비주의적인 색채까지 띄고 있으니까. 광주항쟁의 배경으로한 작품에서 조차도, 혁명과 이념을 상징하는 인물은 그것에서 동떨어진 순진무구한 인물에 대해서 열등함을 표현하고 있다. 수리부엉이, 유대인이 주인공인 이 소설에서도, 끈질긴 유대인의 정신의 면면을 이야기하려는 듯한 아주 단조로운 소재를 바탕으로 권력과 지배라는 이야기를 교묘히 뒤집어 놓고 있다. 중요한건, 정신이다. 어쩌면 갈릴레오의 선언을 소설화하려는 것이 정찬의 기본적인 글쓰기 자세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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