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블로그 전체검색

이 작품의 1권부터 4권은 2003년 1월에 봤었는데, 그 당시는 이미 절판되어 있던 상태. 그래서 친구로부터, 그리고 도서관에서 빌려서 봤었는데, 얼마전에 새로이 다시 출판되었다. 그게 이 책세상 판이고. 당시에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하는 5권도 마저 나온것이다. 아마 작가가 생존해있으면 그 이후에도 계속 나왔을런지도 모르겠지만, 참 애석하게도...

2003년 처음 읽었을때, 많은 재미를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썩 맘에들어하지는 않았었다. 보네거트와 비교했을때, 뭔가 경박해보인다는 느낌어었기 때문에. 하지만, 문득문득 생각이 들때마다 가볍게 미소가 지어졌었고, 슬슬 책을 읽고 나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야 이 작품이 주는 페이소스에 나름대로 동감을 느끼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읽은지 꽤 되는 소설을 기억하게 된 계기중 하나는, 아마도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가 제작된다는 소식을 친구로부터 들어서일 수도 있다.

하여간, 여러장면/문장에서 총 5권짜리 작품의 특성을 단편적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겠지만, '대체로 무해함'에서는 아래 문장이 가장 인상깊었다.

"아서는 약간의 상실감을 느꼈다. 은하계 전체가 그의 앞에 놓여 있는데도, 단지 두 가지가 없다는 이유로 불평을 한다면 자기가 너무 예의가 없는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태어난 세상과 그가 사랑한 여자가 없는 것이다."

소심한 남자, 그리고 본의아니게 무식한 남자인 아서 덴트는 아주 막막한 상황에서 기껏 느낀다는게 '약/간/의/ 상실감'이다. 눈물이 핑돌게 우스운 상황/심리묘사다. 그리고 스스로 예의없게 보일까봐 눈치를 살핀다. 막상 읽어보면, 그가 눈치를 살필만한 인격체는 그의 주위에 없다. 이건 허세가 아니라 주눅듦이라고 해야겠다. 왜냐? 그의 앞에는 그가 거의 알지 못하는 은하계가 떡 하니 버티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의 고향과 사랑하는 여자 '펜처치'는 그냥 사라졌다. 왜곡된 시공간에서 그와 그녀가 탄 우주선이 한번 살짝 진동한 다음에, 그냥 사라졌다. 평행우주와 연결되있는 critical point 같은 곳을 통과하면서 그냥 찾을 수 없게 된것일 뿐이다.

4권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그리고 평행우주라는 SF의 고전적인 모티프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이미 이 이야기는 1-3권 이후에 뭔가 중첩된 상황을 가정하고 전개한다는 것을 알것이다. 5권을 읽고, 괜스레 따지기 좋아하면서 SF를 읽는 이들은 말할 것이다. "또 다른 아서 덴트의 인생은 무수히 많을 것이다. 5권이 끝나는 시점에서 또 다시 1권의 이야기는 새로이 시작된다"라는 식으로 말이다. (난 이런 얘기들 은근히 실어한다. 메트릭스 같은거 보고, 네오가 어쨌거니 하는 무수한 이야기들, 특히 시뮬라르크 운운하는 철학자들은 더 짜등이다.) 하지만 그건 중요한게 아니다. 사람이라는건 그렇게 많이 변하는 것이 아닌 존재이며, 일어날 일은 어차피 일어나게 되어 있다. 뭐 이런게 이 소설을 관통하는 더글라스 아담스의 블랙유머적 철학이니까.

몇가지 에피소드와 소재를 언급하자면, '왕의 영토'와 '스타브로 물라'는 과연 썰렁유머의 압권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빛의 속도를 능가할 수 있는 동력원에 대한 초장의 설명 또한 압권이다.

하여간 다 읽고나니, 은근히 짠해진다.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