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뎌진다는 게 덜 예민해짐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것도 최근에 알게 되었다.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에는 더욱 민감해지고, 나를 풍부하게 만드는 것에는 덜 반응하게 되는 것. 감정이 무뎌진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최은영 작가의 첫 소설집을 읽었을 때,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럭저럭 무뎌졌던 내 마음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함부로 울 수도 없는 그 마음들. 나는 단번에 최은영 작가의 팬이 되었다.
이번 '내게 무해한 사람'은 사실 2년을 묵혀둔 책이다. 작가의 팬이 되어 신간을 덥썩 사긴 했는데, 처음 읽은 책이 너무 완벽했어서 혹시 실망할까봐 두려워 읽기를 미뤘다. 어떤 책덕후들은 이 맘 알거야......ㅠ
2년이 넘는 기다림 끝에 읽게 된 '내게 무해한 사람'은 전작 이상으로 완벽했다. 너무 완벽해서, 2년을 묵힌 게 아깝다기보단 내가 묵힌 2년으로 이 책과 나의 만남이 더욱 완벽해진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이 책의 인물들은 나처럼, 쇼코 때보다 조금 더 헤어지고, 지쳐 있다. 그래서 상처입을까봐, 상처입힐까봐 더 조심스럽고, 그럼에도 여전히 사람의 온기를, 애정을 그리워하기를 멈출 수 없는 사람들. 우리들. 나. 나와 닮은 인물들을 보는 게 자기혐오가 아닌 연민을 불러일으키게 하고, 그래서 나 자신도 용서하고 존중하고 싶도록 만든다. 고마운 책이다.
또 다음, 최은영 작가의 신작을 기다린다. 내 무딤을 쓰다듬어 주고, 데워줄 또 다른 이야기를 기다리며 나도 살아가고 싶다.